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주주 이익 보호에 소홀한 한국식 기업문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에선 ‘자본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기업들은 법안을 악용한 투기 자본의 공격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법사위는 전날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확대 ▲대규모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적용 ▲대규모 상장사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상장사 독립이사 및 전자주주총회 근거 규정 마련 등의 내용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쟁점이 되는 내용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확대’다. 상법 제382조의 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 같은 이사 충실의무 조항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식 지배구조는 오너일가나 경영진의 이익에 부합하는 반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주주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회사의 행위가 있어도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근거가 부족해 주주들의 투자 의지를 낮추고 결과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정문 민주당 정책수석부의장은 이번 소위원회 통과에 대해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신뢰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회사의 이사들이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에 역시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정상화와 기업의 투명한 경영을 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꾸겠다”라며 “2월 국회 중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의 당사자인 경제계는 오히려 국내 기업과 주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이사에 대한 소송이 남발될 수 있고 특히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8단체는 전날 공동 입장문을 내고 “상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 기업은 계속되는 내수 부진에 따른 저성장,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및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대내외 경영 환경 악화로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라며 “글로벌 경제 전쟁이 심화되고 주력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기업 지배구조를 과도하게 옥죄는 것은 기업의 성장 의지를 꺾고, 산업 기반을 훼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대한민국을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만들 것”이라며 “소송 리스크와 투기자본의 공격 가능성이 커지면 기업 경쟁력이 하락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켜 결국 선량한 국내 소액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경제계는 기업이 본연의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회가 상법 개정안에 대하해 다시 한번 신중하게 검토해 주기를 간곡하게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정치권에서도 상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실제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 위원들은 상법 개정안 표결에 강하게 반대했다. 민주당은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다는 방침이지만 국민의힘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주주 환원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해서 주가를 상승시킨 뒤 주식을 팔고 나가는 ‘먹튀’를 우리는 많이 지켜봤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에다가 법적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기업에 경쟁력을 갖지 말라는 것이랑 마찬가지”라며 “다른 나라는 안 하는데 우리나라는 주주 충실의무를 특별히 부과해서 기업의 경쟁력을 더 약화 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려 하는지 납득이 어렵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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