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미국이 중국 해운·조선업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선박에 대한 수수료 부과를 추진하면서, 글로벌 선주사들의 발주처가 한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는 한편, 조선업이 한미 통상 협상의 주요 카드로 부각되면서 군함·탱커·쇄빙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추가적인 수주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선사의 선박이나 중국에서 제조된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경우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제재안은 중국 선사뿐만 아니라 중국산 선박을 소유한 선주까지 포함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21일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경우, 중국 국유기업 COSCO를 포함한 중국 해상 운송 사업자가 소유한 선박 1척당 최대 100만 달러(약 14억6000만원), 중국산 선박을 사용하는 다른 운영자의 경우 150만 달러(약 22억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미국의 제재안은 오는 24일 공청회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현재 중국 조선소는 한국 대비 약 20% 낮은 가격에 선박을 수주하며,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등 일반 상선 분야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친환경 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보다 상대적으로 기술 요구 수준이 낮아 가격 경쟁력이 더욱 부각되기 때문이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 수주 실적에서 중국이 70%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으며, 한국은 17%로 2위를 차지했다. 다만 중국산 선박에 수수료가 부과될 경우, 중국 조선업계의 가장 큰 경쟁력인 가격 우위가 약해질 수 있다.
증권업계는 이번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국제 선주사들이 선박 발주처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선박은 한 번 발주되면 오랜 기간 운항되는 자산이기 때문에, 선주사들은 신뢰할 수 있는 조선사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미국이 중국산 선박을 사용하는 선주사들에게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부과할 경우, 선주사들은 보다 안정적인 대안으로 한국 조선소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글로벌 5위 해운사인 독일 하팍로이드가 선박 발주처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선박은 고가의 장기 자산이기 때문에 약간의 불확실성도 선주사의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략적 관점에서 글로벌 선주사들이 향후 한국산 선박의 비중을 높일 유인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국내 조선업계도 미국의 대중국 규제 강화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규제 리스크를 피하려는 선사들이 한국 조선소로 발주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 조선업계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검토 중인 방안이 추진된다면 선주사들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한국 조선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6~28일 미국을 방문해 한국 조선업체가 미국의 군함, 탱커, 쇄빙선 등 대형 선박을 장기 패키지로 발주할 경우 우선 제작·납품할 수 있다는 협력안을 제안했으며, 미국 측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중국이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전략적 협력 대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글로벌 2위 조선 강국인 한국이라는 점이 이번 협상에서 중요한 카드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방미 전 주요 조선사들과 협의를 거쳐 기존 발주 물량의 납기를 조정해 미국의 대량 주문을 소화할 여력을 확보했다. 또한, 한미 조선 협력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미국의 관련 법·제도 개정이 필요한 만큼 유연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코트라가 지난 2일 발간한 ‘미국 해양 조선업 시장 및 정책 동향을 통해 본 우리 기업 진출 기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해군은 2054년까지 신규 함정 조달을 위해 연평균 약 300억 달러(약 42조 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현재 보유 중인 296척의 함정을 2054년까지 381척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향후 30년간 총 364척(연간 12척)의 군함을 건조해야 한다. 이는 조선업계에 대규모 수주 기회가 열릴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국의 해군력 증강 계획과 조선 부문의 협력 확대 논의가 맞물리면서, 한국 조선업체들은 군함·탱커·쇄빙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수주 기회를 확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조선업계는 대미 협력을 강화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전망이다. 정부 역시 이를 전략적 협력의 기회로 삼아 조선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고, 장기적인 대응을 위한 실무 협상 채널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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