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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프러스는 공용어 중 하나인 그리스어 발음에 따라 ‘키프로스’로도 불린다. 이곳은 청동기 시대 구리(동)의 주요 산지로 알려졌으며 키프로스라는 이름은 구리의 학명인 ‘쿠프룸’(cuprum)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이 섬의 서쪽 파포스 앞바다에서 탄생했다고 전해지며 관련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사이프러스는 고대 문명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구리의 주요 산지로서 그리스 미케네 문명, 페니키아 문명, 이집트 문명 등과 해상으로 교류하며 번성했다. 그러나 철기 시대 후기부터는 아시리아, 이집트,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리스와 연합해 페르시아에 맞선 이후 그리스와 지금까지 오랜 유대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사이프러스는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입구에 위치해 튀르키예,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이집트, 그리스와 해역이 맞닿아 있다. 이러한 위치 탓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럽과 중동의 강대국들은 사이프러스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최종적으로는 1960년에 이르러서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사이프러스는 유럽과 중동을 잇는 관문으로서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사이프러스에 내려서면 경관과 음식,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 등에서 유럽과 동지중해, 그리고 중동의 문화가 깊게 섞여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이프러스는 중동 지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점을 십분 활용해 중동 분쟁 시 이스라엘과 레바논 등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대피 통로를 제공하며 인도적 지원의 거점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공무원의 숫자가 적고 수많은 국가의 대피 협조 요청이 몰리는 상황에서도 어려움에 처해 피난하는 이들을 배려해 언제나 매우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가 놀라울 정도다. 또한 EU와 미국이 가자지구에 대한 국제 지원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사이프러스는 인도-중동-유럽 통로(IMEC) 사업을 통해 유럽과 중동을 잇는 허브로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사이프러스 및 그리스의 전력망과 연결하는 해저 전력 사업,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이프러스 간 데이터망 구축 사업 등도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가치를 반영하듯 미국은 사이프러스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유예하며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과 사이프러스가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한국 역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사이프러스가 지정학적 도전 요소를 기회로 전환하며 국제무대에서 역할을 확대해 가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이프러스의 행보를 주목하며 양국 간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때다. 중동과 유럽을 잇는 교량이자 지정학적 요충지로 자리 잡은 이 섬나라가 앞으로 어떤 성과를 이뤄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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