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먹는 방송) 유행의 시초이자 하멜표류기의 하멜을 놀라게 한 고봉밥의 겨레. 한국인은 예로부터 ‘밥 먹었어?’를 안부 묻기로 쓰는 밥심의 민족이다. 먹는 것에 진심인 한국 사회에도 경기 불황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삼중고로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 대학로와 식당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한숨으로 땅이 꺼지고,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민들의 지갑 사정은 날로 얇아져만 간다. 점심 한 끼조차 부담스러운 시대에, 본보는 세대별 점심밥 현황과 경기 불황 속 지역 주민들의 식사 실태를 직접 들어보고자 했다. “안녕하십니까, 식사는 하셨어요?”
【투데이신문 박효령·권신영 기자】 점심시간이 되자 신촌 거리는 배고픈 대학생들로 붐볐다. 그러나 식당 앞에서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학생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5000~6000원이면 가능했던 점심 한 끼가 이제는 1만원을 넘어섰다. 거의 2만원에 육박하는 곳도 많다. 한때 신촌 대학가에서는 저렴하고 푸짐한 밥상을 흔히 접할 수 있었지만 최근 물가 상승과 원재료 비용 증가로 인해 식당들이 가격을 잇달아 인상하면서 학생들의 선택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보다 저렴한 점심을 찾기 위해 ‘가성비’ 좋은 식당을 찾거나 편의점이나 비교적 저렴한 학생식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특히 매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자취생들의 경우 식비 부담이 더욱 커졌다.
높아진 밥값은 학생들의 생활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무지출 챌린지’나 ‘오픈채팅 거지방’과 같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오고 간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삼각김밥에 컵라면? 사치다”라거나 “학교에서 빵 줘서 오늘 0원 썼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기도 한다.
점심 한 끼를 아끼기 위해 일부 학생들은 지인들과의 만남이나 외출을 꺼리기도 하며 자신을 ‘거지’라며 한탄하는 모습도 보인다. 밥 한 끼의 가격을 고민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대학가에 드리운 경제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여러 대학들은 16년간 이어온 등록금 동결 기조를 깨고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학교 밖 월세까지 오르며 학생들은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미래의 경제를 책임질 이들이 사회에 나오기도 전부터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에 본보는 대학생들의 물가 현실을 생생히 확인하고자 신촌 거리를 직접 방문해 “식사는 하셨어요?”고 물었다. 이들이 고공행진하는 물가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큰 영향을 받고 있는지 살펴봤다.
4000원부터 1만8000원까지…바삭함 속에 숨겨진 가격
서울 서대문구 신촌거리의 한 돈가스 가게는 11시 오픈부터 작은 가게 안에 손님들로 가득 찼다. 테이블 7개 정도의 아담한 규모지만 대학생부터 직장인, 외국인 유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몰렸다. 특히 이 가게가 주목받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고물가 시대에 밥과 장국, 샐러드, 밑반찬까지 포함된 돈가스 정식을 단돈 4000원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해당 가게에서 식사를 마친 대학생 B씨는 “우연히 신촌을 방문하게 됐는데, 많은 식당 중에서도 이 가게가 유달리 저렴해서 오게 됐다”며 “물가도 오르고 주머니사정도 어려운 상황에서 유일한 선택지였다”고 했다.
저렴한 가격 덕분에 오픈 시간 11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인 오후 4시까지 가게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게 내부는 빠르게 돈가스를 준비하고 서빙하는 직원들로 가득 차 있었고 손님들은 따뜻한 돈가스를 맛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가게에서 가장 비싼 메뉴는 8000원으로, 돈가스 3장이 포함된 정식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블록 떨어진 수제 돈가스 가게에서는 한 장에 1만8000원에 달하는 가격을 자랑했다. 그 가게의 손님들은 대개 대학생보다는 중년 직장인이나 데이트 중인 연인들이었다.
이처럼 신촌 내 돈까스 가게들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한 가게에서는 4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1만5000원 이상의 돈가스 메뉴를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학생식당에서는 등심돈가스정식이 5800원으로 제공되기도 했다. 물론 사용하는 부위, 원산지 등에 차이가 있지만 메뉴 하나로 미뤄봤을 때 다양한 가격대로 형성돼 있었다.
이렇게 가격대가 다양하게 형성된 이유는 여러 요인들이 얽혀 있다.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자영업자들은 고금리·고물가 시대 속에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돈가스 가게를 운영 중인 A(42)씨는 “2022년부터 가게를 운영해 왔는데,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한 번 가격이 오르면 다시 내리기가 어렵다. 경기 불황으로 손님이 줄어들고 인건비까지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정적 부담이 커졌다”며 “결국 지난해 11월 음식 가격을 1000원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영업자들의 날로 심화되는 고충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의 지갑은 더욱 얇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가성비 식당’에 요동치는 밥심(心)
신촌에는 위 돈가스가게처럼 저렴하면서도 양이 많은 식당들이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 설렁탕을 6000원에 제공하는 한 식당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계속해서 손님들로 북적였고 햄버거를 1+1로 묶어 판매하는 곳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매 시간 붐볐다. 또한 3900원으로 오일파스타를 제공하는 식당은 점심시간마다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게 안이 꽉 찼다.
이와 반대로 1만원을 넘는 가격대의 식당은 손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다. 특히 닭갈비나 전골처럼 여러 명이 다양한 메뉴를 나눠 먹을 수 있는 곳은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거의 없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신촌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최모(70)씨는 “경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예전보다 훨씬 적은 손님들이 찾아온다. 특히 대학가인데도 학생 손님마저 줄었다”며 “골목에 사람이 많아 차도 못 들어오던 시절이 그립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시기보다 12·3 비상계엄 이후 경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지난해 12월부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해도 하루 평균 10팀 정도만 받고 있다”며 속상함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학생식당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본보가 방문한 신촌의 한 학생식당에서는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저렴한 가격의 식사를 찾기 위해 몰려들었다. 방문한 당일 ‘오늘의 메뉴’인 사골우거지탕은 5800원, 철판소시지오므라이스는 5500원으로, 인근 가게에서 각각 1만원, 9900원인 메뉴들에 비해 4200원, 4400원이 저렴하다.
이처럼 가격이 절반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학생식당은 이른 시간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직 개강 전임에도 자취를 하거나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식당을 찾고 있다.
학생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던 대학생 김모(22)씨와 박모(23)씨는 매일 점심과 저녁을 학생식당에서 해결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현재 공부하느라 돈을 아껴 써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니는 해결해야 하고 주말에는 외식할 수밖에 없어서 월평균 식비만 50만원 이상 쓴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촌의 물가 상승을 실감하고 있었다. 박씨는 “대학생활 동안 신촌 물가가 크게 오른 걸 체감했다”며 “예전에는 신촌에서 7000~8000원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1만원은 기본이다 보니 외식이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가성비를 중시하는 식사 문화는 학생식당을 넘어 저렴한 가격의 식당들로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의 밥값 고민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 끼 전쟁’ 종전은 언제…이중고 겪는 자취생들
가뜩이나 치솟는 식비에 대학 등록금 인상, 월세 상승까지 겹쳐 학생들의 지출 부담은 커지고 있다. 하루 한 끼가 전쟁처럼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자취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지난달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지수는 각각 2.7%, 2.9% 상승했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2.2%를 웃도는 수치로 식비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통계를 살펴보면 전국 4년제 대학 190개교(사립대 151개교, 국공립대 39개교) 가운데 64.7%인 123개교가 올해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다. 절반 이상이 대학 등록금 인상이라는 강수를 둔 것인데, 이로 인해 학생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더불어 대학 근처의 월세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서울 주요 10개 대학 인근 원룸의 월세와 관리비는 1년 새 각각 6.1%, 8.1% 상승했다. 주거비용의 상승 역시 자취생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실제로 대학생들은 여러 지출에 대해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기 때문에 그 부담감은 더욱 큰 상황이다.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모(21·여)씨는 매달 180만원을 지출한다. △월세 80만원 △식비 50~65만원 △책값 등으로 나머지 35만원을 사용하고 있다. 월세를 제외한 생활비 100만원 중 절반 이상을 식비로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이씨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집에서 요리를 하거나 대용량 고기를 사서 얼려두고 조금씩 꺼내 먹는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최근 집값과 물가가 많이 올라 한 끼에 1만원가량을 쓰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어 “시급이 1만원을 조금 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과 물가 상승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대학생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한 끼를 먹기 위해 치열한 ‘한 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단순한 밥값 이상의 문제로,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물가 시대 속에서 식비 부담이 커지며 미래를 준비하며 달려가야 하는 세대가 지금 당장 눈앞에 ‘먹고사는 것’에 고군분투하며 앞으로의 현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마치 전쟁같은 한 끼는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젊음의 꿈마저 식탁 위에서 흔들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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