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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 후 본격화한 관세 전쟁 과정에서 서명한 여러 각서 중 주목할 만한 게 있다. 지난달 21일 서명한 ‘미국 혁신기업에 대한 부당·불공정 벌과금 대응을 위한 각서’다. 디지털 세를 비롯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부담을 주는 외국 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이고 반경쟁적 조치로 규정하고, 세금과 차별적 관행, 지식재산권 침해 등 모든 행위를 면밀히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강력한 정책 신호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 관세 조치를 통한 무역수지 개선이 주요 정책 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같은 일련의 조치를 고려했을 때 장기적으론 디지털 패권을 확보하는 게 더 핵심적인 목표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이 첨단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고 디지털 기업을 보호하려는 전략적 의지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 무역 질서 속에서 미국 중심의 새로운 경제 규범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 같은 정책이 트럼프 2기 이전부터 시작된 움직임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3년 8월 발표한 제14105 행정명령 역시 국가안보를 이유로 특정 국가의 미국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담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 행정명령이 국가안보 보호에 충분한 역할을 하는지 검토하는 한편 반도체나 AI, 양자컴퓨팅, 초음속, 항공우주 등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추가적인 대중국 투자 제한 방안도 고려 중이다.
한국도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도 데이터 반출 금지나 망 사용료 부과, 온라인 플랫폼 경쟁 촉진법 등 정책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조사 대상에 포함돼 앞으로의 무역·규제 환경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단기적인 관세전쟁에 대응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100년 미래를 책임질 AI 및 디지털 기술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의 첨단기술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 유럽연합(EU)과의 협력 체계를 계속 조정하는 게 앞으로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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