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우리는 근대성과 함께 문명화되었지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으니 잘못된 문명화였습니다. 이제는 생태학적 문제를 가지고 재문명화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22년 타계한 프랑스 생태주의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마지막 대담집인 '브뤼노 라투르 마지막 대화'(복복서가)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2021년 프랑스 저널리스트 니콜라 트뤼옹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으로, 라투르의 전 생애에 걸친 사상을 집대성했다.
라투르는 이 대담에서 개발과 착취로 상징되는 근대적 사고는 이미 종말을 맞이했고, 이제는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근대는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를 분리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기후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생태적 위기로 이런 사고방식이 한계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지구를 근대화하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라며 이제는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거주 가능한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라투르는 근대화의 대안으로 인간과 지구의 공존을 의미하는 '생태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지구와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라투르는 설명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이른바 '지구의 외피'에 새로 정착해 생태적 문명을 재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투르는 또 개인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자기기술'(autodescription) 개념도 제안한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서술해야만,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의존하며 살아가는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기술을 통해 개인은 자신이 처한 생태적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라투르는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 형성하는 것이 바로 '생태 계급'(ecological class)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생태 문제가 정치적·사회적 의제와 맞닿아 있다며 생태 계급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세진 옮김.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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