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로 촉발된 관세 리스크가 국내 반도체 시장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있다. 여기에 당국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시장의 굴기가 더해지면서 우리 기업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는 형국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강화 여파가 우리 반도체 시장을 덮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보조금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비롯, 수입산 반도체를 포함한 주요 제품군에 25%가 넘는 막대한 비율의 고율관세 부과 방침을 재천명하면서 업계의 우려가 심화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관세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미국 현지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추가로 증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현지에 조성 중인 생산설비의 경우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후공정 공장이기 때문에 현재 미 행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조건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롭게 메모리 공장을 조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파운드리 및 후공정 시설 조성에 조 단위 투자에 나선 상태라 추가 비용 투입 자체가 어려울 뿐더러 만약 추가 생산설비 증설에 나서더라도 이에 소요되는 예산 규모가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기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칩스법 관련 보조금 산정 재검토 결정에 따라 지급 규모가 줄어들거나 계약 자체가 철회될 경우 우리 기업들에게 돌아올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퇴임 직전 보조금 지급을 확정한 바 있다. 칩스법 보조금 기준에 따르면 미국 투자를 결정한 반도체 기업은 프로젝트 총비용의 15%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파운드리 공장에 47억4500만 달러(한화 약 6조8800억원),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건설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메모리반도체 패키징 공장에 4억5800만 달러(약 6600억원) 상당 보조금을 확약 받았다.
다만 아직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상무부로부터 보조금 지급과 관련된 구체적인 추진 상황과 결정 사안에 대해 전달받지 못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칩스법에 따라 미국 내 투자 기업에 미국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재협상을 추진 중이며 관련 지출 일부를 연기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의 보조금 책정과 관련된 요구 사항을 재검토하고 변경한 뒤 일부 거래를 재협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변경될 수 있는 범위와 기존 합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보조금 지급에 가장 중요한 선결 조건은 ‘자국 내 생산’이 주요 키워드로 작용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로 인한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에 업계가 벌벌 떨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이 없어 다양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후속 조치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턱밑까지 추격해오고 있는 중국의 굴기도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반도체 기술 수준이 중국에 대부분 추월당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수준 심층분석’에 따르면 국내 전문가 39명이 지난해 기준 중국은 첨단 패키징을 제외한 모든 기술 분야 기초역량이 우리나라를 앞서고 있으며 한국이 강점을 둔 메모리 기술에서도 중국이 기초 역량 부문은 추월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를 보면 한국 반도체 시장이 일본과 중국의 부상, 미국의 제재, 동남아시아의 급성장 등으로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국내 연구개발(R&D) 투자규모가 작은 점 등을 지적하며 전망이 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90.9%로 94.1%인 중국에 밀렸다. 고성능·저전력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에서도 한국(84.1%)은 중국(88.3%)에 뒤진 것으로 집계됐고, 전력반도체 기술과 차세대 고성능 센싱 기술에서도 중국에 뒤처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 반도체 기초·원천 연구와 설계 기술 부문에서도 중국에 밀리는 등 반도체 분야 전반에 근본적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중국의 추격 속도가 날이 갈수록 더욱 빨라지고 있다. 자칫 가전,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추격을 허용했던 것과 같이 시장 주도권을 넘겨줄 수 있다”며 “중국이 D램뿐만 아니라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까지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발 리스크까지 더해지며 업계의 부담감이 그 어느 때보다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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