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그녀의 마음에 두 번 다시 닫을 수 없는 문이 생겨 활짝 열렸다. 어떤 사랑은 그런 식으로 예측할 수 없이 시작되기도 했다. 발을 담그기만 해도 휩쓸릴 급류인지, 서서히 젖어갈 빗줄기인지 미처 알지 못하는 채로." (단편소설 '봄밤의 우리'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일에는 슬픔이나 아픔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빛의 이면에 그림자가 지는 것처럼, 작용과 반작용처럼,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백수린(43)의 새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은 아름답고 설레는 사랑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아픔과 슬픔의 순간을 관조하는 이야기들을 수록했다. 책에 수록된 일곱 단편은 2020년부터 작년까지 집필됐다.
'봄밤의 우리'는 예기치 않게 인연을 맺은 개에게 큰 사랑을 쏟은 직장인 '그녀'의 이야기다.
그녀는 조깅하고 돌아오던 길에 나무 둥치에 묶인 채 버려진 개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데려오고, 주인을 찾아주려다가 결국 함께 살게 된다.
뜻밖의 만남으로 그녀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녀는 "개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내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지"라고 놀라워한다. 개는 언제나 그녀를 가장 반겨주고 곁을 지키며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행복한 나날도 잠시. 개는 수명이 다해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된다.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뜻밖에 그녀를 위로한 것은 프랑스 유학생 시절 친구 '유타'였다.
유타는 비슷한 시기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오랜 친구인 그녀에게 연락해 근황을 전한다. 둘 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로 아픔을 겪었음을 알게 된 유타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은 극복이 안 되지"라고 말한다.
책에 수록된 다른 소설들 역시 갑작스레 찾아온 사랑과 상실, 그로 인한 아픔을 다룬다.
'아주 환한 날들'은 남편과 사별하고 하나뿐인 딸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고 지내던 주인공이 사위의 부탁으로 앵무새를 한 달 동안 맡아 기르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자신의 예상과 달리 앵무새에게 깊은 애정을 쏟는데, 예정된 시간이 지나 사위가 앵무새를 다시 데려가자 가슴이 텅 빈 듯한 허전함을 느낀다.
'빛이 다가올 때'는 딸을 낳고 키우느라 교수의 꿈을 포기한 어머니의 뜻에 따라 평생 공부에 몰두해 교수가 된 주인공의 이야기다. 마흔이 넘도록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주인공은 "결혼은 아니라도 사랑은 꼭 해보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던 중 스무 살 어린 남성을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거절당한다.
사랑의 달콤함을 맛본 주인공들은 아픔이나 상실감을 겪는다.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다만 심적 고통이 클수록 사랑과 그로 인한 행복도 컸던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이름을 알린 백수린은 장편 '눈부신 안부',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등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등을 받았다.
'봄밤의 모든 것'에 실린 단편 중 표제와 같은 제목의 작품은 없다.
이에 대해 백수린은 '작가의 말'에서 "유난히 겨울의 풍경이 많은 이 소설집에 '봄'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을 붙이며, 최근 내가 쓴 한문의 한 구절을 변형해 여기에 적어두고 싶다"고 밝힌다. 그는 이어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그런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썼다"고 설명한다.
문학과지성사.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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