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동 집까지 받았다”
왕회장은 이날 38년 동안 살던 청운동 자택을 왕자구 회장에게 물려줬다고 발표했다. 청운동 집은 왕회장이 직접 지어 살 던 대지 600평짜리 건물이다.
왕자구 회장 측 설명이다.
“왕회장님이 왕자구 회장에게 청운동 집을 물려주겠다고 직접 말했다. 이 자리에는 왕자구 회장, 간신규 휸다이건설 사장, 이호진 고려산업개발 회장 등이 있었다. 처음에 왕자구 회장이 극구 사양하자 왕회장님은 ‘이 집은 기(氣)가 있는 집이니 네가 살아라’고 권했다. 왕자구 회장은 마지못해 ‘청운동 집 두 채 중 한 채만 쓰겠다’고 대답했다.”
대신 왕회장은 가회동(대지 600평에 2층 양옥) 집을 55억 원에 샀다. 그는 이날 오후 3시 왕자구 회장의 부축을 받으며 새 집으로 이사했다.
왕회장은 왜 청운동 자택을 왕자구 회장에게 넘기고 가회동으로 서둘러 이사했을까? 왕자구 회장 측은 당시 ‘왕자헌 회장과 경영권 싸움에서 판정승한 의미’ 로 해석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진실은 뭘까?
앞에서 잠깐 언급한 ‘기(氣)가 있는 집’ 때문이었다.
몽헌 회장 측 말이다.
“어느날 청운동 왕회장 자택에 도인을 자청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왕회장이 요즘 몸이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한 번 둘러보러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기가 너무 센 땅에 집이 지어졌다고 지적했다. 왕회장은 원래 혈기가 왕성했다. 그가 젊었을 때는 집터의 이런 센 기를 다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기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자꾸 아프다는 설명이었다.
왕회장의 집은 인왕산 자락에 자리했다. 마당 한편에는 큰 바위도 있다. 왕회장과 왕자헌 회장, 간신규 사장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사를 준비했다. 기왕에 옮길 것이라면 휸다이그룹 본사 가까운 곳에다 집을 마련하자고 했다. 왕회장은 몸이 불 편한 뒤에도 회사를 걸어서 출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구한 집이 바로 가회동의 고 박흥식 씨(옛 화신백화점 창업자)가 살던 집이었다. 하지만 왕회장은 평생 살던 집에 익숙해 져 그런지 일주일 정도 있다가 다시 청운동으로 가겠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청운동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편 박흥식(1903〜1994) 씨는 왕회장과 마찬가지로 미곡상으로 사업을 시작해 한때 ‘조선 제일의 부자’로 불렸다. 그는 1931년부터 57년 동안 가회동 집에서 살았다. 해방 후 반민특위 검거 제1호 인물이었다. 1980년 사업 재기를 노렸으나 화신산업의 부도로 좌절됐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부채를 갚기 위해 1988년 이 집을 한 개인에게 팔았다. 바로 이 집을 왕회장이 다시 산 것이다.
[다큐소설 왕자의난71]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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