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조지 L. 쇼(1880~1943)는 중국에서 태어난 아일랜드인이었다.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20대 때 조선 평안남도에 있는 한 광산에서 일했다. 그는 광산에서 번 돈을 바탕으로 무역회사 이륭양행을 설립했다.
어머니도 일본인, 아내도 일본인, 며느리도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일본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게 논리적이었지만, 쇼는 조선과 훨씬 더 가까웠다. 여기에는 중국에서 일본인 사업가들과 늘 경쟁해야 했고, 영국 지배를 받는 조국의 상황과 일제 강점기 아래 조선의 여건이 비슷한 데서 오는 동질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역사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쇼의 이륭양행은 중국 단둥에서 독립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이륭양행을 수시로 찾아 조선의 독립 방안을 모색했고, 조선과 상하이를 왕래하는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이륭양행이 소유한 선박 '계림호'를 이용했다.
일본은 쇼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다. 1920년 쇼가 조선에서 오는 가족을 맞이하고자 신의주에 갔을 때, 일본 경찰은 쇼를 체포했다. 그러나 일본의 동맹국이자 당시 최강국이었던 영국이 반발하자, 일본 정부는 체포 4개월 만에 쇼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중국으로 돌아간 쇼는 중일전쟁으로 일본의 압박이 강화되자 사업체를 푸저우로 옮겼다. 그러나 전쟁의 여파는 그곳까지 미쳤고, 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사업에 애를 먹던 그는 종전을 앞둔 1943년 11월 별세했다. 그가 묻힌 공동묘지는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파헤쳐버리는 바람에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쇼는 그렇게 잊혔지만,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그를 기억해냈다.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쇼가 죽기 전까지 독립운동에 애를 쓴 공로를 인정해 2015년 4월 그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최근 출간된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부키)는 한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책이다. 일간지 기자인 강국진 씨와 김승훈 문화체육관광부 정책소통기획관, 한종수 코리안헤리티지 연구소 학술이사가 함께 썼다.
저자들은 쇼를 포함해 독립 투사들에게 폭탄을 만들어 제공한 헝가리인 마자르, 남편 조성환과 함께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 광복 후 한국에서 살았지만 가난 속에서 생을 마감한 중국인 리수전(이숙진) 등 25명의 외국인 투사를 조명한다.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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