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석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 연구원 인터뷰
美 관세 방침…유럽서 빅테크 규제 "과하다"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김현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구글·메타 등 자국의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는 외국 정부에 관세 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핵심 타깃인 유럽연합(EU)과 유사한 플랫폼 규제 방식을 한국이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무역관련 싱크탱크인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의 이호석 연구원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억제하기 위한 EU의 디지털시장법(DMA)에 여러 허점이 있으며, 한국 상황에 맞는 규제 방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 로펌에서 EU의 디지털 규제 동향에 대해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이 연구원은 2011년 EU와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 과정에 참여한 통상 분야 전문가다.
지난해 3월 본격 시행된 EU의 DMA는 구글·애플·메타 등 6개 빅테크 기업을 사전 규제 대상으로 지정해 독과점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3개 회계연도 매출액과 시가총액이 750억 유로이고, 유럽 3개 국가 이상에서 사용되며, 월간활성사용자가 4천500만명 이상이어야 하는 등 여러 기준에 해당되는 기업에 이 법이 적용된다.
이 연구원은 이러한 기준에 적용되지 않으면서도 유럽에서 독과점 행위를 하는 기업들이 있다며 "DMA를 반대하진 않지만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이 온라인에 진출해 시장을 독점하는 사례도 있는데 온라인 빅테크 기업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지배적인 입지를 가진 유럽 내 업체에 대해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기업들의 독과점 행위를 사례별로 분석할 수 있어 유연한 규제가 가능했지만, DMA는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함에 따라 때로는 규제 논리가 떨어지는 일도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 국회에서 DMA를 벤치마킹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이 논의되는 것과 관련해 한국 상황에 맞는 규제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원은 "한국은 반독점거래법을 통해 충분히 플랫폼 기업들의 사례별 독과점 행위를 규제할 수 있을 만한 근거를 갖추고 있다"며 "한국의 법과 시장 상황은 유럽과 차이점들이 많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만의 상황에 맞게끔 판단해야 한다"며 "(DMA 등 정책은) 유럽의 맥락에서 마련된 것인데, 한국이 유럽과 유사한 접근 방식을 채택한다면 향후 불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유럽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예고한 상황에서 EU 리더들 사이에서는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디지털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예로 EU의 개인정보 보호 기준인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을 들었다.
2018년 시행된 GDPR은 명목상으로는 EU 시민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모든 기업의 정보보호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GDPR 규정을 지키지 않은 기업은 2천만 유로(약 290억원) 또는 연간 글로벌 매출의 4%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문제는 이 법으로 인한 과징금을 받은 기업이 대부분 미국 빅테크라는 점이다.
메타는 유럽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미국으로 빼낼 때 EU의 GDPR에 따른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23년 5월 아일랜드 데이터보호위원회(DPC)로부터 12억 유로(약 1조6천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아마존은 2021년 고객 개인 정보 보호 위반 혐의로 7억4천600만 유로(약 1조200억원)를 부과받았다.
이 연구원은 "(관세 등) 이슈로 인해 실질적인 사업 타격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GDPR 정책을 만들었던 사람들까지도 '너무 과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GDPR을 재검토하기 위한 움직임이 올해 하반기쯤 일어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hyuns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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