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읽는 내내 좀 답답했다. 왜 이렇게 자신의 감정안으로 파고드는 걸까. 그렇다고 사건의 전말이나 심연을 밝히지도 않으면서. 처음에는 도통 무슨 사연인지 알지 못하도록, 매일 쓰는 편지와 길고양이, 동네에서 만난 초3 아이 이야기가 반복되어 전개되었다. 조금씩 관계가 진전되면서 서사는 드러났고, 고양이 순무와 초등학생 세리에게서 자신의 부서진 내면을 발견한 그녀 임해수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작은 뭉치를 굴려야 더 큰 뭉치가 되는 것처럼 서사가 굴러가고, 심연에 가까와졌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마치 결단하지 못하는 그녀의 속도처럼. 아주 느린 과정이 드디어 결말로 치달을 때, 그래서 좋게 느껴졌나보다. 결국 문제 해결은 자신에게 있으며, 반대로 우울과 나락도 자신에게 있었던 것임을 보여주는 시간의 결말이 속시원했다.
물론 그 과정에 학폭서사를 담은 것은 교사로서의 심정을 몹시 힘들게 했다. 이미 우리들은 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렇게 작품에서 만나면 그 자체로 힘들다. 혹시 소설 속에서 또 선생님 잘못이라고 할까봐. 연예인은 아니지만 잘 나가던 방송인이었던 그녀 임해수가 말한마디로 살인자가 된 것처럼.
얼마전 세상을 떠난 배우 K가 나는 늘 마음 쓰였었다. 가학적인 언론의 태도가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젊은이를 자꾸 못살게 굴어서. 결국 그 화살을 견디고 못하고 세상을 떠난 날, 정말 화가 나고 속상했다.
이제 타인에게 무자비한 재단을 하는 일은 일상이 된 것 같다. 정치인들처럼 꿋꿋하게 버텨낼 재간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일을 예견이라도 한듯 이 소설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한 세상을 드러내고 있다. 누구도 의연할 수 없는 세상. 그러나 작가는 내면의 힘으로 이겨내야 함을 메시지로 전한다.
특히 초등학생 세리에게 먼저 때린 잘못은 바로 사과해야 함을 어른이 알려줘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과정을 다정하고 씩씩하게 견뎌낸 아이에게 여전히 다정한 어른으로 지켜봐 주어야 한다는 교훈이 좋았다. 그런 역할을 해 준 세리 덕분에 깨달았다. 가해자와 피해자도 불분명하지만,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경계도 없다. 그 모두가 '나'이면서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 소설작업하는 내내 영화 <노매드 랜드> 를 계속 보았다고 했다. 볼 때마다 영화를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가 바뀌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소설도 그렇게 읽히기 바란다고 했다. 짐을 싸고 떠난다는 영화를 보았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는데, 답을 바로 알려준 셈이다. 노매드>
작가의 말을 읽고나서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읽는 내내 무엇이 답답했었는지도. 길고양이, 어쩐지 우울해 보이던 소녀, 타인의 시선, 악플 등등의 뻔한 클리셰가 어떻게 기능하기를 원한건지. 선을 긋고 편을 가르는 일의 대가로 치른 삶의 곤경과 모멸말이다. 다 읽고보니 자신만의 방식으로 깊숙한 층위의 심연을 다루었음이 느껴졌다. 뒤늦게 더 아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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