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언어는 여성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 글 쓰는 여자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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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어는 여성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 글 쓰는 여자들 #2

마리끌레르 2025-03-06 21:32:23 신고

3줄요약

언어가 와해되고 기존의 질서가 허물어지는 것. 내장과도 같은, 날것의 말에서 해방과 자유를 마주하는 일.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문학 세계 안에서 가능한 것들.

“리스펙토르의 책은 어떤 말로 설명하더라도 설명된 그것의 바깥에 있는 것 같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르 소개하기 전, 배수아 작가의 말을 빌려 미리 변명하고 싶다. 그를 적확히 소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 안에서 나는 자주 미끄러진다. 아니, 미끄러지는 것을 넘어 그 위에 발을 붙이고 서 있지도 못한다. 이리저리 파열되어 떠돌아다니는 언어들, 그 강렬한 매혹 앞에서 그저 말을 잃고 부유할 뿐이다.

“당신의 온몸으로 나를 들어라”(<아구아 비바> 중)

20세기 브라질 문학의 중심인물로 꼽히는 여성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배수아 작가의 번역으로 <달걀과 닭>이 한국에 소개된 이후, <G.H에 따른 수난>, <야생의 심장 가까이>, <별의 시간> 등의 소설이 출간되었고, 그렇게 리스펙토르는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매혹시켰다. 그의 문학을 소개할 때 흔히 쓰이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주의할 것. 리스펙토르는 문학이 아니다. 주술이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듯 그의 글은 명확한 논리나 서사구조에 기대지 않는다. ‘나 없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혹은 그렇게 진정한 ‘나’로 나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중얼거릴 뿐이다.

“이 언어는 여성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G.H.에 따른 수난> 책 표지 이미지

“자신과의 분리, 과잉된 개인을 벗어던지는 일은 상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실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피부를 벗겨내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통증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조금씩 한 겹 한 겹 개성의 특질들을 발라내는 것이다. 나를 특징짓는 것은 결국 타인들에게 일차적으로 보이는 내 모습이며 내가 피상적으로 인식하는 나이다. 바퀴벌레가 모든 바퀴벌레의 바퀴벌레임을 깨달은 그 순간처럼, 나는 내 안에서 모든 여자의 여자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G.H에 따른 수난>)

배수아 작가는 <G.H에 따른 수난>을 번역하며 ‘이 언어는 여성이다’라고 말했다. <G.H에 따른 수난>은 한 여성의 의식이 무너지고,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의심하게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사건을 묘사하거나 서사를 구축하지 않은 채, 화자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여성은 오래전부터 침묵, 즉 자신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과 자연스럽고 내밀하게 연관돼 있”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말한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라고. 자기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갈 수 있는 능력에 반해, 나의 존재와 무관하게 쉽게 타자화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단절과 결핍 더 나아가 고통을 겪기도 한다. 명명되고 불려지는 것. 인식되고 고착화되는 것. 가끔은 그 모든 것이 내가 아닐까 믿게 되는 것. 이 모든 것 너머로 리스펙토르가 언어 자체를 의심하고 존재의 본질을 깊숙이 파고들 때, 우리는 해방을 경험할 수 있다. 시선과 규범. 역할과 젠더. 나를 설명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이 순간 나는 무엇인가? 어둡고 습한 새벽에 건조하게 메아리치는 타자기다”(<아구아 비바> 중)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 책 표지 이미지

늦은 밤, 타자기 앞에서 하염없이 자신을, 자신을 둘러싼 것을, 하나의 세계를 토해내는 여자를 생각한다. ‘글쓰기는 저주’라고 쓴 이후 ‘글쓰기는 저주이긴 하나 구원하는 저주’라고 다시 말했던, 살기 위해 쓸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를 말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산문 <세상의 발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는 짧은 순간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사물처럼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그것을 나르시시즘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존재하는 기쁨’이라 부르겠다. 외형에서 내면의 울림을 찾는 기쁨. 물론 나 자신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다만 존재한다.” 그가 생애를 바쳐 쓴 글 안에서 우리는 ‘존재하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리스펙토르가 뿜어내는 그 기묘한 에너지 안에서, 언어의 잔해 속에서 마음껏 길을 잃고 헤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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