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포고문 효력이 발생한 날, 유럽은 비슷한 규모의 관세 패키지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이른바 '관세 전쟁'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1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방송 CNN은 이날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에 25%의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포고문에 서명하면서 다음달 12일부터 "예외, 면제 없이 모든 알루미늄과 철강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는데, 이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때인 2018년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 2018년 4월 30일 대통령 포고령으로 관세가 없는 대신 293만 톤의 쿼터제를 적용받았고 바이든 정부에서도 캐나다, 멕시코, 일본 등과 함께 관세 예외를 적용받았으나 이번에는 관세 부과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방송은 "중국은 알루미늄과 철강에 25%보다 높은 세율의 관세가 부과되는 유일한 국가"라며 "이전에 이미 중국 수입품에 대한 20%의 전면 관세가 발효됐고, 25%의 강철 및 알루미늄 관세가 추가되어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총 관세율이 45%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예외없는 관세가 현실화되자 유럽연합(EU)은 집행위원회 성명을 통해 260억 유로(한화 약 41조 원) 상당의 미국 제품에 대한 역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성명을 통해 "이는 미국이 부과한 관세의 경제적 규모와 일치한다"며 "우리의 대응책은 두 단계로 도입될 것이다. 4월 1일부터 시작하여 13일 이후 완전히 시행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집행위원회는 4월 1일 현재 미국 제품에 대한 관세 중단을 종료하고 이후 미국 제품에 대한 새로운 관세 패키지를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EU측은 미국과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리는 의미 있는 대화에 참여할 준비가 되었다. 마로스 세프코비치 유럽연합집행위원회 무역 담당 위원에게 미국과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회담을 재개하도록 위임했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는 이번 조치로 인해 물가 상승 및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CNN은 "자동차에는 수백 파운드, 수천 파운드의 강철과 알루미늄이 들어간다. 북미의 자동차 공급망이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 감안할 때, (관세 조치는) 미국의 자동차 생산에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전망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키뱅크 캐피탈의 애널리스트 필 깁스는 방송에 12일 이전에도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인상 가능성 때문에 금속의 시장 거래 현물 가격이 급등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두 달 간 철강 가격이 30% 이상, 알루미늄 가격은 약 15% 이상 상승했다고 밝혔다.
방송은 "관세는 수입되는 원자재뿐만 아니라 금속을 사용하여 만든 수입 부품 비용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며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업체가 캐나다 또는 멕시코 부품 공급업체에서 구매한 알루미늄 범퍼나 라디에이터 등의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를 "전환기"라고 규정하며 관세 부과 정책에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미국 주식 시장도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일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100명 이상의 최고경영자와 만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회의에서 관세 정책에 대해 "그들(해외 기업)은 25%든 어떤 것이든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라며 "(관세는) 더 올라갈 수도 있다. 금액이 오를수록 그들이 국내 공장을 건설할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시장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는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라며 "장기적으로 내가 하는 일은 우리나라를 다시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 관세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신문은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역시 주식시장이 주춤한 것은 "한 순간"일 뿐이라면서 "우리는 전환기에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주가가 얼마나 더 떨어져야 관세 정책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레빗 대변인이 답변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태도에 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관세 부과로 경기가 침체되는 것도 문제지만, 트럼프 정부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 10일 미국 150만 가구와 기업에 전력을 보내는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25%의 할증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의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율을 두 배로 인상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후 온타리오주에서 이를 철회하자 트럼프 대통령도 두 배 인상에서 한 발 물러났다.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규정할 수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가벼운 입' 때문에 기업들의 혼란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 미국 내 평가다.
하원 세무 위원회에서 공화당의 수석 보좌관을 지냈고 현재 미국의 다국적 투자 은행 및 금융 서비스 회사인 파이퍼 샌들러에서 정책 부국장을 맡고 있는 도날드 슈나이더는 <워싱턴포스트>에 "기업 측면에서는 어떻게, 어디에, 얼마나 투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마비 상태"라며 "이러한 불확실성은 관세와 트럼프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불확실성은 관세 자체만큼이나 나쁘다"라고 밝혔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 경제학자 역시 신문에 "기업 리더인 최고경영자, 최고운영책임자는 현재 시행 중인 정책과 그 시행 방식, 여파에 대해 불안·초조해하고 있다. 정책이 시행되는 방식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불편함이 커지고 있다"며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사적인 대화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익명을 조건으로 한 미국 은행 임원은 트럼프 관세 정책의 궁극적인 결과에 대한 혼란이 있는 가운데, 투자가 정체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이 라운드테이블에 모인 임원들이 "트럼프의 무역 전쟁이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있어, 시장 안정을 호소"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5% 관세가 초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주식 시장을 뒤흔든 관세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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