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2008년 2월 25일, 이기주 제17대 대통령이 공식 취임했다. 이기주 정부의 출범으로 10년 만에 다시 보수 세력이 집권하게 되었고 노무광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이기주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임기를 시작할 무렵에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고,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부도를 맞았다. JP모건체이스가 베어스턴스를 주당 2달러에 매입함으로써 다시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이것은 악몽의 전초전일 뿐이었다.
2008년 9월 15일,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에 이은 세계 4위의 투자은행(IB)인 리먼 브라더스가 뉴욕 남부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검은 커튼이 열렸다. 리먼 브라더스는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파생상품 손실로 역사상 최대 규모인 6,130억 달러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이 사건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10여 년에 걸친 세계 경제의 장기 부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전 세계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졌다. 한국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돌파한 지 1년 3개월 만에 1,000포인트 선이 붕괴하였고 달러 환율은 1,500원을 돌파하였으며 부동산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결국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디플레이션이 가속화되었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생산 축소는 실업자를 양산했다. 한 쪽으로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였다.
세계 금융계와 기업들은 파산과 합병의 지각 변동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시장 개입을 확대하느라 분주했다.
이기주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태어나 포항의 동지상업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 경리과 평사원으로 입사한 후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12년 만에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이 된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다.
김영삼에게 발탁되어 정치에 입문한 이기주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출마하여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종로구 토박이 국회의원인 이종찬과 노무광을 누르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장을 거쳐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기주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대통령실에서 첫 회의를 주재했다. 한상수 국무총리, 강민수 기획재정부 장관, 류창익 비서실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인 강민수는 국무총리와 실장에 앞서 발언했다.
“환율을 높여야 합니다. 환율이 높아지면 국제 시장에서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그러면 한국 경제도 좋아질 것입니다. 경제적 방어 수단으로서 환율을 활용해야 합니다. 다시 환율방어법을 시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기주 대통령의 747 공약을 제안한 강민수는 이기주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있는 보수적 경제학자였다. 이기주 정부가 대통령 선거 당시 내세운 경제 공약 중 하나인 747 공약은 보잉 747 여객기가 날아오르는 이미지를 활용하였다.
747 공약은 경제 부분에서 3개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경제성장률을 7%로 높인다.
10년 내에 1인당 국민소득 4만 불 시대를 연다.
세계 7위권의 선진 대국을 만든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의 경제통인 한상수 국무총리는 강민수의 환율정책에 대해 우려했다.
“어려울 때는 우선적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환율을 올리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모든 원자재와 석유를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데, 그럼에도 환율을 임의로 올려버리면 원자재 값이 오르게 되고, 그러면 최종 소비재의 물가가 올라 서민들이 고통받게 됩니다.”
“총리님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지만 지금은 우선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기주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발표하자 곧바로 환율이 요동을 쳤다. 이때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경영권을 빼앗겼다.
민심이 돌아서고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자 결국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외환시장에 달러를 쏟아부었다.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주식시장에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연속으로 터지고, 환율과 채권 금리가 폭등했다.
금융시장은 1998년 IMF를 연상시켰다.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이미 늦었다. 시장을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강민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경남고등학교 후배인 정열을 떠올리고 김범식 비서관을 불렀다.
“부산 출신인 이정열 회장이 자네 친구라고 했던가?”
“네, 그렇습니다만…”
“자네가 이 회장을 만나서 협조를 좀 구해야겠어.”
“어떤?”
“외환 시장에 계속 달러를 공급해도 환율이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지하 자금이 됐던 뭐가 됐던 환율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우리나라 경제는 끝이야. 이 회장은 내 후배이기도 하니까 언제 같이 자리를 만들어도 좋고.”
“이 회장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 사람! 친구라면서 그것도 모르나? 이 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100억 불 정도는 풀 수 있을 거네. 우리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을걸.”
“네? 그 정도로…”
“아무도 그쪽 자금의 규모를 짐작도 못 하고 있어. 500년을 이어온 상인 조직에다가 역대 중앙정보부 부장은 모두 거기 도움을 받았었지. 특히 김중필 총리와는 막연하고, 미국 역대 국무장관들이나 상, 하원 의원들을 후원하고 있는 로비스트야. 당신 친구가!”
범식이는 정열이 그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항상 소탈하고 인정 많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로만 알았다.
독불장군인 강민수는 환율방어법을 시행하여 60조 원에 달하는 외화보유고를 날리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제 다른 방법은 없다. 이기주 정부의 제1정책인 경제 살리기에 치명적인 오점이 되어 역적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2008년 9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화보유고 2,396억 7천만 달러 중 400억 달러가 증발했는데도 사태는 점점 더 악화하고 있으니 조만간 외화가 말라버릴 것이다. IMF의 악몽이 스멀스멀 느껴진다.
압구정동에 있는 비서실이라는 회원제 술집에 먼저 온 범식은 정열이 마담과 같이 방으로 들어오자 반갑게 맞는다.
“오랜만이다.”
“새 정부라 많이 바쁘지?”
“정신없지. 너는 어때?”
“나야 한가하지. 술이나 마시고 춤이나 추고, 그게 일이야. 하하하”
“참 한량이다. 재미있게 산다, 부럽다.”
“부럽긴! 나는 네가 부러워.”
마담이 거든다.
“두 분 오랜만에 오셨으니 오늘 제가 멋진 신입 아가씨를 소개해 드릴게요.”
범식이가 마담의 말을 가로막았다.
“장 마담, 30분쯤 이 친구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 좀 비켜주지.”
“네, 알겠습니다. 말씀 끝나시면 연락주세요. 술은 먼저 넣을까요?”
“그러지.”
장 마담이 자리를 비우자, 범식은 정열에게 진지하게 말한다.
“사실 오늘은 강민식 장관님 지시로 널 만나자고 한 거야.”
“강 선배님이 무슨 일로?”
“지금 환율 때문에 난리잖아. 자칫하면 장관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도 몰라.”
“환율 때문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네가 좀 도와줄 수 있겠나?”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 어디 일단 이야기해 봐. 내가 뭘 도우면 되는지.”
“지금 환율을 잡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끝장이야.”
“달러를 풀거나, 외자를 끌어들이거나 하란 말이지?”
“그렇지!”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1,000억 불에서 2,000억 불 정도면…”
“그 정도면 되겠어? 그러려면 내가 진행하고 있는 걸 좀 앞당겨야 하는데...”
범식은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가 될 줄 몰랐다. 강 장관이 한 이야기가 옳았다.
그 자리에서 정열이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팩션소설'블러핑'10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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