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공정하게 말하는 법-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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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공정하게 말하는 법-②

연합뉴스 2025-03-07 09:43: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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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본인 제공

◇ 귀성길/ 귀경길

성(省)은 중국의 지방 행정 단위다. 산둥성(山東省), 후난성(湖南省), 저장성(浙江省) 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이 흔적이 남아 일본의 정부 조직도 성(省)이다. 외무부 대신에 외무성(外務省), 국방부 대신에 방위성(防衛省), 재무부 대신에 재무성(財務省) 이런 식이다.

성(省)은 한국인에게는 그리 익숙지 않다. '귀성길', '귀성객'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불편한 이유다.

사전에는 '객지에 나가 있다가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밝히고 있는데, 성의 본래 실체는 빼놓고 그저 좋게만 풀이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간편, 편의, 관용(慣用)의 가치와 봉건시대의 잔재가 충돌하면 무얼 택해야 하는가.

'고향길', '고향 찾는 시민' 등으로의 변환을 고려할 때가 됐다.

마찬가지로 '귀경'(歸京)도 언짢다. 지방 분권, 균형 발전은 이념, 정파, 진영을 넘어 한국인이라면 너나없이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 아니던가.

고향 갔다가 모두 서울로 오는가? 인천 시민, 경기 도민은?

서울이 경성(京城)이 아니라 서울인 것은 중국, 일본과 구별되는 우리 민족 특유의 자주(自主), 자립(自立), 자강(自彊) 정신을 드러내는 독자성, 독립성의 아름다운 구현이다.

북경(北京), 남경(南京), 동경(東京), 교토(京都)와의 친연성(親緣性)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대한정신(大韓精神)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저 '귀갓길'이면 족하지 않은가.

'귀가 차량', '귀가 행렬' 등 다른 표현을 생각할 때가 됐다.

서울을 '빠져나가다'도 문제다. '서울을 떠난 차량'이 더 좋아 보인다. '제한된 환경이나 경계의 밖으로 나가다'가 '빠져나가다'의 뜻이라 무리 없어 보이지만, 느낌이 마뜩잖다.

바로 미묘한 뉘앙스를 말하는 거다. '빠져나가다'는 늪이나 진흙탕, 힘겨운 상황, 혹은 어둠의 소굴 등을 연상시킨다.

물론 과밀 주거, 미세먼지 등으로 고약한 서울이지만, 그래도 자기가 사는 거주 공간이다. 중립적인 표현이 더 낫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더 큰 문제다. 지역 차별이다.

방위가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서울(수도)을 어떻든 '올라가는' 수월적 위치로 치부하게 돼 그렇다.

서울에서 강화, 김포, 춘천, 강릉, 파주, 양주, 연천 등으로 가는 가족들을 보자. '내려가는' 것이 아니잖은가.

게다가 '귀성'과 '귀경'은 말할 때 자주 헛갈린다. 민주적이고 교양 있는 시민들의 언어생활에 쓸데없이 불편을 주고 있다.

◇ 배려언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은 배려언어 쓰기가 그 첫걸음이다.

검둥이, 호모, 튀기, 절름발이, 벙어리, 복부인 등의 단어는 적어도 공공언어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성별·계층·나이·인종·국적·지역·피부색·학력 등에서 차별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이건 적어도 휴머니티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한, 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상대를 비하, 무시, 차별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스스로 당당하고 공정한 것 또한 PC의 영역이다.

'저희 나라'가 거의 자취를 감춘 이유다. 메트로나 KTX에서 '우리 열차', 지역의 문화해설사들이 '우리 고장'이라 하는 것은 '저희'보다 그래서 근사하다.

중국을 칭할 때 일부 언론이 여태 눈치 없이 '대륙' 운운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대륙'이 자연스러워지려면, 우리가 스스로를 '반도(半島)'라고 칭하는 데 무리가 따르지 않고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우리를 툭하면 '반도', '반도인'이라 부르며 깔본 자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었다. 중국은 자신들이 상대할 '대륙', 우리 조선은 그리로 가는 길목인 '반도'라 칭한 것이다.

그래서 호텔, 아케이드, 식당 등에 '반도'라고 숱하게 이름 붙였었다.

이런 선각자들의 지적을 받아들임으로써 '반도'라는 상호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한반도'는 결이 조금 다르다. 남한과 북한을 아우르는 데 쓰임이 실효적이다).

역사성을 차치하고라도 정서적으로 '대륙' 하면 왠지 범접할 수 없는 크고 장대한 상대를 대하는 것 같지 않은가?

상대적으로 우리는 왜소하게 느껴지고 말이다. 부지불식간, 사대주의와 중화주의의 늪에 빠진 거라고도 볼 수 있다.

'대륙'이 어디 중국뿐이랴. 이것도 그러니까 클리셰(cliche)다. 그저 '중국'이라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부르고 적는 게 전향적이다.

표현의 구체성, 상세성보다 앞서는 가치가 배려언어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원작이 1937년, 애니메이션이 1959년에 나왔다. 국내에 소개된 것도 반세기가 넘는다. 그러나 그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이 부재했다.

백설공주 동화에서도 썼으니 괜찮지 않나? 이건 단견이다.

이제부터라도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보는 게 민주 시민의 자세다. '난쟁이'의 순화어는 '지체장애인'이다. '일곱 명의 난쟁이 왕자'를 '일곱 명의 지체장애인 왕자'라 하면 여러모로 뜨악할 터.

'키 작은 일곱 왕자'나 '일곱 명의 키 작은 왕자' 정도가 어떨까 한다.

이 기회에 정리하면 장님·소경·봉사·맹인은 모두 '시각장애인'으로 순화·표준화됐다.

'눈이 멀다', '애꾸눈', '외눈박이', '사팔뜨기' 등도 피해야 한다. 아울러 '눈뜬장님', '장님, 문고리 잡기' 등의 속담도 경계해야 한다.

귀머거리는 이제 청각장애인이다. '귀가 먹다', '귀머거리 삼년' 등의 말을 조심해야 한다. 벙어리를 순화한 말이 언어장애인이다.

'언청이', '말더듬이' 등도 좋지 않다. '꿀 먹은 벙어리', '벙어리 냉가슴' 등도 쓰지 않는 게 좋다.

지체장애인은 팔, 다리, 몸통이 불편한 장애인을 아우르는 말이다. '앉은뱅이', '절름발이', '절뚝발이', '반신불수', '외팔이', '뻗정다리', '땅딸보' 등은 피한다.

손 관련, '조막손', '육손이'도 비하에 속한다. '앉은뱅이 자세' 같은 묘사적 표현, '절름발이 행정(行政)' 같은 비유적 표현도 삼간다.

신체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도 유의해야 한다. 특히 비만한 사람을 대상으로 '돼지 같다'라고 한다든지, '뚱보', '뚱뚱보', '뚱뚱이' 같은 말은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적장애인은 '정신 지체'로 순화됐었으나 다시 고쳤다. '저능아', '정신박약아', '얼간이', '띨띨이', '칠뜨기', '팔푼이', '등신' 등을 피해 써야 한다. '미치광이', '정신병자' 등을 따로 '정신장애인'으로 쓰기도 한다.

척추장애인은 '꼽추', '곱사등이'의 순화어이며 '문둥이', '나병환자'는 '한센(Hansen)인'으로 통일한다.

지체장애인을 향해 점잖은 지인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목격했다.

"다리를 저시네요."

상대 높임 어미 '시'를 넣었더라도 이미 '절다'가 상처를 준다.

"다리가 불편하신가 봅니다"가 완곡어법을 탑재한 교양어, 배려언어, 언어복지의 세계다.

◇ 얼굴마담

'얼굴마담'은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단어다. 단순 비교로 프랑스어를 보자. 마담(madame)은 '부인(夫人)'이다. 그러나 '얼굴 므시외(monsieur)', 즉 '얼굴 신사'는 없기에 그렇다.

'복부인', '김여사'(운전 초보 여성)는 꽤 사라졌는데 '얼굴마담'은 이토록 질긴 생명력을 보인다. 정치인, 저널리스트, 방송진행자 등은 늘 중립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 사용에 유념해야 한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전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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