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하셨어요?③] 한 끼 위해 100m 줄 서는 노인들...“고단해도 무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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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셨어요?③] 한 끼 위해 100m 줄 서는 노인들...“고단해도 무료니까”

투데이신문 2025-03-10 18:01:23 신고

3줄요약

먹방(먹는 방송) 유행의 시초이자 하멜표류기의 하멜을 놀라게 한 고봉밥의 겨레. 한국인은 예로부터 ‘밥 먹었어?’를 안부 묻기로 쓰는 밥심의 민족이다. 먹는 것에 진심인 한국 사회에도 경기 불황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삼중고로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 대학로와 식당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한숨으로 땅이 꺼지고,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민들의 지갑 사정은 날로 얇아져만 간다. 점심 한 끼조차 부담스러운 시대에, 본보는 세대별 점심밥 현황과 경기 불황 속 지역 주민들의 식사 실태를 직접 들어보고자 했다. “안녕하십니까, 식사는 하셨어요?” 

오후 1시를 향해가는 늦은 점심시간에도 무료급식소를 향한 줄이 이어졌다. ⓒ투데이신문<br>
오후 1시를 향해가는 늦은 점심시간에도 무료급식소를 향한 줄이 이어졌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권신영 기자】 봄철의 훈풍이 불기 시작했으나 얼어붙은 내수경제는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노인 인구는 늘어가지만 저소득 노인들이 설 곳은 부족해져가는 실정이다.

저렴한 밥값으로 유명한 종로도 경기 불황의 타격은 피할 수 없었다. 물가 상승의 여파로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불리는 국밥조차도 가장 저렴한 식당과 평범한 식당의 가격 차이가 5000~6000원을 넘나들며 심각한 ‘밥값 양극화’를 보였다.

노인들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물가에 하루하루 저렴한 식당과 무료 급식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난다. 1만원을 넘어가는 일반 식당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 돼 주지 않았다. 실제로 2023년 기준 국내 기초수급자 10명 중 4명(41.3%)은 65세 이상이 차지했다. 2018년(32.8%)과 비교했을 때 10%p가량 높아진 수치다.

본보는 저소득 노인들의 식사 실태를 파악하고 소비 동향을 파악하고자 직접 탑골공원을 찾았다. 아울러 직장인조차 허우적대게 만드는 ‘물가 지옥 시대’에서 이들은 어떻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지, 주로 찾는 식당의 가격 편성은 어떤지 알아 봤다.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 위치해 있는 식당에서 3000원으로 맛볼 수 있는 우거지국밥 한상차림. ⓒ투데이신문<br>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 위치해 있는 식당에서 3000원으로 맛볼 수 있는 우거지국밥 한상차림. ⓒ투데이신문

가격과 인심으로 승부하다...3000원 국밥의 희망

10일 오전 화창한 날씨의 탑골공원에도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열띤 담소를 나누던 백발 신사들의 여유롭던 발걸음도 한층 바빠진다. 늦을수록 번호표의 대기 숫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행선지는 ‘송해 국밥’으로도 불리는 우거지 국밥집. 인심의 온도를 느끼고 싶은 이들이 찾는 골목에 한편에 위치한 60년지기 식당이다.

단출하지만 핵심은 빠짐없이 챙긴다. 큰 솥에서 퍼 올린 뜨거운 뚝배기 한 그릇과 가득 담은 흰 쌀밥, 깍두기까지 더한 한상 구성을 단돈 3000원에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은 경기 불황으로 얼어붙은 손님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하지만 착한 가격을 고수해 온 우거지국밥도 물가 상승세를 이기지 못하고 2022년부터 500원의 인상폭으로 두 차례 가격을 올렸다. 

그럼에도 가게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푸짐한 인심에 달려 있다는 듯, 가게 종업원은 국을 리필해 달라는 손님의 요청에 흔쾌히 뚝배기를 채워줬다. 국물만 더 달라는 말을 듣고서야 듬뿍 떠올렸던 건더기를 도로 덜어내는 모습에서 60년 가게 유지의 비결을 알 수 있었다.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우거지국밥집에서 종업원이 국을 퍼올리고 있다. ⓒ투데이신문<br>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우거지국밥집에서 종업원이 국을 퍼올리고 있다. ⓒ투데이신문

가격이 저렴한 데 더해 이 우거지국밥집은 ‘만남의 장소’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타인과의 합석이 자연스러운 문화인 이곳에서 손님들은 처음 대면한 이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그릇을 비우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등 활발한 분위기를 보였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가게 앞 300~500원대 커피 자판기에서 후식을 해결하는 것까지가 이들에게 일종의 루틴이었다. 우거지국밥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나온 A씨는 “맛도 맛인데 무엇보다 가격이 싸니까 밥 먹으러 자주 온다”며 “하루 한 끼는 꼭 여기서 먹는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식당들이 너무 비싸졌는데 이 식당은 저렴하고 맛도 있다”며 “밥 한 끼에 3000원밖에 안 하니 당연히 자주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 중 가게 앞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나 반갑게 악수를 하는 등 인사를 나누곤 자리를 떴다.

다만 낙원가의 모든 국밥집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은 아니었다. 늦은 점심 무렵까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3000원 국밥집과 달리 오후 12시 30분이 넘어가자 8000원에서 1만원대 국밥집 내부에는 비교적 여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처럼 재료 등의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로 형성된 국밥집에는 직장인과 대학생이 주를 이뤘으며 3000원짜리 국밥집에 붐볐던 백발의 신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날씨 좋은 날 탑골공원에서 어르신이 갓 받은 무료도시락을 맛보고 있다. ⓒ투데이신문<br>
날씨 좋은 날 탑골공원에서 어르신이 갓 받은 무료도시락을 맛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한 끼를 위해 떠나다...노인에게 멀고도 험한 ‘식사의 길’

초조한 듯, 불안한 듯 앞 열의 근황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흘끔대는 이들이 섞인 행렬의 끝에는 한 종교 단체의 무료 도시락 트럭이 정차해 있었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빨간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일찍이 도시락을 받아 탑골공원에서 만찬을 즐기던 어르신은 무료로 식사를 해결할 겸 마포구에서 왔다고 했다. 그가 식사를 하는 중에도 무료 도시락을 원하는 노인은 계속 몰려들어 줄이 짧아질 줄 몰랐다. 

그는 “매일 무료 도시락을 나눠주는데, 가끔 심심하면 이곳에 와 무료로 밥을 받아 먹는다. 한 끼를 무료로 주는 데다가 물까지 주니 더 좋다”며 “오늘은 오전 9시부터 와서 기다렸기 때문에 빨리 받은 편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10시부터 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 같다. 고단했지만 오늘은 운이 좋아서 도시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덧붙이곤 식사를 이어갔다.

오후 1시가 지난 뒤에도 줄을 서서 식사를 준비하는 노인들이 있었다. 무료급식소를 향한 인파가 탑골공원을 반 바퀴 가까이 둘러싸도록 길었다. 족히 100m가 넘는 길이였다. 행인의 걸음을 가로막지 않도록 대기줄을 정리하는 급식소 직원의 잰걸음이 이어졌다.

탑골공원 뒤편에는 무료급식소가 두 군데 있었는데, 전부 포화 상태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노인들은 후식으로 나눠주는 빵과 음료를 받아 다음 행선지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홀가분하게 급식소를 떠나는 이들 뒤로 오랜 기다림에 피곤해진 다리를 주무르는 대기줄 속 다른 노인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오후 1시를 향해가는 늦은 점심시간에도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인파가 붐비고 있다. ⓒ투데이신문<br>
오후 1시를 향해가는 늦은 점심시간에도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인파가 붐비고 있다. ⓒ투데이신문

위태롭게 흔들리는 글로벌 정세, 해결이 요원한 계엄 여파로 환율이 1450원을 웃도는 불황의 시대가 찾아왔다.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끈을 졸라매는 사회 분위기 속 이전부터 빈곤했고 앞으로도 빈곤할 노인들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져만 간다.

하지만 누구나 노인이 된다. 나날이 먼 길을 떠나 몇십 분을 기다려 겨우 한 끼를 해결하는 미래가 우리의 것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한때 우리 사회를 일으켜세운 기둥이었던 이들에게 초라한 한 끼 대신 ‘따뜻한 인심’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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