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인근서 북한에 피랍돼 7일간 억류…군사정권서 징역 1년
고인 사후 재심 청구…재판부 "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 안 돼"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북한에 피랍된 일화를 고향 사람들에게 털어놨다가 경찰에 끌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복역한 어부가 사후 자녀가 청구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주지법 제3-3형사부(정세진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고(故) 송모(1929∼1989)씨의 재심에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고인이 북한에 피랍된 지 약 65년, 실형 확정 이후 51년 만에 바로잡힌 판결이다.
군사정권 시절 공소장을 살펴보면 송씨는 1960년 5월 16일 오후 4시께 제2대성호를 타고 군산 선유도항을 떠나 서해 최북단인 연평도 근해에 다다랐다.
그러나 제2대성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어로 저지선을 넘어 같은 달 19일 북한의 수역인 황해도 구월골 인근에서 조업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피랍됐다.
송씨는 이후 해주시의 한 여관방에 억류됐다가 피랍 일주일 만에 고국 땅을 밟았으나 군사정권의 공안몰이가 거셌던 시기 10년도 더 지난 이 일로 구속돼 1973년 법정에 섰다.
이 공소장에는 송씨가 피랍 당시 지도원으로 불리는 북한 노동당원으로부터 '북조선은 거지도 없고 실업자도 없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미군은 남한에서 몰아내야 한다' 등의 사상교육을 받고 이를 주변에 퍼뜨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법원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송씨에게 징역 1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고, 이 형은 검사와 피고인의 상고 포기로 1974년 확정됐다.
송씨는 이로부터 15년 뒤에 눈을 감았으나 그의 딸(74)은 "아버지가 고문·협박에 못 견뎌 억울한 수감생활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재판부는 당시 수사·재판기록과 이후 제출된 자료를 근거로 '고인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경찰관에 의해 폭행과 고문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이같이 판시했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 구금 또는 가혹행위를 당한 상태에서 공소사실을 자백한 진술은 임의성이 없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자백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는 (공소사실과 같은 내용을 들었다는) 증인들의 법정 진술뿐인데 술을 마시면서 그러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기억해 진술하는 게 이례적이어서 그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피고인이 공소장에 기재된 것과 같은 말을 했더라도 그 발언 내용에 비춰 고향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납북 기간 경험한 북한 사회에 대한 피상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이 발언으로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했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명백한 위험을 줬다고는 할 수 없다"고 밝히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판결을 마치면서 "저희도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지연된 정의로 고통받은 고인과 그 가족에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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