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골머리를 앓다?
구체성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골머리를 앓다'라는 표현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러나 불편하다.
'골머리'는 '머릿골'의 속된 표현이다. 비속어다. 머릿골은 대뇌, 소뇌 등이 들어있는 머리뼈의 한 부분을 가리킨다.
'골이 쑤시다'의 구체성은 물론 의미 있다. 그러나 그 적나라함이 불편하듯 '골머리를 앓다'도 '머리가 아프다' 정도의 완곡어법이 교양 있는 대안이라는 생각이다. 더 큰 문제는 어법에 안 맞는다는 것이다.
골머리는 신체 기관이다. 그 자체는 '앓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콩팥을 앓는 게 아니라 신장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던가. 여러모로 부적절한 표현이다. '목구멍이 아프다'도 그저 '목이 아프다'로, '눈알이 뻑뻑하다'도 '눈이 뻐근하다', 눈이 뻑뻑하다' 정도로 약화하는 게 교양 있고 세련된 표현이다.
연장선상에서 언제부턴가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갈아치우다'도 불편하다. 토박이말이 모든 가치에 우선 하는 게 아니다.
어감이 좋아야 하고, 글자 수가 늘어지지 않아야 한다.
'갈아치우다'는 길고 어감이 안 좋다. 경신(更新), 정비, 교체, 일신(一新) 등이 더 깔끔하고 산뜻하다.
'골머리가 아프다 ⇒ 머리가 아프다'
'목구멍이 아프다 ⇒ 목이 아프다'
'눈알이 뻑뻑하다 ⇒ 눈이 뻐근하다, 눈이 뻑뻑하다'
'갈아치우다 ⇒ 정비하다, 교체하다, 경신하다'
◇ 미운 오리 새끼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
미운 오리 새끼?
누군가의 초라한 언어 감수성이 빚어낸 비극적 결과다.
'미운 새끼 오리'였어야 했다. 단어의 위치 잡기가 이토록 막중하다. 관성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강아지, 생쥐, 송아지처럼 새끼 형태의 낱말이 따로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단어 '새끼'를 그 동물 명칭의 앞에 놓아야 안정적이고 편안하다.
새끼 사슴, 새끼 호랑이 등이 그 예다. 목가적, 동화적 느낌을 주려는 목적이라면 '아기'가 필요하다. 아기 곰, 아기 코끼리 등으로 쓰면 된다.
이렇게 해야 어감이 예쁘다. 어류의 경우에는 '어린'을 붙이는 것이 좋다.
'어린 물고기' 정도로 쓰면 온전하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했지만, 그 여파가 악무한(惡無限)인 경우가 왕왕 있다.
'미운 오리 새끼'가 그렇다. '미운 새끼 오리'를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단어 위치 하나에 어감이 이렇게 달라진다.
이 동화 제목 때문에 일종의 면죄부를 받아 사슴 새끼, 고라니 새끼, 너구리 새끼, 오소리 새끼 운운하며 '새끼'를 개의치 않고 관성적으로 붙였다.
중립적·객관적 용어일 때는 '새끼 사슴' 등으로, 문화적·감성적으로 표기해야 할 경우는 '아기 곰' 형태로, 어류일 때는 '어린' 을 넣어 쓰면 유용하다.
'새끼 멸치'는 우습지 않은가. '어린 멸치'가 딱 들어맞는다.
'멸치 치어'(稚魚)는 느낌이 무겁고 어렵다.
◇ 내외 귀빈에 고함!
우선 '내빈'이란 말은 없다.
내빈을 '內賓'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아니다.
내빈은 이제 거의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여자 손님의 뜻으로 아주 과거에 가끔 쓰였다. 내빈은 '來賓'이다.
초대에 응해 온 손님을 말한다. 그래서 내외빈(內外賓)은 적절치 않다. 그냥 내빈이다.
반기를 드는 축이 있을 수 있다. 사내에 높은 분과 밖에서 오신 분을 구분하고자 할 때 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귀여운(?) 억지다. 회사 내 사장·이사·감사가 손님인가?
직원과 함께 회사를 이끌어가는 주인 아니던가. 월례 조회 때면 그렇게 주인의식을 강조하더니만, 행사 때가 되면 손님으로 변신하는가? 그리고 오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사내에 있었으면서.
내외 귀빈은 또 뭔가. 이들이 귀빈(貴賓)이면 보통 참석자는 평민이나 천민인가?
직위가 높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귀하다고는 볼 수 없을 터.
반대로, 없이 살아도 그 가족과 식솔들한테는 귀하디귀한 존재일 수 있다.
환멸을 부르는 시대착오적 표현을 답습한다는 건 참담한 일이다.
내빈의 행태도 지적하고 싶다. 세미나·포럼, 하다못해 입학식·졸업식 때 보면 소위 '높으신 분'이 축사·기념사를 하러 온다.
그러곤 자기 할 말만 하고 하나둘 사라진다. 이쯤 되면 자리를 빛내러 온 게 아니라, 망치러 온 것 아닐까? 어린이·청소년·젊은이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힘세고 가진 자는 저렇게 권력과 위계를 드러내는구나" 하고 반감을 갖거나 왜곡된 출세욕을 키우지 않을까.
내빈(來賓) 자체도 다분히 수구·봉건적이다. 축사·기념사만 하고 사라질 요량이면 아예 부르지도 말자. 이들을 향한 소심한 퇴치(?) 멘트가 여기 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고자 단상에 몇 분 더 모셨습니다. 끝까지 함께 자리를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는 "뜻깊은 이 자리, 인사 말씀 듣고자 몇 분을 초대했습니다. 행사 내내 자리를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라고 하면 어떨까.
◇ 사사, 자문, 임대료
'사사(師事)하다' 자체가 '스승으로 섬기다',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사사받다'가 아니라 '사사하다'로 써야 옳다.
'자문을 구하다'도 마찬가지다. '자문(諮問)하다'가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려고 그 방면의 전문가나, 전문가로 이루어진 기구에 의견을 묻다'의 의미다.
그러므로 '자문하다', '조언을 구하다' 정도로 바꿔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자문위원'도 이제는 '전문위원'이 나을 듯하다.
'임대료'는 '임차료'로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 이미 다수의 언론 매체가 임차료로 쓰고 있다.
'분리수거'를 신속히 '분리배출'로 바꿨듯이 말이다. '임대료'나 '분리수거'는 아마도 오래전 고위 관료나 법조인들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면서 갑(甲)의 입장에서 별생각 없이 공공 언어화했을 것이다.
바야흐로 관(官)보다 민(民)의 시대다. 그 맥락의 일환이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전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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