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관세 압박에 놓인 일본, 쌀 시장 방어전 본격화
700% 관세 논란, 미일 통상 마찰 갈등 점화
무관세 수입 쌀 77만 톤 이면에 숨은 일본의 관세 전략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에 일본 자동차 업계도 불안 고조
[포인트경제] 미국 백악관이 일본의 쌀 관세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쌀에 70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주의를 신봉하고 공정하고 균형 잡힌 무역 관행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이 미국산 쌀에 지나치게 높은 관세 장벽을 치고 있다는 주장으로, 미국은 이미 무역 압박 수단으로 상호 관세를 언급해온 터라 일본 정부도 긴장하고 있다.
미국 대변인 일본 쌀 관세 700% 비판/NHK 12일 보도분 캡쳐(포인트경제)
레빗 대변인은 미국산 농축산물 등에 각국이 부과하는 관세율을 정리한 도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캐나다 인도와 함께 일본을 대표적인 고관세 국가로 지목했고, 특히 일본이 쌀에 매기는 관세율이 700%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소고기와 유제품 등 주요 농축산물에도 상당히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점도 함께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미국 백악관의 강경한 발언에 대해 즉각적인 반론보다는 미국 측과 긴밀히 소통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12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최소 의무수입 쌀에 대해서는 세금 없이 들여오고, 그 외에 대해서는 1킬로그램당 341엔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 정부 관계자의 발언 하나하나에 대응하지 않겠지만 앞으로도 미국과 소통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과거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을 통해 연간 약 77만 톤의 최소 의무수입 쌀을 무관세로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이 가운데 상당량이 미국산이며, 2023년 기준 약 34만 톤을 미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런 물량은 대부분 정부 차원에서 관리돼 가공용이나 사료용, 해외 식량원조 등으로 활용되며 일반 가정용으로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최소 의무수입 쌀 분량을 초과하는 쌀에 매겨지는 높은 관세다. 일본은 자국 쌀 산업 보호를 이유로 의무수입 쌀을 넘어서는 수입 물량에 대해 1킬로그램당 341엔의 고정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과거 일본 농림수산성은 2001년 이후의 WTO 협상 때 이를 당시 국제 쌀 가격으로 환산하면 700%를 넘길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미국산 쌀의 실제 수입량은 지난해 기준 137톤에 그칠 정도로 규모가 작다.
미국은 매년 발간하는 해외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일본이 쌀 수입과 유통 구조를 복잡하고 불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특히 일본 소비자들이 미국산 쌀을 충분히 구매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삼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이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자 일본 언론도 즉각 반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연간 77만 톤 규모로 미국산 쌀을 무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하며, 700%라는 관세율은 과거 2005년 WTO 협상 당시의 수치가 재차 인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미국이 쌀 관세율을 이유로 자동차 등 일본의 주요 산업에 보복 관세를 매길 가능성을 경고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쌀 시장이 최대 성역으로 여겨지는 만큼, 통상 교섭에서 쌀 문제가 의제로 부상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다. 만약 쌀 시장 개방 요구가 본격화되면 양국 간 이해관계가 정면 충돌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 관세 도입을 추진한다면, 일본 자동차나 전자제품에 높은 관세가 매겨져 일본 경제 전반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공정하고 상호적인 무역을 내세우며 일본에 꾸준히 시장 개방을 압박해 왔다.
결국 일본으로서는 자동차 등 주력 수출 분야를 지키기 위해 쌀을 비롯한 농산물 관세 체제에서 양보를 검토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있을 미일 통상 교섭에서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 논의되고, 일본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마련할지가 주목된다. 더불어 미국이 다른 무역 상대국인 캐나다와 인도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일본의 대응 전략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쌀 관세를 둘러싼 양국의 대립은 전통적으로 보호무역과 시장개방을 두고 갈등을 반복해온 미일 관계의 또 다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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