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원장 역임한 '언론법 설계자'…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주장에 반대
"영미법 제한적 특권·공익보도특권 검토해야…디지털시대 언론중재법 개정 필요"
(서울=연합뉴스) 한주홍 기자 = 국내 언론법 분야를 선도한 권위자이자 '언론의 자유와 한계' 연구에 매진해온 원로 법조인 박용상(81) 변호사가 명예훼손 법제의 체계적 종합 해설서인 새 저서 '신명예훼손법'(박영사)을 출간했다.
박 변호사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관 출신으로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14∼2017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판사 시절 '익명보도의 원칙'을 정립하는 중요한 판결을 다수 남겼고, 법관 재직시 펴낸 '언론의 자유와 공적 과업'(1982년), '방송법제론'(1988년)은 현행 언론중재법과 방송법의 기초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펴낸 '표현의 자유'(2002년)와 '언론의 자유'(2013년)는 언론법 분야에서 필수 참고서로 손꼽힌다.
언론과 명예훼손 문제도 오랫동안 연구해온 주제로, 1997년 '언론과 개인법익', 2008년 '명예훼손법', 2019년 '영미 명예훼손법'을 잇달아 펴냈다.
새로 나온 신명예훼손법은 2008년 펴낸 책자를 뒤이은 것으로, 이론과 실무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룬 현실에 맞게 비교법적 관점에서 각국의 최신 판례와 학설을 소개하고 대법원의 중요 판례에 대한 비판적 평석을 담은 역작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상권 격으로, 명예훼손의 법적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뤘고, 앞으로 펴낼 계획인 하권은 명예훼손 이외에 프라이버시의 권리 등 인격권 침해의 법문제와 그 구제수단에 관한 여러 문제를 담을 예정이다.
80대의 나이가 무색할만큼 여전히 왕성한 연구를 해오고 있는 저자의 새 책은 2008년판 '명예훼손법'을 전면 개정해 최신 사례를 반영한 것이다. 방대한 비교법적 연구를 통해 미국과 독일, 영국과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도 대폭 추가했다.
이 책은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위법성을 비롯해 사실적시 및 의견표현, 미디어에 의한 명예훼손과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다뤘다.
현행 법제상 위법성 조각 사유를 확대·보충하기 위한 방안으로 영미법의 '제한적 특권의 법리'와 미디어의 '공익보도 특권' 등을 소개하고 국내 도입 필요성을 제언했다.
박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움직임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폐지론이 받아들여지는 경우 힘겨운 노력으로 쌓아 올린 기존의 언론 자유와 인격권 간의 형량 결과가 붕괴하게 될 것"이라며 "명예훼손 법제가 혼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단순한 폐지보다는 사실적시에 의해 손상되는 명예보다 그에 의해 옹호되는 이익이 더 클 경우 위법성 조각 사유를 확충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켜 면책될 수 있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한국 법체계 안에서는 공익성 및 진실 입증만을 위법성 조각 사유로 인정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보호가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영미법과 독일법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영미법과 독일법에선 피해자의 이익보다 우월한 것이면 위법성이 조각되고 면책된다는 법리가 형성돼 있다"며 "이런 법리를 도입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해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아울러 "언론의 '전문(傳聞) 보도' 및 인용 보도를 보호하는 충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영미 판례상 전통적으로 미디어에 인정되는 '공익보도 특권의 법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시대 개인의 인격권 침해가 증가하고 있다며 현 언론중재법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개정하는 방안 등 구제책 개선의 필요성도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법시험(8회)에 합격한 뒤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법원행정처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헌재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장, 언론중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ju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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