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할 때 반드시 챙기는 세 가지가 있다. 스마트폰, 립밤 그리고 기후동행카드. 기후동행카드가 뭐냐고? 서울시에서 발급한 ‘대중교통 통합 정기권’이다. 신청 내역에 맞게 서울시 전역과 서울 인근 지역 일부의 지하철, 서울시 면허 시내·마을버스, 서울시 공유자전거 서비스 ‘따릉이’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모바일 카드 혹은 실물 카드로 선택하여 쓸 수 있는데 나는 실물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기후동행 실물 카드, 이렇게 생겼다. 파란색과 하늘색이 키컬러다. 배경이 되는 파란색은 깨끗하고 청명한 ‘기후’의 이미지를 은유한 듯하고, 하늘색 부분은 무한대 기호를 써서 ‘무제한 이용’을 표현했다. 직관적이지만 예쁘다는 느낌은 안 든다. 디자인이 좀 더 감각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덕분에(?) 들고 다니는 맛은 좀 부족하다.
작년(2024년) 1월부터 전국 최초로 서울에서 시작한 제도인데, 나는 작년 가을 꽤 지나서야 기후동행카드에 입문했다. 그전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교통카드 후불 결제 기능이 탑재된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하지만 사용 빈도가 높지는 않았다. 자차를 몰고 다니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매일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인 아내는 기후동행카드를 썼다. 나에게도 써 볼 것을 권유했지만, 와닿지 않았다. 프리랜서라 매일 일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나가면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가 많아 대중교통보다는 자차가 효율적이었다. 이동시간을 내 리듬에 맞게 관리할 수 있고 무엇보다 계절의 약점(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운 것)과 붐비는 인파를 겪지 않아도 돼서 대중교통을 최대한 자제(?)하던 나였다. 물론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배가 불렀네”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말이다.
선불과 후불에 대한 요상한 감정이 있다. 후불은 쓴 걸 내는 거니까 금액이 크더라도 무덤덤한데 선불은 쓰지 않은 걸 미리 내는 거니까 금액이 작더라도 쪼잔해진다. 기후동행카드가 그랬다. ‘나는 (직장인처럼) 정기적으로 대중교통을 타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굳이 6만원 돈을 미리 내고 교통카드를 살 필요가 있을까 의심하고 의심했지만 아내에게 속는 셈 치고 한번 써 보자 하는 마음으로 기후동행카드에 입문했다.
기후동행카드 제도에서 좋은 옵션이 하나 있는데 바로 ‘청년 할인’이다. 만 19세 이상 만 39세 이하 경우에는 30일권을 살 때 7000원의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이에 해당하는 나는 30일 정기권(따릉이 미포함) 정가 6만2000원을 5만5000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일단 쾌조의 스타트가 맘에 들었다.
지하철·버스 1회 운임 요금이 대략 1500원이다. 여기에 환승 붙고 거리 붙고 자질구레한 계산이 따르지만 1500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왕복비 3000원, 30일 동안 하루 1회 왕복 매일 탄다고 생각하면 9만원이 교통비로 나가는 셈이다. 그러니 5만5000원이면 약 절반의 비용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니 이득은 이득이다. 기껏 산 기후동행카드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과제는 ‘대중교통 많이 타기’였다. 기후동행카드를 발급받은 날부터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10번 중에 8~9번은 차를 가지고 다녔는데, 요즘은 10번 중에 8~9번을 대중교통을 타고 다닌다. 프리랜서랍시고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거나 동선이 복잡할 때도 있어서 그동안을 차를 애용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교통체증과 주차비, 무엇보다 기름값 등의 유지비가 차를 모는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차로 받는 스트레스보다 몸을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동선이 조금 복잡하더라도, 이를테면 지하철로 이동하다가 버스를 여러 번 환승한다든지, 환승 허용 시간을 넘긴다든지 등의 변수에도 아무런 걱정 없이 그 어떤 추가 요금 없이 마음껏 상하차 태그를 찍을 수 있어서 든든했다. 서울시 전체가 하나의 놀이공원이라면 나는 자유이용권을 끊은 이용객이었다.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기후동행카드 하나로 어디든 갈 수 있다.’ 이것도 상당한 매력이 있었다. 보통 ‘어디든’을 떠올리면 ‘먼 거리’를 떠올릴 텐데 내 경우에는 반대였다. 나의 ‘어디든’은 '가까운 거리’였다. 대중교통 한 번 이용할 때 아깝다고 생각할 때가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였다. 대표적인 짧은 거리가 3~4km다. 버스 세 정거장, 지하철로 한 정거장 정도. 걷자니 길고 타자니 돈이 아까운 거리. 그런데 기후동행카드를 쓰니 그 걱정이 사라졌다. 막 탈 수 있었다.
집에서부터 지하철역 근처나 인근 동네까지 버스 3~4정거장 거리를 자주 오갈 일이 많은데 기후동행카드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다. 가뜩이나 주차난을 겪는 서울 도심에서 눈치싸움 할 일도 없고 뜨악 하는 주차비 때문에 골머리를 썩일 일도 없었다.
오히려 (학생 때처럼) 대중교통 생활에 다시 익숙해지면서 긍정적인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차 타고 다닐 때보다 더 걷게 되니 건강에도 좋고 운전할 때는 운전만 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책을 볼 수 있어서도 좋았다. 나만 조금 더 부지런하면 느낄 수 있었을 소소한 만족들.
가끔 그런 물건이 있다. 물건 자체를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삶에 동기부여가 되는···. 물론 목적은 스스로 찾아야겠지만 동기부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와 그 물건은 ‘인연’이 아닐까 싶다. 기후동행카드가 나에게는 그런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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