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전북 익산의 왕궁리 유적에서 길이 26~30cm 크기의 나무 막대 6점이 발견되었다. 당시 학계는 이 나무 막대의 용도를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의문에 빠졌다. 그러나 2004년 1월,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면서 이 막대의 용도가 밝혀졌다. 그것은 바로 백제 시대 사람들이 대변을 본 후 사용한 위생 도구, 즉 ‘측주(厠籌)’였다.
왕궁리 유적은 남북 490m, 동서 240여m에 이르는 대규모 석축 성벽 안에 위치한 곳으로, 1989년부터 진행된 발굴 조사 결과 백제 무왕(600~641) 대 왕궁이 있었던 장소임이 확인되었다. 백제 왕궁이 자리했던 이곳에서 나온 나무 막대는 다소 의아한 물건으로 여겨졌지만, 후속 연구를 통해 이 막대들이 당시의 화장실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 나무 막대들은 좁고 기다란 형태로, 한 구덩이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학계는 이 구덩이와 나무 막대의 연관성을 명확히 해석하지 못했지만, 2004년 1월 토양 분석 결과, 구덩이에서 기생충 알이 다량 검출되면서 이곳이 백제 시대의 화장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연구 결과를 통해, 백제 시대에도 일정한 위생 개념이 존재했으며, 사람들이 대변 후 나무 막대를 이용해 뒤처리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당시 백제인의 생활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변기나 화장지가 없던 시절, 나무 막대는 필수적인 위생 도구였으며,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도 나름의 청결 유지 방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궁에서 출토된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위생 개념은 일반 서민보다는 왕실과 귀족층에서 먼저 확립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다소 원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고대 사회에서 위생을 관리하는 방식이었으며, 이러한 전통이 점진적으로 발전해 현재의 화장실 문화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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