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드러난 재난의 또 다른 얼굴
난카이 트라프, 올해 발생 확률 80%로 상향
지워지지 않는 상흔, 재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인트경제] 동일본대지진이 올해로 14주기를 맞았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경, 규모 9.0에 달하는 대지진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거대한 쓰나미와 원전 폭발 사고, 그리고 대규모 피난 사태를 겪었다. 그 후로 시간이 흐르며 무너진 집과 도로는 복구되고, 일부 지역에서 주민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재난이 남긴 상흔은 곳곳에 남아 있다.
동일본대지진 사망・행방불명 2만2228명 계속되는 피난생활/NHK 11일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최근 일본 언론에 새롭게 공개된 약 3시간 분량의 영상은 그날의 충격적인 장면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영상에는 집과 건물이 거센 파도에 휩쓸린 뒤, 불과 몇 분 만에 물이 빠져나가면서 잔해와 구조물이 역방향으로 쓸려가는 모습이 뚜렷하게 잡혀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끌림파(引き波)’라고 부르며, 쓰나미의 또 다른 파괴 요인으로 지목한다. 초반에는 파도가 천천히 빠지는 것처럼 보이다가 순식간에 강한 유속을 동반해 바다 쪽으로 휩쓸어 가는 특성이 있다.
쓰나미 연구로 유명한 도호쿠대(東北大学)의 이마무라 후미히코(今村 文彦) 교수는 이 같은 ‘끌림파’가 실제 재해 현장에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인접한 해안 지역 사이에서 쓰나미가 비슷하게 움직일 것으로 봤으나, 동일본대지진 당시에는 바로 옆 해안이 ‘파도가 밀려드는 상황’일 때 또 다른 곳에서는 ‘바다로 급격히 끌려가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진 사례가 있었다. 복잡한 해안선으로 유명한 산리쿠(三陸) 해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다면, 향후 30년 안에 약 70~80% 확률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난카이 트라프(南海トラフ) 거대지진 시에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끌림파의 영상/니테레 10일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아울러, 일본 정부 ‘지진 조사 연구 추진 본부’는 올해 1월, 난카이 트라프 거대지진의 발생 확률을 기존에 제시하던 ‘향후 30년 이내에 70~80%’에서 올해 1월 에는 ‘약 80% 정도’로 상향 조정했다.
지진 조사 연구 추진 본부와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난카이 트라프에서는 약 100~200년 간격으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왔으며, 쇼와(昭和) 동난카이 지진 및 쇼와 난카이 지진이 일어난 지 이미 약 80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발생 긴박성이 더욱 높아진 상태”라는 설명이다. 매그니튜드 9급 거대지진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수준으로, 일본 국내 관측 사상 최대 규모로 언급된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14년을 맞은 지금, 지진에 대비하는 우리의 태세가 충분한지 재차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1만5900명, 부상자는 6100명, 여전히 2520명이 실종 상태다(2023년 말 기준). 전문가들은 이처럼 많은 실종자가 발생한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끌림파’를 꼽는다. 일반적으로 쓰나미는 육지를 향해 밀려오는 “밀려드는 파도”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물이 다시 빠져나가는 속도와 범위가 매우 커서, 예측하기 어려운 순간에 인명을 휩쓸어가곤 했다.
‘끌림파’의 위협은 해상수색 매뉴얼에도 영향을 주었다. 마이니치 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초 해상보안청(海上保安庁)은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면 물 위에 표류하는 이들을 구출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했지만, 동일본대지진 당시에는 실제로 쓰나미가 휩쓸고 간 뒤 남아 있는 사람이나 잔해를 찾기가 극도로 어려웠다. 해상에서 구조하기 전에 이미 육지에서 멀리 끌려나간 상태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쓰나미와 함께, 지진이 불러온 경제·사회적 피해도 막대하다. 일본 정부와 세계은행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 손실을 약 21조5000억 엔(한화로 약 2300억 달러)으로 추산한다. 도로와 항만, 전력 시설 같은 공공 인프라가 전반적으로 파괴됐고, 주택은 최소 12만 채 이상이 완전히 부서졌다. 농·어업 분야 역시 큰 타격을 입어, 일상이 회복되기까지 수년간 어려움이 이어졌다.
게다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사태를 한층 심각하게 만들었다. 원전 폐로와 제염, 주민 보상 등에 필요한 비용은 현재까지 최소 8~10조 엔으로 추정되며, 일부 전문가는 이 금액이 30조 엔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전 주변 일부 지역은 여전히 귀환이 제한되어 있고, 방사선 오염 문제와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현재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대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무라 교수 등 전문가들은 “새로 공개된 쓰나미 영상에서 확인된 것처럼 해안선 구조나 조수 간만의 차, 파도의 반사·중첩 등으로 실제 쓰나미 움직임은 기존 예측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리아스식 해안처럼 해안선이 복잡하게 들어간 곳에서는 파도가 육지로 들이닥친 직후 되밀리는 타이밍이 지역마다 달라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기록된 피난 생활 장면은 쓰나미 이후 이어진 극심한 혼란을 보여준다. 전기가 끊기고 휴대전화가 먹통이 된 상황에서 유일한 정보원은 라디오였고, 난방이 없어 담요에만 의존해 지낸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발전기를 돌려 간신히 전기를 확보했지만, 기름이 부족해 주유소 앞에 차가 길게 줄을 늘어선 일도 다반사였다. 펌프를 발로 밟아 연료를 채워 넣는 광경은 재난 초기의 절박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일본대지진이 남긴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과학이 발전해도 완벽한 재해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파도가 어디서 얼마나 높이 솟아오를지, 언제 갑자기 바다로 급격히 끌려갈지를 사전에 모두 계산하기란 어렵다. 그렇기에 “강한 진동이 느껴지면 즉시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는 원칙이야말로 최선의 생존법으로 거듭 강조되고 있다.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연 재해에 맞서려면,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초기 대응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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