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토트넘홋스퍼와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빅6’가 더 이상 유효한 단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빅클럽들이다.
이번 시즌 토트넘과 맨유는 리그 중하위권에 처져 있다. 24라운드 종료 기준으로 토트넘이 리그 14위(승점 27), 맨유가 13위(승점 29)에 자리했다. 두 팀은 오는 17일 오전 1시 30분(한국시간) 맞대결을 치르는데 양 팀 분위기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멸망전’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상황이 조성됐다.
토트넘과 맨유는 겉보기에 비슷한 문제를 앓는 걸로 보이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소 다른 고민거리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토트넘은 다니엘 레비 회장의 지나치게 비즈니스적인 구단 운영이 한계를 맞았다는 평가다. 관련해 런던 지역지 ‘더 스탠다드’의 토트넘 전담 기자 댄 킬패트릭은 “레비 회장의 위험 회피 전략은 토트넘의 자리를 위협받게 만든다”라는 제호 아래 토트넘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비판했다. 토트넘 팬들은 레비 회장의 잘못된 방향성을 성토하며 맨유전을 앞두고 시위를 계획 중이다.
레비 회장은 구단 운영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재정 관리만 놓고 보면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을 건설하면서도 경제적인 위기를 맞지 않도록 구단을 잘 관리했기 때문이다. 해리 케인이 유소년에서 등장하고 델리 알리가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등 운이 따르긴 했지만 레비 회장의 업적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주축 선수들을 리빌딩해야 할 때 지나치게 유망주 수급에만 골몰했다는 점이다. 토트넘은 손흥민, 벤 데이비스 등 정신적 지주들과 데얀 쿨루세프스키, 크리스티안 로메로 등 핵심들을 제외하면 경기장 내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줄 만한 선수가 부족하다. 다소 애매한 능력의 자원들과 잠재력을 보고 영입한 선수들이 선수단에 많기 때문에 적어도 이번 이적시장에서는 준수한 자원을 여럿 영입해 양질의 벤치 멤버를 구축했어야 한다. 하지만 올여름 도미닉 솔랑케를 제외하면 루카스 베리발, 아치 그레이, 윌손 오도베르, 양민혁(겨울 합류) 등 유망주를 쓸어담는 데에만 힘을 썼고,,포스테코글루 감독의 고강도 전술 때문에 부상자가 속출하자 성적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맨유는 사정이 다르다. 토트넘이 잘못된 방향 설정으로 고통받는다면 맨유는 방향성이 없어서 고통받는 측면에 가깝다. 20년 가까이 맨유 구단주로 군림한 글레이저 가문은 구단을 발전시키는 대신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데 급급했고, 대형 선수를 영입하는 이른바 ‘빅 사이닝’으로 눈속임을 시전했다. 나중에는 대형 선수가 아닌데도 이적료를 헤프게 써 맨유의 이적시장 디메리트를 스스로 초래하기까지 했다.
2023년 말 구단 지분을 인수한 이네오스 그룹은 글레이저 가문 체제에서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훈련장 개선 및 경기장 신축 등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이번 시즌 성적이었는데, 이네오스 그룹은 에릭 텐하흐 감독을 유임하는 실책을 저지른다. 텐하흐 감독은 맨유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둔 채 10월 말 경질됐고, 스리백 전문가인 후벵 아모림 감독은 부임 이후 여지껏 맨유에 자신의 전술을 입히지 못하고 있다. 아모림 감독의 잘못보다도 프리시즌이 필요한 감독을 시즌 도중 영입한 구단의 잘못이 더 크다.
게다가 이네오스 그룹은 최근 스포츠 투자 영역에서 조금씩 발을 떼고 있다. 이네오스 그룹의 본래 사업 영역인 화학제조업에서 엄청난 적자를 맞아 그룹의 전반적인 쇄신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네오스 그룹은 최근 무디스 등 주요 신용평가 기관에 신용등급을 강등당했다. 연간 수익의 수 배가 넘는 120억 유로(약 18조 원)에 달하는 부채가 원인이었다. 현재 이네오스 그룹의 대부분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2,200만 파운드(약 400억 원) 규모로 체결했던 뉴질랜드 럭비(NZR)와 스폰서십 계약에서도 철수했다. 이네오스 그룹은 NZR에 지급해야 할 분할금을 주지 않고 계약을 철회했다. 이에 NZR은 이네오스 그룹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은 이네오스 그룹이 장기적으로 스포츠 투자 산업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며 맨유에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비교적 균등한 중계권료 분배를 통해 빅클럽이 아닌 구단도 충분히 팀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프리미어리그의 엄격한 재정 규정은 빅클럽도 함부로 돈을 쏟아부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는 명확한 방향성 없이는 빅클럽도 살아남을 수 없으며, 토트넘과 맨유의 추락은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상징과 같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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