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상속세 완화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상속세 개편'이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상속세가 중도층 표심을 사로잡을 카드로 여겨지자 여야가 모두 상속세 개편 논의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다만, 민주당은 1주택자의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공제 확대를 주장하고 있으나 국민의힘은 최고세율 인하와 기업의 가업승계 부담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재명, 서울 중산층 32만명 상속세 완화 주장.. 중도 표심 공략
與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및 가업상속공제 확대 해야"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공제 금액을 현행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상속세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중도층 공략의 일환으로 상속세 개편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24일 경제 유튜브 '삼프로TV'에 출연해 "28년 전 상속세 면세점을 정할 때 서울 집값은 10억 미만이었지만 최근 급등하면서 지난 2023년 갑자기 상속세 납부 대상자가 15%가량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 초상을 치르고 슬픈데, 상속세를 못 내서 살던 집을 팔고 서울 밖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건 잔인하다"며 "부모, 배우자가 떠난 것도 억울한데 같이 살던 집까지 떠나야 하면 얼마나 억울한가"라고 상속세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개편안은 최고세율은 그대로 두고 일괄공제 기존 5억원을 8억원으로, 배우자공제 5억원을 10억원으로 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즉 18억원까지 세금을 면제받도록 하면 서울 등 수도권의 대다수 중산층이 상속세로 인해 집을 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서는 '초부자감세'라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의 구상대로 상속세가 개편되면 서울 아파트 보유자 32만여명이 최대 1억원의 상속세 감면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주장하는 가업 승계 상속 공제액 상향(600억원→1000억원)에 대해서는 "현행 600억원으로 올린 지 몇 년 안 됐다"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국세청 출신 임광현 민주당 의원은 "15년간 가업상속공제는 600억원으로 늘어났고 이제는 1200억원으로 늘려달라고 한다"며 "공제 증액에 따른 효과가 있었는지 따져볼 수 있는 데이터가 없는데 어떻게 졸속으로 가업상속공제를 늘릴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가업 승계 부담 완화'를 위해 상속세 최고세율을 반드시 인하(50%→40%)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6%)보다 2배 가량 높다는 것을 이유로 삼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박수영 의원은 "최대주주 할증까지 합하면 상속세가 60%에 달해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거나 아예 매각에 나서는 실정"이라며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는데, 일자리를 사라지지 않게 하자는 것이 소수특권을 위한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조기대선 국면서 대선공약으로 부상하나.. 與野 잠룡들 가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해지며 조기대선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상속세 개편은 대선공약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잠룡들도 상속세 개편에 가세하고 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상속세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이 대표의 개편안은 민주당 지지층인 4050세대를 위한 것이라며 "자녀 세대인 2030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맞닥뜨릴 문제에 대해서 외면하는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녀공제 몇 퍼센트 하자 말자 왔다 갔다 하는 미시적 얘기 그만 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상속세를 폐지할 정도의 대수술을 얘기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경제 현실과 자산 축적 구조 변화를 반영한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문제는 상속세제가 지난 25년 동안 자산 가격 상승과 축적 구조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방치됐다는 것"이라며 "결국 극소수 초고소득층을 겨냥했던 세금이 이제는 중산층까지 옥죄고 있는 실정"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공제액 상향이 아니라 보다 정교한 개편이 필요하다"며 자녀 공제액을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하고 손자녀 공제를 5억원으로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오 시장은 "이러한 사전 증여공제 확대는 자산의 세대 간 이전을 촉진해 생산적 분야로 활용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권에서는 이 대표의 상속세 개편에 대해 '감세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정치권에서 감세 논쟁, 감세 포퓰리즘이 극심하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다. 그래서 감세 동결, 재정 투입에 대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국힘 "이재명, 인생 자체가 사기" "상속세 완화 목적은 오직 선거"
민주 "토론하자는데 욕, 집권 여당 맞나" "955명 초부자만 대변"
상속세 개편이 핵심 이슈로 부상하면서 여야의 신경전도 과열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아직도 초부자 감세에 미련 있나. 뒤에서 거짓말하지 말고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공개토론을 합시다"라며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그러자 권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인생 자체가 사기이고 범죄인 이 대표의 무례한 공개 질의에는 직접 답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아무리 범죄 피고인이라 하지만 명색이 공당의 대표인데 상대 당에 대해서 그렇게 무례한 언사를 논하는 것 자체가 그분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공당의 대표인 만큼 상대 당에 대해서 좀 기본적인 예의와 품격을 갖추기를 통보해 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다음날인 지난달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권 원내대표가)저한테 인생을 사기와 범죄로 살았다고 하는데, 왜 욕을 하나"라며 "국민 정책을 토론하는데 왜 욕을 하나, 집권 여당이 할 짓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이후 국민의힘이 주제를 한정하지 말고 '끝장 토론'을 벌이자고 역제안하면서 상속세 개편 토론이 성사되는 듯 했다.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24일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국민의힘을 향해 '극우내란당'처럼 막말과 모욕적이고 적대시하는 언어를 빼고 토론을 한다면 기꺼이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권 원내대표가 토론에 나온다면) 우리도 원내대표가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나가면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뭐가 되겠나"라면서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을 포함해 3대 3으로 토론을 하자"고 다시 제안했다.
그러자 권 원내대표는 "저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해 이를 수락했더니, 갑자기 말을 바꿔 3대 3 토론을 제안하며 또 도망을 가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다시 이 대표에게 제안한다. 주제를 가리지 말고 일대일로 무제한 토론하자"고 촉구했다.
이달 들어서도 여야의 설전은 이어지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해 상속세법을 부결시킨 이 대표가 지금에 와서 상속세 완화를 언급하는 목적은 오직 선거"라며 "분노한 중산층은 상속세 완화로 마음을 달래고, 징벌적 최고세율은 유지해 좌파 지지층의 표를 얻어보겠다는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대주주 상속세율은 최고 60%에 달한다. 조부모가 창업한 기업이 자식을 거쳐 손주에게 이르면 불과 16%의 지분만 남게 된다"며 "기업이 사실상 국영화되는 구조에서 100년 기업이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살던 집에 계속 사는 것이 좋듯 기업도 경영을 이어가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법인세를 내는 것이 국가와 사회에 더 큰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민주당은 "국민의힘은 955명 초부자만의 대변인인지 답하라"며 맞받았다.
황정아 대변인은 같은 날 서면 브리핑에서 "최고세율 50% 적용대상자는 2022년 기준 전체 국민 중 955명에 불과했다"며 "국민의힘엔 오직 이들만 국민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모든 정책의 최우선은 초부자 감세인가"라며 "부자 감세로 나라 곳간을 텅텅 비워놓고도 또 부자 감세만 외치는 국민의힘의 뻔뻔함에 기가 막힌다"라고 비판했다.
야4당·시민사회 "상속세 완화 경쟁 중단하라"
국민 70%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찬성"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상속세 완화 경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야4당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는 지난달 27일 국회 기자회견을 열고 "상속세는 부의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고, 기회의 평등을 도모해 사회의 활력을 높이는 세제"라며 "양극화가 심화되고 나라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 거대 양당이 벌이고 있는 감세 경쟁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는 상속세와 증여세가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자산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속세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부자 감세'는 막대한 세수 결손과 세수 감소, 재정 악화를 초래했는데도 거대 양당은 고자산가, 재벌·대기업을 위한 감세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18억 원짜리 주택 상속해도 상속세는 1.8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부모 잘 만나서 세금 내고도 16.2억 원이 생기는데 이게 비인도적인가. 빚이 많아서 상속을 포기한 사람이 지난해에만 3만 명인데, 이 사람들보다 십수 억씩 상속받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비인도적"이라고 꼬집었다.
차 의원은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 "우리나라의 소득세와 상속세 부담을 합치면 GDP의 7.3% 수준으로 OECD 평균 8.3%, 미국 12.1%, 독일 10.7%, 영국 10.1%에 못 미친다"며 "국민의힘은 이러한 사실은 쏙 빼놓고 상속세 최고세율만 비교해서 세율을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도 "민주당의 상속세 공제안은 '중산층'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 상속세 대상자 비율은 5.7%이며 민주당 안이 적용되면 1.9%로 떨어진다"며 "상속세를 내는 중산층은 없다. 명백한 부자감세"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민여론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인하해야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상속세 개편 논의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5~27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에게 상속세 관련 인식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 포인트)한 결과 현재 50%인 최고세율을 40%로 낮추는 데 찬성한다는 의견은 69%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79%가 찬성했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찬성이 63%에 이르렀다. 보수 성향 유권자 중에서는 76%, 중도 성향에선 65%, 진보에서도 65%가 찬성 입장이었다.
상속세를 '현행보다 낮춰야 한다'는 의견에는 52%, '현행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22%, '현행보다 높여야 한다'는 12%로 조사됐다.
상속세 부과 방식으로는 피상속인이 남긴 전체 유산 총액에 따른 '현행 유산세'(27%)보다 개별 상속인이 받는 유산에 따른 '유산취득세'(53%) 방식을 더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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