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딥시크’가 촉발한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 속 무거운 규제와 태부족 수준을 면치 못하는 예산 여건에 국내 AI 경쟁력이 밑바닥으로 고꾸라지고 있다. 세계 10위권 내에 꼽히는 위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AI 굴기를 위한 로드맵 부재를 비롯한 안팎의 각종 한계에 직면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실정이다.
세계적 수준의 AI 반도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시금 추격에 나섰지만,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AI 강국들의 시장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러시’가 더욱 심화되면서 사실상 AI 개발에 필요한 반도체 납품을 주도하는 ‘하도급’ 국가 위치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글로벌시장조사기관 마캣츠앤마캣츠(Marketsandmarkets)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AI 지수 집계 결과 전 세계 83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전년과 동일한 종합 6위를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1위와 2위는 미국과 중국으로 양강 체제를 형성했고, 3위는 싱가포르, 4위 영국, 5위는 프랑스로 조사됐다. 6위인 우리나라의 뒤를 이어서는 독일, 캐나다, 이스라엘, 인도가 각각 자리했다.
미국과 중국은 글로벌 AI 지수를 발표한 이후 줄곧 1,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사실상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기록한 것은 물론, 중국(53.9점)을 포함한 경쟁국가와의 격차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다만 최근 중국이 딥시크를 통해 생성형AI 부문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점과 주요 AI 사업 모델 개발 능력 등을 감안했을 때 양국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총 27.3점을 기록하며 6위에 자리했지만, 세부적 수치 부문을 보면 △인재(13위) △운영 환경(35위) △연구(13위) △생태계(12위) 등의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는 경쟁국 대비 AI 관련 연구 생태계 및 개발 인프라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며, AI 관련 법제도 미비와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부 및 민간 AI 투자 등의 현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AI에 사용되는 반도체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적 수준의 AI 반도체 기술력을 갖췄고, 네이버와 카카오도 초거대 AI 모델 연구개발에 주력하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중이다.
하지만 챗GPT와 같은 초거대 AI 모델의 부재를 비롯해 한국어 자연어처리 기술과 학습 데이터 등의 부족한 여건으로 국내 AI 기술 발전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사실상 AI칩에 필요한 HBM(고대역폭메모리) 납품과 주요 AI 기술에 소요되는 기반 데이터 판매에 준하는 수준에 그친 상태인 것이다.
이 같은 실태의 주요 원인으로는 다양한 요인들이 문제로 거론되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부족한 국가 단위 예산과 인재 부족, 정책 미비 등이 꼽힌다.
우선 예산 실태를 보면 올해 정부 예산 총 673조3000억원의 예산 중 AI 관련 예산은 전체의 0.27%에 불과한 1조8000억원에 그쳤다.
이는 미국의 2025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AI 예산 200억 달러(한화 약 29조원)의 20분의 1을 훨씬 밑도는 수준이다. 주요 선도국 중 하나인 중국 역시 AI를 포함한 슈퍼컴퓨터,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지원에 올해 1917억 위안(약 39조원)을 책정했다. 향후 중국이 투입할 AI 자금은 총 690조원에 이른다.
민간 투자도 부족하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공지능 지수 2024’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민간 투자액은 13억 9000만 달러(2조 31억원)로 세계 9위다. 미국(672억 2000만 달러)의 48분의1 수준이다. 중국의 민간 투자 규모도 77억 6000만 달러에 이른다.
인재 여건 역시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AI 전문 연구기관인 엘리먼트 AI가 발표한 ‘2020 글로벌 AI 인재보고’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AI 분야 전문 인재는 약 47만8000명에 달하는데 미국, 인도, 영국, 중국, 프랑스 등으로 이어지는 세계 10위권에 우리나라는 포함되지 못했다.
경쟁국 대비 높은 허들로 한계에 직면한 규제도 문제로 지목된다. 지난해 AI 관련 정책의 가이드라인 격인 ‘AI기본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과도한 규제로 인한 업계의 우려는 여전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미국·중국·일본은 법적 구속력 없는 가이드라인만 제공하는 자율 규제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향후 AI 산업과 관련 정책 전반을 주도할 ‘국가AI위원회’의 조직 구성 한계도 여전하다.
지난해 9월 26일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한 국가AI위원회는 AI 정책 전반을 심의·조정하는 최상위 민관협력 기구이지만, 탄핵정국으로 위원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다. 국가AI위원회는 AI 기본법 제7조에 따라 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이, 부위원장은 민간위원이 맡게 된다.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이미 미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AI 시장구조는 완성됐다. 생성형 AI 등 기술력이나 자금력에서 쫓아가기 어려운 수준으로 달아난 상태”라며 “규제 일변도의 정책과 관련 산업 지원을 이끌 HQ(헤드쿼터)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내다봤다.
AI 업계에서는 글로벌 패권 경쟁 속 독자적 AI 전략이 미흡하다는 점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AI 스타트업 육성과 전문인력 확보를 비롯해 미국 등 주요 AI 기업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AI 기업의 육성 여건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AI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AI 기업 및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AI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전략 기술”이라며 “우리나라가 AI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이 중요한 시점이다. 특히 반도체 강국의 이점을 살려 AI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