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도 지옥' 러시아에서 노동자로 일한 북한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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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도 지옥' 러시아에서 노동자로 일한 북한군 이야기

BBC News 코리아 2025-02-26 18:03:46 신고

3줄요약
하늘을 바라보는 탈북민 남성의 뒷모습
BBC/김현정

"...내가 지금까지 충성한 대가가 이거였구나. 다시 러시아로 나갈 수만 있다면 (북한에)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30대 탈북민 남성 박정수(가명) 씨는 BBC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군 복무 중 러시아로 두 차례 파견돼 현지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첫 번째 파견 후, 수년을 준비해 2022년 한국으로 넘어왔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 노동자를 파견해 왔다.

국가정보원 산하 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940년대부터 해외에 노동자를 파견해 왔으며, 김정은 집권 이후 그 수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 해외 노동 인력은 민간인으로 구성되지만, 군인, 특히 건설여단 소속 군인 건설자들도 여기에 포함되기도 한다. 북한에서 모든 남성은 17세부터 징집돼 10년간 군 복무를 해야 한다.

비교적 최근까지 러시아 노동 현장에서 일한 박 씨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군인 노동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박 씨는 군인 신분이었지만 현지에서 군사 활동 없이 건설 노동자로만 일했다. 따라서 해당 기사에서는 혼선을 줄이기 위해 '파병' 대신 '파견'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하루 16시간 노동, 휴일은 1년에 나흘 뿐

"오전 7시30분 아니면 8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자정 또는 새벽 1시까지 (일해요). 자정 전에 들어와서 자본 적은 없습니다. 하루 평균 15시간, 16시간 그렇게…설날 3일과 자기 생일 하루, 1년에 4일만 딱 쉴 수가 있어요."

러시아 건설회사에서 수년간 고된 노동에 시달렸지만, 이 씨는 북한보다 러시아에서의 삶이 훨씬 낫다고 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자유가 있고, 먹는 것도 북한에서보다 더 잘 먹잖아요. 북한에서의 삶에 비하면 (러시아에서의 삶이) 100배, 1000배는 낫다고 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군인의 경우 일반 노동자보다도 과도한 노동 시간과 위험한 작업 환경, 임금 미지급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 씨는 북한 당국이 매달 영수증에 서명하라고 하면서도, 북한에 돌아가면 돈을 주겠다며 지급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지금 (월급을) 주면 여기서 다 쓰고 나쁜 짓을 할 수도 있다고 해요. 나쁜 짓이 과연 뭘까요? 난 그게 참 궁금했습니다…건설장 밖으로 일절 나가지 못하게 하는데, 돈을 준다고 해도 (우리가) 그 돈을 쓸 수가 없잖아요."

박 씨는 식비와 주거비, 약값, 기타 비용을 제하고 나면 러시아에서 5년 동안 노동한 대가로 계약한 금액의 20% 정도인 2000달러 정도밖에 받지 못했다고 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군인을 외국인 노동자로 파견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가 될 수 있다며, 군인들이 심각한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러시아 전문가는 "똑같이 삽질을 하더라도 건설 노동자와 군인 신분으로 가는 것은 차이가 클 것"이라며 "건설 노동자로 (해외에) 나간 경우에는 그래도 별도의 계약 관계로 나간 것이다. 그 경우 (정권으로부터 수입을) 많이 뜯겨도 상당한 수익을 남겨서 돌아올 수 있는데, 군인 신분으로 가게 되면 월급을 그렇게 많이 줄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하루의 낙, K-드라마

고된 노동이 끝나고 시청하는 외국 영화와 드라마는 몇 안 되는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북한에서는 시청이 엄격히 금지된 한국 드라마였다.

북한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SD 카드와 USB 등을 동원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을 시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처벌과 통제가 강화하면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시청이 훨씬 쉬운 편이다.

"(러시아에서는)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물론 드라마 보면 처벌당하죠. 하지만 그거 알면서도, 아무리 보지 못하게 통제를 해도 다 봅니다. 자기 침실에서 못 보면 다른 나라 외국인 휴대폰을 빌려서 같이 봐요."

심지어 박 씨는 미디어를 통해 본 한국의 모습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많은 노력 끝에 러시아에 방문한 한국인들과 몰래 교류했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폰 영상을 보여주면서 '진짜 (한국이) 이렇게 잘 사냐'라고 물어봤다"라며 "(얘기를 듣고) '내가 이때까지 속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기자와 인터뷰 하는 탈북민 남성
BBC/김현정
박 씨는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돌아와 보위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사형선고 같은 느낌'

그러나 박 씨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는 해외에서의 경험이 아니었다.

북한으로 돌아온 박 씨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 동안 일종의 '반성문'을 작성해 국가보위부에 제출해야 했는데, 러시아에 있는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상세히 기술한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오늘 쓴 내용을 다음날 똑같이 또 써야 돼요. (내용이 다르면) '어제는 이렇게 썼는데 오늘 왜 이렇게 쓰는 거야. 이 새끼 너 거짓말 하는구나'라면서 때리죠. 완전 사람이 미칩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한 그로서는 예상치 못한 대우였다.

그는 보위부 관계자들이 "너희는 자본주의 물을 먹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살아갈 수 없다"면서 "너희가 전역해서 고향에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항상 너희들을 보고 감시할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돌아가지 말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다시 한번 좀 내보내 달라'고…(빌었죠)"

운 좋게도 그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다신 돌아오지 말자"는 결심을 품고 북한을 떠났다.

군인이자 노동자

현재 북한개혁방송 대표를 맡고 있는 김승철 씨는 1990년대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다 탈북했다. 그는 북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연구와 증언을 수집하고 있다.

김 대표는 201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북한 군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민간인 노동자 및 군인의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민간 노동자가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박 씨는 2010년대 파견 당시 약 70%가 민간인, 30%가 군인이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국방 차원에서 병력을 해외 노동력으로 돌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인의 경우 도주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인 것으로도 보인다. 군인들은 대부분 20대로 젊기 때문에,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

김 대표는 "북한에서 러시아로 가는 북한 노동자는 보통 결혼한 사람, 자식 있는 사람, 그리고 당원인 사람 등 조건이 있다"고 했다.

"애초에 1975년 정도까지 북한은 (러시아로) 범죄자들을 주로 보냈어요. 그런데 러시아 상황이 좋아지면서 러시아에 갔던 북한 노동자들이 자꾸 탈출하니까 이후부터는 성분이 좋은 사람으로 바꿔 보내기 시작한 거죠."

박 씨는 당국이 이들을 해외에 보내기 전 '위급상황시 전투 투입'과 '외화벌이' 두 가지 임무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당국에서 "우리가 지금은 군복을 벗고 노동자의 옷을 입고 들어가지만 너희들은 항상 군인"이라며 "어떠한 상황 조건에서도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그러한 정신력을 유지하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다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서 박 씨의 생활은 민간인 노동자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훈련은커녕 러시아 군인은 노동 현장에서 가끔 마주쳤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북한이 러시아 전장에 군대를 파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박 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례 없는 상황에 마침 러시아에 있던 군인들, 특히 자신처럼 러시아어를 배운 이들은 투입됐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해요. 제가 지난해(2022년)에 탈북하지 않았으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끌려 나갈 확률이 100%였다…(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살아 돌아올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봅니다. 전장에 내보낸 부모들이 얼마나 가슴 아플까요?"

추가 취재: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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