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2025년에는 부쩍 영화를 보다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영화들 중 최근에는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골라가며 보고 있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과제로 내주더라도 보기 싫던 영화들에 이제야 눈이 간다. 지루해 보이기만 하던 흑백화면은 인스타에 지친 눈을 편안하게 해 주었고 길게 늘어진 롱테이크의 속도감이 나와 딱 맞는 것 같다고 느낀다. 영화의 오프닝에 잠들기도 하지만 꽤 차곡차곡 다 본 영화들이 모여가고 있다.
최근 보기 시작한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의 피폐한 사회를 배경으로 탄생한 장르다. 1940년대부터 1950년대 초반의 작품이 주를 이루며 루치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등의 감독이 대표적이다.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특징은 전쟁 이후 영화를 찍기 어려운 환경을 대변하듯 로케이션 촬영과 비직업 배우, 세팅된 조명보다는 자연광 아래서의 촬영과 같은 특징이 있다. 리얼리즘 영화와 비슷하지만 허구적인 서사보다 노동자 계급의 삶을 주로 다루었다는 점이 네오리얼리즘의 특징이기도 하다.
주로 왓챠에 있는 영화들을 보고 있는데 그중, 비스콘티의 대표작 ‘흔들리는 대지’(1948)가 인상적이었다. 시칠라이 섬에서 살아가는 민중을 그리며 배우 중 다수가 실제 섬에서 살고 있는 주민이라는 점으로 인해 연기력과 무관하게 계속해서 현실이라는 시간과 달라붙게 만드는 순간이 발생하는 것 같다. 또한 영화 속 출연 배우들이 배우라는 일시적인 인물로서의 직업이 하나의 숨을 쉬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들이 실제 주민이라는 배경에서 발생했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의 영역을 사이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영역을 갖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La Strada)’(1954)은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길’에 나오는 ‘젤소미나’라는 캐릭터는 천진난만한 소녀로, 만 리라에 팔려 가족과 떨어져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공연하여 먹고 살아가는 ‘잠파노’와 마차를 타고 옮겨 다니는 동지가 된다. 젤소미나는 잠파노가 허파의 힘으로 쇠사슬을 끊는 차력을 하는 동안 흥을 돋우는 북을 치거나 차력쇼 이후 돈을 걷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강압적인 표현하기를 꺼려 하는 잠파노와 달리 젤소미나는 길거리에서의 경험으로 사람 사이의 정과 예술적인 감각을 느끼게 된다. 젤소미나의 계속된 다다감과 반대선상에 있는 잠파노의 잔인한 행동은 젤소미나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준다. 정신이 이상해진 젤소미나를 길바닥에 버리듯이 두고 잠파노는 떠난다. 흑백의 영상들 속에서 홀로 반짝거리는 젤소미나의 눈은 투명한 수정구슬처럼 순수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이후 젤소미나의 고통과 절망이 직접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길’은 시대적 배경을 특수한 상황과 인물로 엮고 있지만 그들이 옮겨 다니는 곳곳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비친다. 로드 무비처럼 이동하는 주인공을 따라 시선이 움직이지만 젤소미나라는 인물과 잠파노라는 인물의 감정과 변화 또한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통해 동시대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떠올리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비현실적인 세상이며 사건과 사고는 곳곳에서 매일 같이 일어난다. 예술인 지원금은 부족하고 문화 재단이나 기관의 사업설명회에서도 예산이 축소되었다는 소리가 항상 들려온다. 서울의 으리으리한 대관비는 주최 측의 횡포보다는 서울의 부동산 문제와 가까울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이 시기에 나는 어떤 작업을 해야 맞는 것인지, 어떤 작업이 시대를 반영하는 것인지 조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동시대적인 작업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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