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10년 도박’에 지친 제약바이오 업계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이들이 새롭게 타기팅한 사업은 동물용의약품이다. 기존 사업에 비해 접근성이 높고 시장 성장성도 높다는 판단 아래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펫팸족’을 노리는 분위기다.
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산업 시장 규모는 지난 2022년 8조원에서 2027년 1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성장률(CAGR)은 14.5%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 규모도 50조1850억원에서 연평균 7% 성장해 2029년 93조1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 기업별로 동물용의약품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수익성 다각화를 노리고 있다. 유한양행·대웅제약 등 전통제약사부터 카이저바이오·노드큐어 등 바이오 기업들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업계가 동물용의약품에 관심을 보이게 된 건 ‘수익성 다각화’ 때문이다. 도박에 가까운 신약 연구개발(R&D)보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다는 판단이다. 통상 신약개발은 R&D가 10년가량 소요되지만 성공 자체가 미지수인 데다가 단기간 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는 인체용의약품과 함께 ‘일거양득’을 노릴 수 있다는 기대다. 인체용의약품의 R&D 과정에서 동물을 통해 약효와 안전성을 확인한 물질로 동물용의약품을 개발하면 인체용·동물용 시장 두 분야에서 동시에 이득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내포돼 있다.
인체용의약품 개발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동물용의약품은 상대적으로 생산공정 등 프로세스가 간소화돼 개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도 있다. 동물에서의 필드 임상 데이터는 인체용 의약품 허가 과정의 유효성 자료로도 쓰인다. 유전적 특성이 상이하기 때문.
업계 관계자는 “인체용의약품을 개발할 때 많은 동물실험이 이뤄지다 보니 인허가 과정에서 서류 입증 과정이 적어 리스크도 적어진다”면서 “펫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펫 타기팅 신약이 있지 않은 점도 메리트로 작용하며, 그런 면에서 시장성도 충분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향후 성장 가능성도 매력적으로 평가받는다. 리서치앤마켓의 조사 결과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은 2024년 152억8000만 달러에서 2030년 226억2000만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시장이 작지만 미리 시장에 뛰어들어 선점할 경우 큰 수익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인식도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다. 반려동물(pet)과 가족(family)의 합성어 ‘펫팸족’이 타깃층이다. KB경영연구소 조사에서는 2022년 말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552만 가구에 달하며 그중 81.6%는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반려동물 의료 수요 증대로도 이어진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KB금융지주의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서는 2023년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가구는 평균 78만7000원을 의료비로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1년 46만8000원과 비교했을 때 31만9000원(68.2%) 상승한 셈이다.
대표적으로 유한양행이 있다. 유한양행은 면역항암제 개발 전문 기업 박셀바이오와 함께 국내 최초 반려견 전용 유선종양 면역항암제 ‘박스루킨-15’의 판매·유통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박스루킨-15’는 박셀바이오가 개발해 지난해 8월 품목허가를 받은 면역항암제다.
해당 제품은 반려견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신개념 치료제다.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한양행은 자사 마케팅 조직과 전국적 유통망을 내세워 전국 동물병원에 박스루킨-15를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대웅제약은 반려동물 헬스케어 전문기업 ‘대웅펫’을 통해 반려동물의 만성질환과 항노화를 위한 혁신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또 동물의약품 전문 임상 CRO, 프리미엄 영양제 출시, 반려동물 맞춤형 플랫폼 서비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며 시장 진출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는 당뇨병 치료제 ‘엔블로’의 동물용으로 만든 ‘엔블로펫’이 있다. 엔블로펫은 현재 임상 3상의 마무리 단계에서 품목허가를 앞두고 있다. 이와 함께 동물용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제 ‘DWP212525’는 2022년 임상 2상을 시작해 효능·안전성을 평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카이저바이오는 동물용 인지기능장애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하나의 치료제로 단일 위험인자를 제거하는 기존 치료제와 달리 하나의 치료제로 금속이온, 아밀로이드, 활성산소 등 4~5개의 치매 위험인자들을 조절·제거해 인지기능장애를 개선해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오는 2026년까지 인지기능장애증후군 환견 대상 임상시험을 통한 동물용의약품 인허가를 추진하고 있다. 이후 인체용 치료제 개발까지 확장한다는 청사진까지 그리고 있다. 최근에는 동물용의약품 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한창업투자로부터 2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노드큐어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염증성 장질환 예방·치료제와 면역항암제를 바탕으로 동물용의약품 시장에 진출했다. 회사가 개발 중인 후보물질은 마이크로바이옴으로 부작용이 적고 편리한 복용 편의성을 제공하고 치료비용의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언급된다.
특히 반려동물 면역항암제 ‘Canine anti-PD-L1’은 노드큐어 공동창업자 고현정 강원대학교 약학대 교수가 특허출원한 소재다. 노드큐어에서 기술이전받아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2027년까지 독성시험과 유효성 재검증을 통해 국내 품목허가를 받는다는 구상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동물용의약품 시장은 펫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함께 확대될 것”이라며 “반려동물에도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협업 비즈니스 모델이 펫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며, 향후 디지털 헬스케어도 이 시장을 확장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데는 아직 어려움이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에드바이오텍 관계자는 “회사 신규 신약 후보물질은 해외수출을 위해 개발되고 있지만 보조사료로 등록할 예정”이라며 “해외에서 의약품으로 승인받으려면 현지 임상시험과 공장 설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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