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과 하나가 되면 어떡하나요'...한국을 휘감은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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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과 하나가 되면 어떡하나요'...한국을 휘감은 음모론

BBC News 코리아 2025-02-20 14:13: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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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무효!'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젊은 여성
BBC/Hosu Lee
신정민 씨는 윤 대통령의 지지자이다

1월의 어느 추운 오후, 직무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위해 헌법재판소로 들어서자 청년 약대생인 신정민 씨는 법원 밖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서성였다.

윤 대통령이 증언하는 동안 신 씨는 실패로 끝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그 주위로 집결한, 분노와 걱정에 휩싸인 다른 지지자 수백 명과 함께 "당장 석방하라. 탄핵을 취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신 씨는 "만약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야당 대표가 당선된다면 우리나라는 북한, 김정은과 하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윤 대통령의 가장 광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널리 인기 있는 주장으로, 좌파 성향의 야당이 북한과 통일해 한국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기를 원한다는 내용이다.

22살의 젊은 신 씨는 유독 눈에 띈다. 언제나 북한을 두려워하고 경멸했으며, 이러한 극우적 음모론을 믿는 이들 대부분은 고령이기 때문이다.

현재 60~70대인 이 세대는 냉전 시대를 살았으며, 1950년대 북한의 남침 이후 참혹했던 상황을 비통하게 기억한다.

지난해 12월 초 계엄령을 선포했던 윤 대통령은 이러한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 장악을 정당화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북한 공산 세력"이 야당에 침투해 국가를 전복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척결"하고자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계엄군사령부를 설치하는 등 신속하게 움직였다.

결국 실패로 끝난 쿠데타 시도 후 2달이 지난 현재, 반공주의 광풍은 다양한 연령대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북한이나 공산주의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이들조차도 이제는 자신들의 역동적인 민주주의가 좌파 독재로 변질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윤 대통령은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자 자신들의 민주적 권리를 빼앗을 수밖에 없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리는 시위에 참여하고자 일터에서 급히 빠져나왔다는 한 40대 남성은 "이것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간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30대 남성은 윤 대통령이 하루빨리 대통령직에 복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모든 북한 간첩을 체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실 이러한 우려와 위협은 한 때 매우 현실적이었다. 1960, 70년대는 간첩들이 정기적으로 정부 침투를 시도했다.

1968년에는 북한 무장 군인 수십 명이 휴전선을 넘어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서울 북악산 정상에 있는 나무에는 당시 2주 가까이 격렬하게 벌어졌던 총격전의 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한국의 폭력적인 군사 독재가 말기에 접어들었던 1980년대에는 극좌 성향의 급진적인 학생 운동이 일어나 북한의 "우월한" 정치 체제를 찬양하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북한 정권의 '동조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또한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정적을 북한 측 음모 가담자라고 비난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중국공산당 OUT'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남성
BBC/Hosu Lee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중에는 야당이 북한과 통일한 뒤 한국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신진욱 중앙대학교 사회학 교수는 "반공주의는 한국의 군사 독재자들이 사회 통제 및 국민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이러한 우려는 사라졌다. 북한의 핵무기나 첨단 사이버 해킹 능력이 오히려 더 큰 위험이 되고 있으며, 한국에서 북한의 삶을 모방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정치적 좌, 우파는 그저 이 골칫거리 이웃을 어떻게 대할지를 놓고 의견이 갈릴 뿐이다.

윤 대통령이 속한 보수 성향의 국민의힘은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북한을 위협해 굴복시키고자 노력해온 반면, 좌파 성향의 더불어민주당은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믿으며 북한과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현재 윤 대통령은 한국인들의 역사적인 이 공포감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신 교수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 독재자들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면서 "윤 대통령은 1987년 한국이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가 북한 동조자들로 가득하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중국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윤 대통령이 야당을 악마화하고, 자신의 비민주적인 행보를 정당화하고자 지어낸 가짜 뉴스"라고 말했다.

위 의원은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당시 국회 담벼락을 넘어 본청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킨 야당 정치인들을 언급하며 "한국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 우리야말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윤 대통령의 시도를 저지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통일연구원'의 이상신 연구원은 사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이전부터 극단적인 보수 단체들이 품고 있던 것이라며 말을 꺼냈다.

"이 단체들은 고립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의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는 이 연구원은 "그러나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기에 그의 발언에는 무게가 실렸고,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BBC 취재진이 참석한 윤 대통령 지지 주말 집회에서도 이러한 점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완고한 음모론자가 아니었음에도, 취재진이 만나본 대부분의 집회 참가자가 윤 대통령으로 인해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음악가 오정혁(57) 씨는 "원래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는데 계엄령은 내 눈을 뜨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좌파 세력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 40대 여성은 이전에는 중국의 국회의원 선거 조작에 대해 의심한 적이 있는데, 계엄령 이후 이에 대해 조사하며 "사실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피청구인' 윤석열 대통령
BBC/Hosu Lee
윤 대통령(왼쪽)이 탄핵심판에 출석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종종 실제 사건, 즉 민주당 출신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지도자를 만나 평화 협정을 조율하려 했다는 점, 이재명 현 민주당 대표가 북한에 수백만달러를 송금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 등을 더 큰 음모의 증거로 사용하기도 한다.

신 교수는 "중국의 선거 조작설 등 더 억지스러운 음모론이 점점 더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적인 합의 중 하나가 바로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가 전제된다는 것인데, 이를 믿지 못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극단적인 상황입니다."

윤 대통령의 입증되지 않은 주장이 확산하면서 지지율 또한 상승한 듯한 모습이다. 물론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윤 대통령의 탄핵을 원하지만, 그 수치는 감소해 지난주에는 57%에 그쳤다. 계엄령 선포 다음 주에 조사되었던 75%와는 대조된다.

한편 윤 대통령은 반공주의적 발언을 통해 중국에 대한 들끓는 불신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 북한에 대한 두려움은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결부되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윤 대통령 지지 주말 집회에서는 'Stop The Steal(부정선거 척결)'이라는 기존의 플래카드 대신 '중국 공산당 OUT'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나온 이들이 많았다.

이 같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던 조연덕(66) 씨는 "나는 중국이 한국의 모든 정치 문제에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막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중국이 한국을 일종의 속국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고 믿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실제 위험을 경험한 적이 없는 20~30대에게 중국은 더 그럴듯한 위험 요소다. 지난해 '퓨 리서치 센터' 조사 결과, 청년층이 유독 중국에 대해 더 부정적인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헝가리가 유일했다.

그러나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청년들이 주입 받는 정보와 달리 이들의 공포는 공산주의와는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최근까지 한국인들은 한국이 중국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으나, 중국이 점점 더 강해지고 더 공세적으로 변하면서, 특히 미국이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들은 중국을 위협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청년층은 여러 불만을 품고 있다. 현재 자신들은 일자리를 구하거나 살 곳을 마련하고자 애쓰고 있는데 대학들이 중국인 학생들을 위해주는 모습에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조 교수는 공산주의가 공포와 증오를 부추기는, 이용하기 편하고 두루두루 쓸 수 있는 부기맨(겁을 줄 때 언급하는 괴물)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특히 청년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극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증폭된다.

30세 IT 개발자이자 지지 집회에 혼자 참석했다는 김경준 씨는 "북한과 중국이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좌파 성향이었으며, 처음에는 대통령의 계엄령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며 말을 꺼냈다. 그러나 유튜브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며 계엄령은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김 씨는 "내가 대통령이었어도 계엄령을 선포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의원은 야당이 지지를 잃을 수 있는 상황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극단주의 견해가 확산하고는 있으나, 제한적일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국민 대부분은 우리가 진짜 어떤 사람들인지 이해하고 있으며, 정상으로의 복귀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빠르게 성장하는 사이비 종교"에 비유하며 그리 낙관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행보가 여론을 "매우 분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 사회에 계속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추가 취재: 이호수, 최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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