국내 2위 대형마트 사업자인 홈플러스가 돌연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면서 금융권이 어수선하다. 증권업계는 공동회의를 열고 고소를 검토하고 있다.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가 금융채권으로 분류될 경우 개인‧법인 투자자들은 손실이 불가피하다.
은행들도 홈플러스 사태 후폭풍에 대응 중이다. 일부 은행은 홈플러스 어음을 부도 처리하고 당좌거래를 중지해 피해를 차단하는 한편, 협력업체 피해 줄이기에도 동참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납품 대금 등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을 위해 금융지원에 나섰다.
금융권이 뒷수습에 분주해진 건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금융채권에 한정된 기업회생을 신청한 결과다. MBK는 자구책 없이 기업회생제도를 악용해 채권 손실 등이 발생하는 책임을 금융권에 전가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MBK가 쏘아올린 홈플러스 사태…증권가 날벼락
금융권은 지난 4일 터진 ‘홈플러스 사태’로 분주하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지 10년 만에 갑작스레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협력업체 대금 및 투자액 회수가 불투명해졌다. 홈플러스의 금융채권은 현재 카드대금채권을 기초로 ABSTB 4019억원, 기업어음(CP) 1160억원, 전자단기사채 780억원 등 약 5959억원 규모다.
홈플러스 단기채권 판매와 관련된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20여개사는 대응책을 논의하고자 지난 10일 공동회의를 열어 현황을 공유했다. 홈플러스 ABSTB를 발행하는 주관사 중 하나인 신영증권은 최대한 합의점을 찾는 가운데 사기 혐의로 형사 고소까지 고려하는 중이다. 기업 회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홈플러스가 증권사를 통해 단기채권을 판매했다고 봐서다.
관건은 규모가 가장 큰 ABSTB가 금융부채로 인정될지 여부다. 홈플러스는 금융부채 한정으로 부분회생을 신청했는데 금융채권은 상환 우선순위에서 밀려 보상이 더 어렵다. 문제는 ABSTB가 금융채권과 상거래채권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홈플러스 유동화 전단채 피해자들은 전날 ABSTB를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해 달라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피해 최소화 나선 은행권…카드사도 여파
홈플러스 사태에 은행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였다. 홈플러스 주거래은행인 SC제일은행이 홈플러스 어음을 최종 부도 처리하면서 홈플러스는 금융결제원에 당좌거래정지자로 지난 10일 고시·등록됐다. 제일은행 외에 유일하게 홈플러스와 당좌거래 실적이 있던 신한은행도 당좌거래를 중지했다.
납품대금 지연, 이자 연체 등 어려움에 닥친 홈플러스 협력업체를 위해 은행들은 금융지원에도 나섰다. KB국민은행은 기업당 최대 5억원 자금을 지원하고 만기 도래하는 대출금은 일부 상환 없이 기한을 연장하도록 조치했다. 금리우대 및 수수료 감면 등도 제공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협력업체에게 최대 5억원 신규 대출을 지원하고 대출만기 시 원금상환 없이 연장, 분할상환금에 대한 상환유예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연체 중인 협력업체의 경우 연체 이자 또한 감면해 주게 됐다. 신한은행은 해당 금융지원에 대해 따로 기한을 두지 않았다.
하나은행도 기업당 최대 5억원 이내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원금 상환 없이 최대 1년 범위 내 기업대출 만기를 연장한다. 최장 6개월 이내 분할 상환금 유예, 최대 1.3% 범위 내 금리우대 또한 지원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IBK기업은행도 협력 기업당 최대 5억원 범위 내 물품대금 결제, 급여 등 운전자금을 지원하고 대출금리도 최대 1.3%p 내렸다. 대출만기 시 원금상환 없이 최대 1년 이내 만기연장을 지원하고 분할상환금 상환 기한도 유예했다.
소비자 결제와 직결된 카드사도 영향을 받게 되면서 줄줄이 조치에 나서고 있다. 8개 카드 전업사 신한·현대·삼성·KB국민·롯데·우리·하나·BC카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홈플러스 상품권 구매·충전 결제를 중단했다.
급부상하는 MBK 책임론
사실상 MBK가 엎지른 물을 온 금융권이 나서서 수습하게 된 격이다. 홈플러스에 단기유동성 문제가 생기고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최대주주 MBK가 자구책 대신 금융비용 절감만을 위해 부분회생제도를 택한 결과다.
기업회생을 통해 상사채권‧임금채권은 보호받는 반면 금융부채는 상환이 유예되면서 MBK는 인수전략 실패비용을 금융기관과 개인채권투자자들에게 전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MBK가 인수할 당시만 해도 홈플러스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기업으로 인정됐으나 8년이 지난 현재 경영 실패 사례로 평가된다.
홈플러스의 당기순이익은 인수 직후인 2016년 3231억원이었으나 이후 최근 3년간 연속 적자였다. 특히 급증한 금융비용은 홈플러스 수익이 악화된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홈플러스의 금융비용은 매년 4000억원가량 발생해 왔으며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2조1063억원 누적됐다.
이를 토대로 보면 MBK는 기업회생을 신청한 현재 손해를 본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해보인다. 과거 역시 마찬가지다. MBK는 앞서 환금성 좋은 홈플러스 영업점 20여개를 매각하며 2015년 인수 당시 투입된 4조원 이상 자금도 이미 회수했다.
MBK가 최근 인수 희망가 5-6조원대로 ‘빅딜’로 분류되는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 인수를 추진해 온 점을 감안하면 홈플러스 금융비용을 자체적으로 처리할 여력이 안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MBK가 자구책 없이 회생법원으로 직행하며 금융권 등에 손실 여파를 미친 데 대해 비판을 받는 이유다.
한편 홈플러스가 회생신청을 열흘 앞두고도 지난달 21일 CP와 전단채 등 채권을 발행한 상황에 대해서도 MBK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MBK는 지난 11일부터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으며 김병주 회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 증인으로 채택돼 18일 국회로 소환될 예정이다.
더리브스는 홈플러스 사태로 불거진 책임론 관련 MBK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양하영 기자 hyy@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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