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던진 폭탄선언이 한국 반도체 산업을 뒤흔들었다.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적 산업정책이었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끔찍한 법’이라 맹비난하며 폐지를 공언했다. 이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4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에서 “우리는 수천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주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 돈을 가져가서 제대로 쓰지도 않는다”며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그 돈으로 차라리 부채를 줄이거나 다른 용도로 쓰라”고 요청했다.
이 발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직격탄이다. 삼성전자는 47억5000만달러(한화 약 6조9300억원), SK하이닉스는 4억5800만달러(한화 약 67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이미 확정된 상태였다.
지난 2022년 민주·공화 양당의 초당적 지지로 통과된 반도체법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527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산업정책이었던 이 법의 폐지는 미국 투자를 단행한 한국 기업들에게 커다란 타격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의 정책에 대해 기업 입장에서 당장 조치할 수 있는 방안은 제한적”이라며 “다만 미국에 투자한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고 생산이 발생하면 무역 적자 폭은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황이 빠르게 급변하는 만큼 국내에서 K칩스법이나 반도체 특별법이 통과된다면 업계는 그나마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제 정세와 별개로 HBM 6세대와 D램은 기존 개발 계획대로 준비 중이며 기존 범용 D램 사업도 문제없이 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도 반도체법을 ‘나쁜 거래’라고 비판해왔다. 트럼프의 기조는 기업에 중요한 것은 관세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며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굳이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트럼프 취임 이후 애플은 텍사스주에 5000억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TSMC 웨이저자 회장은 트럼프와 면담 직후 1000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약속했다.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정책이 옳다는 증거로 내세우면서 반도체에 25% 관세 부과도 예고한 상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HBM3E를 업계 최초로 양산해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입장에서 국제 정세 변화는 D램 수익성 측면과 연결될 수 있다”며 “단기적 수익성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D램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발언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뛰어난 한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고려할 때, 보조금 삭감 영향으로 생산라인에 차질이 빚어지면 미국 기업들도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트럼프가 이런 리스크를 감수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이종환 교수는 “트럼프는 무조건 미국에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는 사람”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HBM 메모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생산할 수 있는 핵심 기업은 SK와 삼성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삼성과 SK의 미국 내 투자는 미국 경제 전체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라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은 트럼프의 발언만큼 크게 삭감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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