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를 보며 대치맘 이소담 씨를 떠올리다 [정시우 SEEN]

‘위플래쉬’를 보며 대치맘 이소담 씨를 떠올리다 [정시우 SEEN]

일간스포츠 2025-03-13 06:05: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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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분명 같은 영화를 봤는데, 당도한 도착지가 완전히 달랐다. 영화에 대한 해석이 이렇게나 정반대일 수가. 문제의 영화는 데이미언 셔젤의 ‘위플래쉬(Whiplash)’다.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붙이는 스승과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제자의 이야기. 그 대결의 끝에서 제자가 득도한 듯한 퍼포먼스를 보일 때 전해지는 전율은 가히 압도적이다. 극장을 빠져나오며 친구는 “역시 다그쳐야 성장하는 법”이라며 플레처(J.K.시몬스) 교수를 옹호했다. 나는 반박했다. “무슨 소 뒷발 치는 소리야. 성취만 강조하는 교육의 폐해를 저격한 영화라고!” 그날 영화 때문에 친구와 싸웠던가. 확실한 건, ‘위플래쉬’를 본 대다수가 플레처의 교육관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오스카 3관왕(남우조연상·편집상·음향상) 수상작 ‘위플래쉬’는 음악 영화다. 아니, 공포 영화다. 아니, 성장 영화인가? 이러거나 저러거나, 좋은 의미에서 미친 영화다. 음악 명문 셰이퍼 학교의 플레처는 무늬는 교수지만, 폭군에 더 가깝다. 가르치는 것보다 다그치는 데 능하다. 포용과 격려보다 몰아세우는 게 일가견이 있다. 교육자로서 그가 가장 극혐하는 것 또한 “잘했어(Good Job!)”란 칭찬이다. 그래도 실력은 출중해서, 모두가 그의 밴드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다. 드럼 치는 신입생 앤드류(마일스 텔러)도 그중 하나다. 

앤드류는 실력 있는 학생이다. 근성도 있고 야망도 크다. 영화는 플레처에게 점지 받은 앤드류가 들뜬 마음으로 밴드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리듬을 탄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 시작’일 줄 알았던 앤드류의 기대는 첫날 와장창 아작 난다. 플레처의 실시간 폭언과 학대에 앤드류는 너널너절 해진다. ‘내 실력이 이것 밖에 안 되나’라는 자괴감. ‘남들에게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메인 드러머 자리를 놓고 무한 경쟁을 압박하는 스승의 트레이닝은 앤드류 안에 잠자고 있던 광기를 끌어올린다. 

사실, 경중이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마음에 ‘자기만의 플레처(채찍질)’를 두고 살아간다. 혹은 회사 선배든, 군대 선임이든, 학원 선생님이든 ‘유사 플레처’를 만나며 살아간다. 극장에 앉아있는 동안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앤드류를 따라가게 된다면,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봤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앤드류를 보편의 기준에서 바라보기는 힘들다. 실로, ‘위플래쉬’의 진짜 묘미는 앤드류 역시 스승 못지않게 음악에 미친 종족이라는 점에서 발현된다. 무섭게 몰아세우는 스승에 맞서 그는 더욱 피나는 노력을 한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손에 진짜 피를 볼 정도로 드림 스틱을 두들겨댄다. “너라는 존재가 내 음악에 방해가 된다”는 따위의 말로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플레처와 앤드류는 영혼의 단짝이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죽이 아주 잘 맞는다.

그러나 강호의 세계에서 대결은 불가피하다. 클라이맥스에서 앤드류는 자신에게 함정을 판 스승의 계획을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뒤집어 버린다. 논란의 장면은 그 다음. 청출어람 한 제자를 바라보는 플레처의 묘한 미소다. 이 미소는 관객을 미스터리에 빠뜨린다. 앤드류는 플레처의 세상에 편입한 것일까? 아니면 기성세대가 세팅해 놓은 ‘성공값’을 박차고 나가 자기만의 리듬을 되찾은 것일까. 흥미로운 건, 당시 많은 한국 학부모가 이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결과만 좋다면, 비정상적인 과정도 견뎌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영화는 일종의 면죄를 선사했다.

‘위플래쉬’ 재개봉을 맞아 다시 보면서 생각했다. 2025년의 관객이 평가하는 플레처는 10년 전과 다를지. 아마도, 요즘 같은 시대에 플레처처럼 폭언을 쏟는 선생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다. 플레처 같은 선생이 설 입지는 10년 전보다 줄어든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플래처와 같은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주요 주체가 학부모로 바뀌었을 뿐이다. 최근 코미디언 이수지의 ‘제이미맘’ 영상으로 불거진 ‘대치맘 논란’은 이런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결과다. 영유아 대상 학원의 레벨테스트를 지칭하는 ‘4세 고시’가 있다는 말엔 귀를 의심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는 제이미맘들의 ‘맹모삼천지교’는 눈물겨운데, 그래서 4살 어린나이에 학원 뺑뺑이를 도는 제이미들은 행복할까. 이것은 ‘소리 없는 채찍질’이 아니고 무엇일까.

정시우 칼럼니스트
정시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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