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 이렇게 만들어진다…재판관들이 전하는 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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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 이렇게 만들어진다…재판관들이 전하는 평의

이데일리 2025-03-12 09:00: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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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8명의 헌법재판관들이 역사적인 결정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논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탄핵심판의 변론 과정은 국민에게 공개되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는 ‘평의’ 과정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된다. 헌재가 발간한 구술총서에 기록된 과거 헌법재판관들의 회고를 바탕으로 평의실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토론의 현장을 엿봤다.

김용준(왼쪽부터) 제2대 헌법재판소장, 김진우·황도연·정경식·故고중석 전 헌법재판관. 김진우 전 재판관은 1988년9월부터 1997년1월까지, 황도연 전 재판관은 1991년8월부터 1997년8월까지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했다. 김용준 전 헌재소장과 정경식·고중석 전 재판관은 1994년9월부터 2000년9월까지 헌재에 몸담았다. (사진=헌법재판소)


◇“이게 민주주의구나” 서로 달랐던 의견, 토론 통해 압축

헌재의 평의는 재판관 9명만이 참석할 수 있는 폐쇄된 공간에서 이뤄진다.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평의실에 재판관 외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연구관도 들어올 수 없다”며 평의의 비밀성을 강조했다. 서류가 필요하거나 추가 자료 요청이 필요할 경우에는 연구관이 들어와 전달하기도 하지만 퇴장한 후에야 다시 논의를 이어간다.

평의실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재판관들 간의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다. 김용준 전 소장은 “처음에는 회의가 너무 산만하고 중구난방이었다. 대법원 회의와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며 “6개월이 지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가운데 하나의 결론 아니면 두 개의 결론으로 압축해내니까, ‘아, 이게 민주주의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돌아봤다.

◇절차 따르되 자유로운 토론…의문 푸는 과정

평의 과정은 일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우선 주심 재판관이 사건에 대한 보고를 한다. 정경식 전 재판관은 “주심이 보고를 한다. 보고서를 가지고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된다. 보고를 하고 내 의견은 이렇고 다른 문제점이 있다며 문제점까지 다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진다. 정 전 재판관은 “자기가 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의심되는 것을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뜻이냐’ 보고서를 중심으로 해서 먼저 의문스러운 것을 문서로 풀고 또 다른 사람들이 이게 무슨 뜻이냐, 그러면 또 푼다”며 토론 과정을 묘사했다.

표결 과정에서는 후임 재판관부터 차례로 의견을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토론을 이어간다. 정 전 재판관은 “제일 후순위가 먼저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차례대로 올라온다. 그 의견을 가지고 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토론을 한다”고 덧붙였다.

◇6시간30분 토론하기도…장시간 치열한 논쟁

헌법재판소의 평의는 단순한 의견 교환이 아닌 심도 있는 토론장이다. 김용준 전 소장은 “너무 많이 토론해서 자체적 결론을 수합하기가 어려울 정도”라며 “어느 날은 6시간 30분을 토론했다”고도 했다.

정경식 전 재판관은 “뭐 어떤 사건은 연구가 덜 된 것 같으면 대놓고 ‘연구를 더 시키자’, 그리고 뭐 ‘어떻게 하자’, 또 외국 판례가 필요하면 미국어학권하고 독일어학권 연구관들도 있고 하니까 (추가 연구를 요청했다)”라며 설명했다.

황도연 전 재판관은 평의 과정에서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황 전 재판관은 “제 기억으로는 어디까지나 토론은 토론이고 인간관계와는 구별했다고 생각한다. 반대의견을 낸 사람도 같이 이야기하고 술도 같이 먹기도 하고 그랬다. 그건 어디까지나 의견 차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헌법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역사적 판단

헌법재판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평의를 통해 결정을 내려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2·12 사건과 5·18 사건에 관한 평의다.

김진우 전 재판관은 “재직 중 12·12 사태, 5·18 사건 등 ‘사욕으로 쿠데타가 성공하여 집권한 경우 그가 실세하였을 때 내란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가 문제의 핵심으로 부각됐다”며 “헌법재판소에서는 1995년 11월 23일 최종평의에서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돼야 한다는 위헌 결정 정족수를 초과한 헌법재판관님들의 찬성으로 평의가 열렸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선고 직전에 청구취하서가 제출돼 결정이 선고되지 못했다. 김 전 재판관은 “청구인들의 청구취하로 헌법소원 심판절차는 종료되었다고 같은 해 12월 15일 심판종료 선언을 선고한 바 있다”며 “당시 소수의견을 낸 바 있다. 주관적 문제에 대해서는 심판이 종료됐다고 하겠지만 중요한 헌법적 해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선고를 해야 된다고 주장을 한 바 있다”고 밝혔다.

◇선배의 당부 “외부 압력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헌법재판소의 평의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지만, 때로는 평의 내용이 유출되는 사례도 있었다. 김용준 전 소장은 “평의의 비밀이 유지돼야 된다는 것은 선고하기 전에 새어 나가서 어떤 정치적인 이유나 어떤 영향을 받아서 그게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경우 예방하는 게 우선 주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황도연 전 재판관은 후배 헌법재판관들에게 “헌법재판소는 어떤 외부의 압력이나 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또 어떤 여론의 흐름이나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건전한 상식과 양심에 터 잡아서 헌법에 맞게 헌법 합치적인 올바른 재판을 하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광야에 우뚝 선 태산 같은 그런 헌법재판소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재판관 개개인이 어느 정도 지사적인 자세와 태도를 안 가지면 안 된다. 위험하다고 피해 버리고 변절해 버리면 올바른 재판이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지난해 6월 별세한 고중석 전 재판관은 “일반적으로 정치 상황이나 정치 논리보다는 제 근본 평의에 임하는 태도는 어디까지나 헌법 해석이나 법률 이론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중점을 두고 사건에 임한 것”이라며 “우린 법률 하는 사람이니까 법률에 맞춰서 판단해야지, 다른 거 끌어다가 판단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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