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다를 것이 없다. 자살 유족에 대한 편견 또한 심각한 차별이다. 혈육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유족이 됐다고 해서 차별받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누가 쉽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OECD 국가 자살률 1위’라는 보도를 본 당신은 무심하게 스크롤을 내린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어김없다’는 단편적인 감상 이후 새로운 기사를 향해 관심을 돌린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심각한 감상으로 발전하기에 그들은 너무나도 먼 ‘타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3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약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약 280명, 한 달에 1240명가량의 이웃을 잃은 셈이다.
이에 따라 늘어나는 자살 유족의 수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서는 1명의 자살로 평균 6명의 유족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즉 한 달에 7000건이 넘는 사별이 발생하고 있으며 매년 8만여명의 유가족이 생긴다는 것이다. 가족을 잃은 자살 유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확률은 일반인보다 20배 이상 높다. 남의 문제라며 눈을 돌리기에 이들의 고통에 부여되는 숫자는 압도적이다.
자살유족협회 강명수 회장은 “대한민국의 전 국민이 자살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인식 자체가 약하다”고 짚었다. 죽음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금기시된 사회에서는 애도를 위한 연대가 불가능하다.
강 회장은 전 국민이 자살 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야만 사람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살 유족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자살유족협회는 이 같은 당사자들의 의지를 바탕으로 지난 1월 설립됐다.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지니게 된 지 22년 만이다.
투데이신문은 자살 유족 당사자인 강 회장을 만나 한국자살유족협회의 설립 배경과 유족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 그리고 자살 예방과 유족 지원을 위한 향후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강 회장과의 일문일답.
Q. 지난 1월 한국 최초의 자살유족협회가 설립됐다. 한 해에 15만명의 자살로 인한 유족이 발생하는 한국 사회에서 유족협회 발족의 설립 배경과 의의는 무엇인가.
최근 3년 동안 자살률이 꾸준히 올랐다. 사회 전체적으로 국민의 정신건강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자살이 많아진다는 것은 자살 유족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자살 유족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 낙인을 개선하기 위해 당사자가 내는 목소리를 집합하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 왔다. 자살 유족을 위한 지원을 위해 정부나 지자체가 노력은 하고 있지만 많이 미흡한 상황이다.
자살 예방법도 만들어졌고 관련 정책을 위해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결국 예산과 실행력이 부족해 실효성 있는 결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지자체에 기대서 지원을 바라고 있기보다 자살 유족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활동의 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 자살유족협회를 만들었다.
Q. 한국은 OECD 국가 자살률 세계 1위로 자살 유족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국가 중 하나이다. 이번 유족협회도 자살률 1위를 유지한 지 22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처음 설립된 것인데, 국내 자살 문제와 유가족 지원 현황은 어떻게 보고 있나.
대한민국은 아직까지도 탑다운(Top-down·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의사결정)식 의사결정이 주로 이뤄지는 국가다.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시행해야 하고 정책이 효과가 있길 기다리는 식이다.
어떤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서 법을 바꾸거나 정책을 움직이는 국내 단체의 대표적인 사례에는 백혈병 환우회,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등이 있다. 하지만 자살 유족들은 단체로 모여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은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자살은 내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도 만연하다. 전 국민이 자살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인식 자체가 약하다. 이 부분부터 개선해야 국내 자살 문제와 유가족 지원에 대해 논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은 그 개선점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당사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도록...멈춰야 할 ‘편견’
Q.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는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간주해 남들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풍조가 있다. 특히 유족 10명 중 7명은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올 것을 걱정해 고인의 사망 사실을 알릴 수 없다고 응답한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설문조사 결과도 있는데, 자살 유족들이 노출되기 쉬운 사회적 편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유족들이 가장 흔하게 직면하는 편견은 ‘일이 악화될 때까지 너희는 무엇을 했느냐’는 식의 비난이다. 심리부검 결과를 보면 자살한 분들 중 90% 이상은 죽기 전에 어떤 경고나 사인을 보낸다. 하지만 이 경고나 사인을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경고 사인을 인지하지 못해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경우 자살 유족들은 큰 죄책감을 갖게 된다.
이 밖에도 유족 중에서는 ‘재수없다’는 편견으로 인해 결혼식에 초대 받지 못한 경험을 하신 분도 있다. 죽음과 질병을 두려워하듯 자살 유족에 대해서도 ‘내가 그 사람들하고 어울리거나 가까이하면 죽음에 전염될 것 같다’는 편견이 존재하기도 한다.
자살 자체를 향한 편견도 자살 유족을 향한 편견과 다름없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살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신념이 퍼져 있고 자살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어떤 특별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화 돼 있다. 현대 사회는 굉장히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자살의 원인은 절대 단순화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부분을 지나치게 개인 문제로 치부한다는 점에서 다소 계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유족협회 선례로 볼 수 있는 일본의 ‘라이프링크’가 일본 자살률 30%가량을 감소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일본은 자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자살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다는 특이점이 있었는데, 자살유족협회 설립 당시 ‘라이프링크’의 어떤 점을 참고했나.
지난달 도쿄 아키타현에 방문해 라이프링크 사무국장을 만나고 돌아왔다. 라이프링크의 목표는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결국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도쿄에서 만난 라이프링크는 자살 유족에 대한 편견과 낙인에 대해 ‘차별’이라고 정의했다. 이 의견에 크게 동의했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다를 것이 없다. 자살 유족에 대한 편견 또한 심각한 차별이다. 혈육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유족이 됐다고 해서 차별받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자살 유족을 향한 편견과 낙인 역시 차별이라는 사실을 잘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자살예방법의 경우도 그렇다. 한국의 경우와 달리 일본의 자살예방기본법은 국가와 지자체, 사업장, 국민에게까지도 책임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위한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민간단체의 역할은 국가와 시 차원에서 자살 예방을 잘 해내고 있느냐를 감시하고 압박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 함께 짊어져야 할 애도의 무게...필요한 것은 ‘공감’
Q. 회장님은 심리상담사와 한국자살사별자단체 미.고.사(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운영진으로도 오랜 기간 활동하신 바 있다. 자살유족협회의 회장을 맡게 된 특별한 사연이나 경위가 있는지.
어머니가 43년 전에 돌아가셨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일 적부터 우울증을 앓으시다가 성인이 된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는데, 당시에는 그의 죽음에 대해 얘기할 수가 없었다. 자살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장례식에서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린 자식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길 꺼려 했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침묵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분이셨기 때문에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다만 그 이후 삶에 집중해 바쁘게 살다 보니 ‘애도’라는 감정을 지연시켜 왔다. 40대에 접어들고서야 지연된 애도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졌고 애도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도움을 받을 곳을 찾다가 우연히 상담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심리 상담사로 활동하게 됐고 애도 과정을 겪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다 보니 ‘나 같은 자살 유족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자조 모임을 찾았다. 오랜 활동 끝에 미.고.사 리더까지 맡게 됐다. 여기까지가 유족협회 회장 직전의 이야기다.
유족협회 회장은 어떤 개인적인 성취가 주된 목적이었다기보다 오랫동안 한국자살사별자단체의 운영진으로서 활동을 해 왔고 나이가 많은 전문가다 보니 맡게 됐다고 생각한다.
Q. 침묵만이 오간 장례식 이후 ‘지연된 애도’를 겪게 됐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자살 유족의 애도를 위해서는 어떤 말들이 도움이 될 수 있나.
유족의 입장에서는 침묵 역시 상처가 될 수 있다. 일반적인 장례식에서도 슬픈 애도의 마음을 전하는 일에 서툰 분들이 많다. 할 수 있는 말이 ‘괜찮을 것이다’, ‘호상이다’, ‘천국에 가셨다’는 말이 대부분인데 이런 말들은 유족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쩌면 장례식에서 우리가 건네야 하는말은 그분이 살아계셨을 적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고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며 좋은 사람이었다는 증언일 것이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참 좋은 분이었습니다’ 같은 말이 도움이 된다. 말을 건네기 어렵다면 손을 잡아주거나 안아주고, 가능하다면 같이 울어주는 등 행동을 통한 공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원인은 알 수 없고 알기 어렵다”...한 줄로 지키는 ‘중립’
Q. 최근 문화예술인 자살 보도를 둘러싸고 언론의 보도 방식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의 자살 보도 방식이 유족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실 자살 보도 자체는 필연적으로 유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돼 있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보는 것 자체로도 가족의 죽음이 생각나고 외상이 된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유족분들은 자살이라는 단어를 보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Q. 한국기자협회의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에서도 자살 사건을 가급적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시에 자살을 합리화하지 말며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사건을 다룰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보도준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현행 한국 언론의 자살 보도 방식에서 가장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살 보도의 목적에 대해 더욱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살 보도란 기본적으로 다시는 자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야 한다.
기자분들은 자신이 유족이 됐다고 가정하고 기사를 읽는다면 어떨지 고려하며 글을 써 주길 바란다. 특히 연예인, 정치인 등 공인을 다루는 기사의 경우 대부분 그들의 자살 원인에 대해 쉽게 짐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타인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전 그들의 모습을 안다고 해서 죽음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죽음에 대한 원인 추측, 가정, 부정(‘일어나서는 안 될 일’ 표현 등) 등은 유족의 입장에서는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자살 보도에서는 죽음에 대한 원인을 추측하는 인과론적인 접근은 지양해야 하고 무조건 중립적인 단어 선택을 해야 한다. 자살 경고 사인은 가족조차 알아채기 힘든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자살의 원인은 알 수 없고 그만큼 알기 어렵다’는 내용까지 보도에 함께 넣을 때 유족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중립적인 자살 보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예산 문제로 정책 표류…제대로 된 자살 예방 논의 필요
Q. 국가적 차원의 책무와 예방정책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자살예방법’이 재정됐음에도 자살은 줄어들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한다고 보고 있나.
2019년부터 시행된 자살 유족 원스톱 서비스를 예로 들고 싶다. 자살 유족에게 임시 주거 형태의 숙박업소 비용, 학자금, 사후 행정처리 비용, 특수청소비 등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인데 가장 잘 운영되는 곳이 인천이다. 인천은 실제로 자살이 줄어들었고 자살률이 전국 평균보다 낮게 집계됐다. 하지만 원스톱 서비스 전국 확대에 대한 논의는 현재까지도 지연되고 있다. 예산 문제로 인해 정책이 표류하고 있는 것인데 논의가 지체되는 사이 자살은 계속 늘어난다.
전반적으로 관련 사업에 종사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개선돼야 한다. 자살 예방의 대부분 인력이 계약직이고 처우가 좋지 않다. 상대적으로 연령이 어리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람이 바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부터 운영한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에 대해서도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정부가 아닌 시·군·구 차원에서도 소식을 반복적으로, 활발히 퍼뜨려야 하는데 홍보 담당 인력이 부족하다. 자살이 가장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꼽히는 나라에서 관련 사업에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게 책정된다는 건 큰 문제라고 본다.
Q. 자살을 줄이기 위한 협회의 중장기적인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가. 향후 어떤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는지.
자살과 자살 유족을 향한 낙인을 없애기 위해 홍보와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고.사 운영진으로 활동할 때 개최한 바 있는 <자살, 말할 수 있는 죽음> 순회 포럼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같은 목적을 가진 여러 기관들과 협력해 국민 정신건강 증진과 자살 유족을 위한 행사, 캠페인을 마련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자살,>
아울러 유족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지만 애도 과정에서 잘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조 모임’이다. 하지만 홍보가 잘 되지 않고 사회적인 편견이 있기 때문에 자조 모임에 참여하는 유족들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유족협회는 전국의 자조 모임의 실태를 조사하고 보다 더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각 지역의 자조 모임 연결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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