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치+/②]맥도날드 형제와 레이 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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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리치+/②]맥도날드 형제와 레이 크록

비즈니스플러스 2025-03-01 08:53: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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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크록이 미국 일리노이주 데스플레인스에 오픈한 맥도날드 프렌차이즈 첫 정식 매장 / 사진=맥도날드 홈페이지
1955년 크록이 미국 일리노이주 데스플레인스에 오픈한 맥도날드 프렌차이즈 첫 정식 매장 / 사진=맥도날드 홈페이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인근 작은 도시인 파사데나(Pasadena)에 형제가 처음 작은 식당을 연 것은 1937년이었다. 이 식당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주차장에서 음식을 주문해 받을 수 있는 드라이브인(Drive-in) 형태였다.    

당시 미국 고속도로변에는 드라이브인 노점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화물차 등 운전자들이 차에서 바쁜 시간을 쪼게 음식을 사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형제의 드라이브인 식당도 인기를 끌었다. 형제가 주력해서 팔던 음식은 바비큐. 햄버거는 형제가 취급하던 27가지 메뉴 중 하나에 불과했다. 

형제가 큰 돈을 번건 몇 년후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에 규모가 좀 더 큰 식당을 열고 나서다. 8각형 모양의 새로운 식당은 성공을 거뒀고 형제는 지역 유지가 될 수 있었다. 

식당에서 번 돈으로 형제는 방이 25개인 시내에서 가장 호화로운 저택으로 이사를 했다. 신형 캐딜락을 처음 산 것도 형제들에겐 큰 자랑거리였다. 그리고 형제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큰 부자가 됐다고 만족해했다. 

리처드 맥도날드(Richard McDonald), 모리스 맥도날드(Maurice Mcdonald) 형제 얘기다.

잘나가던 형제의 드라이브인 식당에 난관이 찾아왔다. 주요 고객들이 운전자 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 등으로 확대되면서 식당 기물이 자주 파손되고, 포크와 나이프 등이 없어지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게다가 형제의 식당은 당시 지역에서 불량 청소년들이 모여 문제를 일으키는 안 좋은 장소라는 인식까지 퍼졌다.

이같은 문제를 고민하던 형제는 영업을 3개월간 중단하고 식당의 성격을 바꾸기로 했다. 이 때 형제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맥도날드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주력 음식을 햄버거, 감자튀김 등으로 단순화하고 신속하면서도 대량으로 요리할 수 있도록 큰 돈을 들여 주방을 새롭게 설계했다. 형제는 또한 음식 조리 과정을 줄일 수 있다는 신기술이라면 무엇이든 도입했다. 개별 요리사에 의해 음식의 맛이 달라지지 않도록 조리 과정을 매뉴얼화했다. 조리 과정도 단계별로 자동화해 조리 과정에 어떤 사람이 들어와도 만들어지는 음식은 같아지도록 했다. 

고객 주문에 빠르게 응대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춘 것도 형제가 만든 새로운 주방의 특징이었다. 음식의 주재료는 미리 조리해놓고 일회용 식기를 제작해 주문 즉시 같은 형태로 음식을 담아낼 수 있게 했다. 바로 오늘날 일반적인 패스트푸드 식당의 '초고속 조립형 음식'을 만든 것이다.

주방 시스템을 바꾼 형제의 식당은 더욱 큰 성공을 거뒀다. 주방 시스템 도입 이후 첫 해에만 도입 이전보다 연간 매출액이 40% 이상 늘어났다. 

맥도날드 초대 회장이자 창업자 레이 크록(가운데) / 사진=맥도날드 홈페이지
맥도날드 초대 회장이자 창업자 레이 크록(가운데) / 사진=맥도날드 홈페이지

재미있는 건 형제가 식당의 급속한 성공과 높아진 수익에 부담을 가졌단 점이다. 관련 기록 등에 따르면 형제는 당시 유명 식료품 대기업인 카네이션(Carnation)사가 전국적 프렌차이즈를 만들자며 제안한 거액의 투자를 거절했다.

거절의 이유로 알려진 건 '너무 많은 수익을 내면 나중에 소득세 신고 등으로 머리가 아파질 수 도 있다'는 형제의 판단이었다고 전해진다. 형제는 샌버나디노 이외의 지역까지 진출하는 건 예기치 않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레이 크록(Ray Kroc)이다.

맥도날드 형제가 '조립형 음식' 패스트푸드를 착안했다면, 맥도날드를 현재의 거대한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만든 건 크록이다. 크록은 바로 시골 작은 식당 맥도날드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실질적인 창업자로 여겨진다.

크록의 원래 직업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식당에 '밀크 쉐이크 믹서기'를 팔던 영업사원이었다.

그가 형제의 식당에 우연히 방문하게 된 건 1954년. 형제의 식당에서 그는 엄청난 잠재력을 발견했다. 작은 마을에서 고립된 형제와 달리 크록은 조립형 음식을 보고 자신이 방문했던 수많은 도시의 식당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얼마 후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의 식당 프렌차이즈 가맹점에 대한 독점 영업권을 자신이 갖는 계약에 성공했다. 계약은 맥도날드 체인 확장은 크록이 맡고, 형제는 생산에 대한 관리 권한만 보유한다는 내용이었다.

1960년대 초반 형제는 맥도날드 브랜드에 대한 권한까지 크록에게 팔게 된다. 이를 위해 크록이 형제에게 지불한 금액은 270만 달러(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약 40억 원. 크록은 이 돈도 투자자를 찾아 마련했다.) 이후 크록이 맥도날드 프렌차이즈를 통해 얻게 된 천문학적 수익에 비하면 '껌 값' 수준이었다.

맥도날드 브랜드에 대한 프렌차이즈 독점 영업권을 손에 쥔 크록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당시 일반적인 프렌차이즈 기업들은 빠른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가맹점에 높은 브랜드 사용료를 요구하거나 비싼 조리기구와 식자재 등을 사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크록은 단기간 이익보다 장기적인 수익을 내다봤다.

그는 가맹점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 맥도날드 브랜드의 성공은 가맹점에 달려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사의 매뉴얼이나 식품위생 방침에 따르지 않는 가맹점은 적절한 패널티도 가했다.

이같은 크록의 행보는 시장에 신뢰를 단번에 확보했다. 그의 가맹점주가 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맥도날드에 대한 좋은 소문과 인지도는 삽시간에 뻗어나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파는 사람은 사기꾼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정직하다는 믿음을 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크록이 남긴 말이다.

오늘날 맥도날드는 전 세계 120여개국에서 4만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크록이 270만 달러에 샀던 브랜드 가치만 500억 달러(한화 약 72조 원)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제에게 지불한 투자금으로 크록이 이룬 성과는 천문학적인 수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시골의 작은 식당에서 차별화된 가능성을 발견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레이 크록'. 그가 오늘날 맥도날드의 실질적인 창업자로 여겨지는 이유다.

배충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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