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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문신용품 등을 수입·판매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A씨의 관세법위반, 의료기기법위반 혐의 사건 상고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2014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중국에 있는 불상의 업체로부터 4회에 걸쳐 시가 약 8700만원 상당의 문신용품 9만7000여점을 수입하면서 이를 통관목록에 기재하거나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밀수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A씨는 의료기기 관련 허가 없이 의료기기를 수입하거나, 허가받은 내용과 다른 의료기기를 수입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A씨가 이 사건 밀수품의 수입화주로서 관세법 제241조 제1항 위반죄의 주체에 해당되며,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세관에 신고되지 않은 물품임을 인식하면서 이를 수입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몰수, 8758만원 추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구매대행업체를 통해 물품을 수입하면서도 세관에 신고되지 않았다는 점 △구매대행업체는 국내 소비자의 해외 구입 편의를 위해 보조적 행위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 △관세를 부담하지 않은 점 등을 유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2심은 별건으로 확정된 형사판결과의 형평을 고려해 1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판결했지만, 양형은 1심과 동일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수사 단계에서 세관에 제출한 소명자료에서 밀수입 혐의를 인정했고, 검찰에서도 공소사실을 인정한 점 등을 들어 1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관세법 제269조 제2항 제1호의 행위주체인 ‘세관장에게 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물품을 수입한 자’의 의미를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이 규정이 수입화주나 납세의무자로 한정하고 있지 않으며, 실제 통관절차에 관여하면서 밀수입 여부에 관한 의사결정 등을 주도적으로 지배해 실질적으로 수입행위를 한 자를 의미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A씨가 이 사건 밀수품의 수입화주라 하더라도, 구매대행업체를 운영하는 B씨 등에게 구매대행을 의뢰했고, B씨 등이 물품 반입 과정에서 A씨와 무관한 업체인 ‘C무역’ 등을 수입자로 기재해 수입신고를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A씨와 B씨 사이에 밀수품 통관절차에 관한 구체적 합의나 약정이 있었다거나, A씨가 밀수품 반입 절차나 과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관여했다고 볼 사정을 찾기 어렵다고도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으로서는 피고인과 구매대행업체 사이의 통관절차 약정 내용, 비용 지급 내역, 관세 납부 방법, 구매대행업체의 역할 및 이에 대한 피고인의 지시·관여 여부, 수입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어야 한다”며 “이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천자침 관련 관세법 위반 및 의료기기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관세법상 밀수입 범죄의 행위주체를 판단할 때 단순히 수입화주 여부만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통관 과정 관여 정도와 의사결정 지배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법리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관세법 처벌조항의 취지가 수입 물품에 대한 적정한 통관절차 이행 확보에 있고, 관세수입 확보는 부수적 목적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처벌 대상을 ‘통관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수입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향후 유사한 밀수입 사건에서 행위주체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물품의 최종 소유자나 수입화주라는 이유만으로 밀수입 혐의를 적용하기보다, 실제 통관 과정에 관여하고 의사결정을 주도한 ‘실질적 수입행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판단 기준이 제시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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