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바레인에서 온 ‘배구도사’가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있다.. 주인공은 남자프로배구 KB손해보험의 아웃사이드 히터 모하메드 야쿱(31·바레인)이다.
야쿱은 지난 1월 초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 아시아쿼터 대체 선수로 KB손해보험 유니폼을 입었다. KB손해보험이 그를 선택하자 배구 관계자나 팬들은 의아해했다. 이란이나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배구 강국 출신이 아닌 바레인 국적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키가 너무 작았다. 국내에서 활약 중인 외국인 선수는 대부분 2m가 훌쩍 넘거나, 육박하는 거포들이다. 그런데 야쿱은 신장이 186cm에 불과했다. 국내 공격수들과 비교해도 한참 작다.
하지만 야쿱에 대한 우려는 찬사로 바뀌었다. 야쿱은 KB손해보험에 합류한 뒤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상대의 강력한 서브와 스파이크를 몸을 던져 받아낸다. 공격에서도 작은 키를 뛰어난 점프력으로 만회하면서 팀에 기여한다. 마치 현역 시절 ‘배구도사’로 불렸던 석진욱 현 KBS N 해설위원을 보는 듯하다.
야쿱은 ‘흙속의 진주’다. 지난해 5월 제주도에서 펼쳐진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에 신청서를 냈지만 모든 구단에서 외면했다.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의 경우 신청한 선수 가운데 각 구단의 선호도 조사를 통해 상위 30명까지만 한국에 초청한다. 야쿱은 30위 안에 들지 못해 한국 땅을 밟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맺어졌다. KB손해보험은 지난해 말 이사나예 라미레스 감독(현 남자배구대표팀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하려 했다. 이때 라미레스 감독은 새로운 아시아쿼터 선수로 야쿱을 추천했다. 과거 바레인 대표팀을 이끈 적 있었던 라미레스 감독은 그때 지도했던 야쿱이 충분히 V리그에서 통할 것으로 봤다.
라미레스 감독은 대표팀-소속팀 겸업 논란에 휩싸이면서 KB손해보험에 오는 것이 무산됐다. 하지만 구단은 야쿱을 계속 주목했고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트라이아웃에 초청조차 받지 못했던 단신 선수는 어느덧 V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외국인선수가 됐다.
지난달 16일 OK저축은행과 경기에서 데뷔한 야쿱은 V리그 8경기에 출전해 98득점, 공격 성공률 50.60%, 리시브 효율 30.36%를 기록했다. 야쿱 합류 이후 KB손해보험은 파죽의 7연승을 달리고 있다. 시즌 개막 후 중위권에 머물렀던 팀은 어느덧 2위까지 넘보고 있다.
야쿱은 한국 생활이 즐겁다. 그는 프로선수가 된 이래 줄곧 바레인 리그에서 뛰었다. 바레인을 떠나 해외 리그에서 뛰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다. 음식 등 일부 장애물이 있기는 하지만 특유의 낙천적 성격으로 잘 이겨내고 있다.
심지어 지난 19일 경민대 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 전에선 특별한 경험도 했다. 아내와 딸을 비롯해 가족들이 처음으로 직관한 것이다. 바레인 리그에선 아내와 딸이 경기장을 찾은 적이 없었다. 이슬람 국가 중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인 바레인에서도 여성이 스포츠 경기장에 가는 것은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내와 딸이 관중석에 앉아 마음껏 야쿱을 응원할 수 있었다. 심지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응원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본인은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지만, 야쿱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야쿱의 꿈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뛰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내게 새로운 나라이다. 이곳에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서 “V리그가 경쟁이 치열한 것도 마음에 들고, 남녀 팬들이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것도 기분 좋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키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며 “대신 높은 점프력과 마인드 컨트롤로 부족한 높이를 메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한다’는 스포츠 명언을 소개해주자 야쿱은 한참이나 깔깔 웃었다. 그는 “내게 딱 맞는 말인 것 같다”면서 “앞으로 머릿속에 새기고 코트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