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기념 특집] 글로벌 전기차 시장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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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6주년기념 특집] 글로벌 전기차 시장 진단

CEONEWS 2025-02-28 06:00: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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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NEWS=이재훈 기자]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국제 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약 1,400만 대로 전체 승용차의 18%를 차지했고, 2024년에는 1,700만 대를 넘어 신차 5대 중 1대는 전기차가 될 전망이다. 판매 증가율만 35%에 달할 만큼 시장 파이는 커졌지만, 그 이면에서는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BYD와 미국 테슬라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며 양강 구도를 형성했고, 한국 현대자동차는 추격자 입장으로 분투하고 있다. 지난해 1~3분기 기준 BYD는 세계 전기차의 약 23.4%를 판매해 1위를 달렸고, 테슬라는 11%로 내려앉았다. 두 업체가 전세계 전기차의 3분의 1 이상을 팔아치우는 사이, 폭스바겐이나 GM 같은 전통 강호들의 존재감은 옅어졌다.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은 같은 기간 약 37만8천 대의 전기차 판매로 글로벌 7위권에 그쳤다. 겉으론 화려한 성장 곡선이 그려지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생존 경쟁의 양상이 뚜렷하다.

가격인하 경쟁치열해 '팔수록 적자'

테슬라는 가격인하 전략을 구사했다. 불과 석 달 새 모델 3 퍼포먼스 트림 가격을 62,990달러에서 52,990달러로 1만 달러 가까이 내렸다. 이러한 파격 할인 전략의 효과로 테슬라는 2023년 1분기 인도량을 전년 대비 36% 늘리며 사상 최대 분기 판매를 달성했다. 그러나 동시에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되어, 2024년 2분기 테슬라의 자동차 부문 매출총이익률은 14.6%까지 떨어져 5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고금리와 충전 인프라 부족, 비싼 가격 때문에 주류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자 테슬라가 먼저 판을 흔들었고, 결국 가격 전쟁에 불이 붙었다.

중국의 BYD는 애초부터 낮은 가격대의 다양한 전기차를 갖추고 있어 비교적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테슬라 모델3의 절반도 안 되는 1만 달러짜리 전기차까지 내세우며 자국 시장을 석권한 BYD는, 일부 주력 차종 가격을 인하하는 대신 초저가 신모델을 투입하며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예컨대 소형 해치백 Seagull을 2023년 출시하면서 1만 달러(약 1천만 원) 안팎이라는 파괴적 가격을 책정해 시장 충격을 주었다. 중국 내수에서 테슬라를 압도한 BYD는 이처럼 원가 경쟁력을 앞세워 해외 시장 진출까지 본격화하고 있다.

현대차 또한 좌판을 그대로 두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북미산이 아니어서 미국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아이오닉 5·6, EV6 등 전기차 전 차종에 대해 현금 할인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2024년 1월부터 현대차는 미국에서 아이오닉 5·6과 코나 EV 구매자에게 7,500달러(약 1천만 원)의 보조금을 자체 지급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미국 정부가 북미 생산 전기차에 주는 세액공제액과 같은 수준으로, 회사 차원의 보조금을 투입해 소비자에게 실질 가격 인하를 해주는 셈이다.

기아도 EV6와 니로 EV에 최대 7,500달러 캐시백을 제공하며 보조금을 상쇄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2024년형 아이오닉6 출시 가격을 전년형 대비 최대 4,100 달러 낮춘 바 있는데, 여기에 추가 할인을 더해 코나 EV의 가격은 25,175달러(약 3,310만 원)까지 떨어졌다. 그 결과 현대차의 전기 세단은 동급 최고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이렇듯 출혈을 감수한 할인 공세로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 방어에 나섰지만, 마진 희생은 불가피하다. 업계 전반적으로도 전기차 판매 확대를 위한 보조금과 할인 경쟁이 격화되며, 정작 “팔수록 적자”라는 우스갯소리마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배터리 원자재 가격 변동성, 일부 지역의 보조금 축소 등으로 이익률 압박이 커지면서 전기차 업계에 치킨게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기술 패권과 원가 절감의 키 '배터리 기술'

배터리 기술과 공급망 확보는 전기차 경쟁의 승패를 가를 핵심 요소다. 배터리 성능이 곧 차량의 주행거리와 안정성, 가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BYD는 본래 배터리 제조사로 출발한 강점을 살려 수직계열화된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했다. 배터리 셀부터 완성차에 이르는 가치사슬을 자체 통제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고, 이를 통해 공격적 가격 설정이 가능했다. BYD의 혁신적 기술로 꼽히는 '블레이드 배터리'(Blade Battery)는 리튬인산철(LFP) 계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한계를 극복하면서 화재 안전성을 크게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내구성과 비용 면에서 우위에 선 BYD 배터리는 중국 내수뿐 아니라 테슬라를 비롯한 경쟁사의 일부 모델에도 공급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BYD는 한술 더 떠 차세대 나트륨이온 배터리까지 개발해 초저가 모델에 적용을 추진하는 등 기술 주도권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테슬라 역시 배터리 기술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답게 네바다 기가팩토리에서 파나소닉과 협업으로 배터리를 생산해왔으며,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4680 대형 셀을 양산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4680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를 높여 주행거리 향상과 원가 절감을 동시에 노린 혁신이지만, 생산 수율 문제 등으로 양산이 지연되며 계획보다 더딘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배터리 팩을 차량 구조체로 활용하는 파격적인 설계를 도입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자 했으나, 예상만큼의 비용 절감 효과는 내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테슬라는 2025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저가형 신모델 개발을 진행 중인데, 이 차량에 앞선 기술들을 적용해도 원가 혁신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3년에는 직원을 10% 이상 감축하는 구조조정도 단행하며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슬라는 업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관리 소프트웨어 역량과 자체 배터리 소재 조달 노하우로 여전히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테슬라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은 리튬 등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해 광산 기업에 대대적 투자를 단행하며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배터리 원가의 60% 이상이 원자재 비용인 만큼, 자원 확보전도 기술 경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후발주자인 현대차는 배터리 분야에서의 자립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오랜 기간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외부 공급에 의존해온 현대차는 2023년 말 배터리 내재화 전략을 발표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2024년 말까지 한국의 중소 배터리 업체 및 대학 연구진과 협력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셀을 독자 개발·생산한다는 계획이다. LFP 배터리는 코나 EV 등의 보급형 모델에 2025년부터 탑재해 가격 인하를 꾀할 예정이다. 현대차가 이러한 과감한 배터리 직접 생산에 나선 배경에는 미·중 간 기술 패권 다툼과 IRA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깔려 있다. 중국산 배터리 의존을 줄이고 미국 보조금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현대차는 비교적 저렴한 LFP 배터리를 국내에서 자체 생산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테슬라와 BYD처럼 완성차 업체가 자체 배터리 개발을 늘리면 생산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10년간 9조5천억원을 투자해 LFP, 고성능 NCM, 전고체에 이르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미국의 스타트업과 손잡고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앞당기는 한편, 국내 철강사와 양극재 업체와도 합작으로 소재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배터리 주도권을 쥐기 위한 완성차 업체들의 군비경쟁이 가열되면서, 배터리 기술 혁신 속도가 전기차 시장 판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지원과 견제가 만든 희비 '정부 보조금 정책'

전기차 산업에서 정부 정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각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환경 규제가 곧 시장의 기회와 위협을 결정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성장한 중국의 성공 스토리 뒤에는 대규모 정부 보조금 정책이 자리한다. 중국 정부는 한때 전기차 한 대당 수천만 원에 이르는 구매 보조금을 풀어 자국 산업을 적극 육성했고, 충전 인프라 구축과 세제 혜택 등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23년 보조금 종료 이후에도 2024년 4월에는 노후 가솔린차를 폐차하고 전기차로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등 수요 진작책을 이어갔다.

이러한 정부 지원에 힘입어 BYD를 비롯한 중국 토종 완성차 기업들은 내수 시장을 장악하며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중국은 2023년에 자동차 생산량 기준으로 전통 강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자국 시장에서도 폭스바겐, GM 같은 외국 브랜드를 압도하고, 남미와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도 가파른 점유율 상승을 이뤄내고 있다. 품질과 기술력, 가격 경쟁력 면에서 중국산 전기차가 상품성을 입증했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를 뒷받침한 결과다. 다만 최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전기차 가격이 급락하면서 중국 정부는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재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향후 중국 업체들끼리의 출혈 경쟁이 심화되면 정부도 더 이상 개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어, 중국 전기차 업계에도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유럽은 한편으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고 있다. 한쪽 손에는 엄격한 환경규제를 들고, 다른 한쪽 손에는 산업 보호 조치를 쥐는 모습이다. EU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기로 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친환경차 전환 로드맵을 시행 중이다. 각국 정부도 전기차 구매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해 소비자 전환을 유도하고, 충전 인프라 예산을 투입해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 드라이브 덕분에 2024년 유럽의 전기차 신차 판매 비중은 2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경계심도 함께 높아졌다. 2023년 유럽 수입 전기차 시장의 8%를 중국 브랜드가 차지하자, EU는 중국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부당 저가공세를 편다고 주장하며 반덤핑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고, 업계에서는 무역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정작 BYD 등 중국 기업들은 미리 유럽 현지 공장 투자에 나서는 등 대비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BYD는 헝가리에 전기차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추가로 유럽 내 두 번째 거점도 검토하고 있다.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 장벽을 넘어서겠다는 전략으로, EU의 견제에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유럽의 정책 변화에 따라 기업들의 유불리가 즉각 엇갈리는 양상이 뚜렷해지면서, 각사 모두 로비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미국은 대대적인 보조금 정책으로 판을 뒤흔들었다. 2022년 제정된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고 배터리 원산지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한다. 자국 생산을 전제로 막대한 지원금을 내거는 한편, 그렇지 않은 차량은 시장에서 도태시키겠다는 의도다. 이 법안으로 미국 빅3와 테슬라 등 현지 생산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은 반면, 현대차·기아 등 해외 생산 수출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2023년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이 한때 미국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며 판매가 급감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차는 법인리스 판매라는 우회로를 통해 임시로 보조금 효과를 내보려 했으나 한계가 뚜렷했고, 결국 앞서 언급한 자체 할인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다행히 2024년부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기존 조약을 근거로 현대차·기아 전기차 일부가 보조금 대상에 다시 포함될 전망이다. 또한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전기차 전용 공장이 2025년 가동되면 현대차도 당당히 현지 생산을 통한 보조금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의 정책 기조가 자국 산업 보호와 기후 대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해외 기업들도 앞다투어 미국 현지 생산과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투자하는 추세다. IRA 시행 이후 북미 지역으로 발표된 배터리 공장 투자만 수십 조 원에 달하며, 현대차그룹도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 공장 설립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잡기 위한 지원금 쟁탈전이 본격화된 모습이다.

결국 정부의 정책 향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전기차 업계 현실이다. 각종 보조금과 규제의 명암(明暗) 속에서 기업들은 유리한 쪽에서는 최대 수혜를 누리고, 불리한 쪽에서는 이를 뒤집기 위한 전략 수립에 사활을 건다. 한편으로는 정부 지원에 기대어 성장한 산업인 만큼, 향후 보조금 철폐나 규제 완화 시 수요 급감 가능성도 존재한다. 유럽과 중국에서 보조금 축소 움직임이 나타나자 2024년 들어 전기차 판매 증가율이 둔화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IEA는 각국의 구매 인센티브와 배터리 생산 장려 정책 등이 전기차 시장 성장에 본질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당분간 주요국 정부의 친전기차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정책 변동에 민감한 사업 구조 역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판 커지는 글로벌 경쟁 '시장확대 전략'

이처럼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무대로 눈을 돌리는 것은 전기차 리더들의 공통된 전략이다. 어디서나 팔리는 차를 만들지 못하면 대규모 판매를 지속하기 어려운 만큼, 각사는 너나없이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선두주자 BYD의 행보는 특히 공격적이다. BYD는 이미 중국 내수를 장악한 데 이어 아시아, 유럽, 남미 등 전 세계로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2024년 BYD의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12% 증가한 176만 대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중국 외 시장 진출이 본격화된 덕분이다. 같은 해 4분기에는 분기 기준 59만 대의 EV를 판매해 테슬라를 10만 대 이상 앞지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글로벌 EV 1위 자리를 목전에 둔 BYD는 지난해를 끝으로 테슬라와의 격차를 확고히 벌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별로 보면, BYD는 신흥 시장과 유럽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동남아와 남미에서는 합리적 가격의 모델로 공략하여 전기차 보급을 선도하고, 선진 시장인 유럽에는 비교적 고급 사양의 차량을 투입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아직 유럽에서 BYD의 판매량은 미미하지만, 현지 딜러망 구축과 고객 인지도 제고를 위해 축구 스폰서십부터 현지 파트너십까지 장기적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완성차 생산 공장 건설 역시 병행하여, 앞서 언급했듯 헝가리에 연산 2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세워 2025년 이후 유럽 내 생산·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다.

BYD는 승용차 외에도 전기버스, 전기트럭 등 상용차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이러한 풀라인업을 앞세워 전 세계 전기차 시장 틈새까지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다만 브랜드 파워 측면에서는 유럽 소비자들에게 아직 생소하고, 중국과 서방 국가 간 정치적 갈등 변수도 남아 있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테슬라는 이미 진작부터 글로벌 기업으로 활약해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한 이 회사는 2010년대부터 현지 생산 기지를 해외로 확장해왔다. 중국 상하이에 대규모 기가팩토리를 건설해 아시아 수요를 흡수하고, 2022년에는 독일 베를린 공장을 가동하며 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신공장을 열었고, 멕시코에 새로운 기가팩토리 착공을 예고하는 등 북미 생산 능력도 키우고 있다. 전 세계 여러 거점에서 멀티 컨티넨털 생산체제를 갖춘 덕에 테슬라는 각 지역의 관세 장벽이나 물류비 부담을 줄이며 판매를 극대화하고 있다.

제품 측면에서는 수년째 두 개 차종(모델 3와 모델 Y)에 의존해온 테슬라지만 2023년 말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을 출시하며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섰다. 사이버트럭은 틈새 시장용이어서 판매량 기여는 제한적이지만, 2025년경 출시를 예고한 차세대 보급형 모델은 게임체인저로 평가된다. 현재보다 작고 저렴한 테슬라 모델이 나오면 폭발적인 수요 창출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다. 일론 머스크는 “완전 자율주행 택시 기능을 갖춘 혁신적인 차”를 언급했지만, 업계에서는 우선 3만 달러대의 소형 테슬라가 현실화하는지에 주목한다.

한편 테슬라는 충전 인프라 전략에서도 한 수 앞서가고 있다. 전 세계에 촘촘히 깔린 슈퍼차저 망은 테슬라의 큰 자산인데, 2023년부터 포드, GM 등 타사 전기차에도 이 충전망을 개방하기로 하며 사실상의 업계 표준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미 북미에선 테슬라의 충전커넥터(NACS)가 표준으로 사용되어, 전기차 생태계 주도권을 쥐려는 테슬라의 전략이 엿보인다. 다만 최근 들어 테슬라는 중국산 및 타사 경쟁 모델 공세로 주요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고, 오랜 기간 이어진 모델 라인업 공백으로 수요 정체를 겪었다. 일론 머스크의 기행으로 브랜드 이미지에도 잡음이 생기는 등 순탄치 않은 모습이다. 이에 테슬라는 가격 인하와 생산능력 확충으로 물량 방어에 주력하는 한편, 기술 혁신 스토리를 계속해서 시장에 어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통 완성차 강자로서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미 내연기관 시대에 구축한 전 세계 생산기지와 판매망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전기차 전용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 체코 공장 등 기존 생산라인을 전기차에 맞게 업그레이드하거나 전용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 조지아주에 연산 3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공장을 2025년 가동할 예정이다. 이 공장에서 현대차 아이오닉과 기아 EV 시리즈를 생산해 북미 시장을 공략하고, 향후 미국 보조금까지 확보해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유럽에서도 체코 공장에서 코나 EV 등을 생산해 현지 공급을 늘리고 있다.

신차 출시 전략 역시 공격적이다. 2021년 아이오닉 5를 시작으로 2022년 아이오닉 6, 2023년에는 대형 SUV EV9(기아)을 출시하며 매년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향후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픽업트럭 등 북미 맞춤형 EV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노력으로 2023년 약 50만 대 수준인 글로벌 전기차 판매를 2030년 323만 대(현대차·기아 합산)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대차 단독으로는 연 200만 대 판매 및 세계 점유율 7%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테슬라, BYD 양강 구도에 도전하여 글로벌 Top3 전기차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중국 시장 부진과 미국 IRA 이슈로 최근까지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주춤했고, 원가 구조도 경쟁사 대비 불리하다는 약점이 있다.

결국 현대차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글로벌 생산망을 얼마나 신속히 전기차 체제로 전환하고, 배터리 등 핵심 부품 공급망을 내재화해 비용을 절감하느냐에 달렸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하면 가격 전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미래 모빌리티 분야(로보택시, 도심항공모빌리티 등)에도 투자를 분산하고 있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부분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향후 전기차 전쟁의 승자는?

 

전기차 시장의 미래 청사진은 장밋빛과 회색빛이 교차한다. 한편으로 각종 전망은 향후 10년간 전기차 판매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35년경에는 신차의 절반이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IEA는 전기차의 보급 확산으로 2030년대 중반에는 글로벌 원유 수요가 하루 600만~1,000만 배럴 감소하는 효과까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전기차가 더 이상 틈새나 과도기적 기술이 아닌,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완전히 자리 잡는 시나리오다. 시장 규모로 보면 앞으로도 전기차 산업에 천문학적 성장 기회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낙관론 이면의 현실은 냉혹하다. 승자 독식에 가까운 현재의 경쟁 구도가 더욱 심화되어, 살아남는 자만이 미래의 과실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글로벌 전기차 판매 상위권은 중국과 미국 업체가 양분하고 있고, 나머지 기업들은 한 자릿수 점유율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이러다 보니 대다수 후발주자들은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따라잡기 위한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일례로 리비안, 루시드, 니오 등 신생 전기차 스타트업들은 잇달아 목표 판매량에 못 미치는 실적을 내며 주가가 폭락했고,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폭스바겐, 토요타 같은 전통 강자들도 내부적으로 전기차 전환에 대한 회의론과 조직 혼란을 겪으며 한동안 추진이 더뎠던 후유증을 마주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에 맞춰 체질 개선을 하지 못하면, 내연기관 시대의 영광은 과거 유산으로 남을 뿐이라는 위기감이 업계를 지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BYD와 테슬라의 양강 구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두 회사 모두 공격적인 가격 전략과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 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BYD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사격과 자체 배터리 기술력, 그리고 내수 시장의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글로벌 1위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2024년에는 생산 대수에서 사상 처음으로 테슬라를 앞질렀고, “중국의 테슬라”에서 이제는 “세계의 BYD”로 체급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테슬라는 비록 최근 성장세 둔화와 점유율 하락을 겪었지만, 여전히 브랜드 파워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에서 독보적이다. 충성도 높은 팬층과 거대한 충전 인프라 자산도 테슬라의 강점이다. 머스크 특유의 기행과 리스크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으나, 사이버트럭 생산 본격화와 보급형 모델 출시가 궤도에 오른다면 한층 판매를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두 회사 모두 수익성보다 점유율을 택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단기적 압박은 크지만, 궁극적으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시장에서 지배적 플레이어로 남으려는 계산이 엿보인다.

현대차를 비롯한 추격자 그룹의 운명은 가늠하기가 보다 어렵다. 현대차그룹은 전사 차원의 전동화 전략과 대규모 투자를 쏟아붓고 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뚜렷한 우위 지점을 만들지 못하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유럽, 중국 어느 한 곳에서도 1위는커녕 5위권 내 점유율도 위협받는 게 현실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중국 업체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급선무다. 그나마 디자인 혁신과 상품성으로 일부 선진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테슬라의 가격 공세나 중국차의 저가 공습이 계속되면 입지 약화는 시간문제다. 이에 현대차는 배터리 직접 생산, 현지 공장 건설 등 체질 개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선제적 투자가 늦은 감은 있으나, 아직 정부 지원 여력이 풍부한 유럽과 한국 시장에서 내수를 다지고 북미 시장에서 재도약하면 충분히 반전의 기회는 있다. 다만 그러한 시간 벌기가 가능할지는 정글 같은 시장 경쟁에 달려 있다.

결국 글로벌 전기차 전쟁의 승패는 기술력, 원가 통제, 그리고 정책 수혜라는 세 가지 요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셋을 모두 갖춘 기업만이 웃을 것이고, 하나라도 빠지면 고꾸라질 위험을 안고 달리는 형국이다. 202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각국 보조금은 축소될 가능성이 높고, 탄소중립 목표 시한에 쫓겨 자동차 업계의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승자와 패자 간 격차는 벌어질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기술 발전과 경쟁 덕분에 더 좋은 전기차를 더 싸게 살 기회가 늘겠지만, 업체들은 생존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한다. CEONEWS 창간 26주년을 맞은 올해, 전기차 시장은 마치 26년 전 닷컴 버블 시대처럼 뜨겁고도 위험한 성장기를 지나고 있다. 화려한 숫자 뒤에 감춰진 진흙탕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 아직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확실한 것은, 전기차의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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