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3일간 진행될 연례 '뮌헨 안보 회의(MSC)'에 참석하고자 현재 JD 밴스 미국 부통령,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 외교 및 안보 당국자 60여 명이 뮌헨에 모여들고 있다.
BBC 기자로서 거의 20년 동안 MSC에 대해 취재하고 있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글로벌 안보 측면에서 정말 많은 것이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주 한 고위급 서방 관료 또한 "내 커리어에서 가장 위험하고 치열한 시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답하자면, 현재의 세계 안보 질서, 즉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가 붕괴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붕괴가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합의의 종말
3년 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개시했을 당시, 전 세계는 아니더라도 여러 국가가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러시아와 직접적인 충돌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돕고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 및 서방 세계는 전례 없는 특별한 수준의 단합을 보여주었다.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푸틴의 침략이 반드시 실패로 끝나야 한다는 전반적인 합의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NATO 자체가 크게 위축될 것이며 러시아는 결국 에스토니아와 같은 다른 인접 국가를 침공할 것이라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유리한 입장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지원하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자주 들렸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2014년 러시아의 첫 침공 이전의 국경을 회복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협상 능력을 약화시켰다.
또한 미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가장 원대한 바람이었던 NATO 가입 가능성 또한 꺾었으며, 향후 러시아의 침공으로부터 이 지역 국경을 수호하기 위한 미군 파견 가능성도 배제했다.
더 큰 충격은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90분간 화기애애하게 전화 통화를 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통화로 인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지도자들과 푸틴 대통령 간 3년간의 대화 단절 기간도 끝이 났다.
앞으로 72시간 안에 뮌헨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팀으로부터 미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계획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사안은 미국 대표단이 뮌헨을 떠난 이후에야 결정될 것이다. 퇴역한 미 육군 장군 출신인 키스 켈로그가 특사로서 다음 주 키이우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유럽 간 의견 차이가 워낙 뚜렷한 상황에서 NATO의 결속력은 크게 훼손되었다.
한쪽은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자 하기에 러시아 측의 여러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도 불사할 정도다.
반면 다른 한쪽은 러시아 측의 사상자가 하루 평균 약 1000명에 달하며 장기적인 경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러시아 군이 결국 지쳐버릴 때까지 꾸준히 압박해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평화 조건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만이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최소한 이번 주까지만 해도 보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현재로서 이 시나리오는 실현 불가능해보인다.
우려되는 NATO의 균열
한편 올해로 76년째를 맞이한 NATO 동맹에는 이곳 뮌헨 안보 회의에서 논의될 다른 걱정스러운 균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사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국민들에게 "그린란드는 매물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고, 이후 이어진 "끔찍한"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점령을 위한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았다.
NATO 국가가 다른 회원국의 영토 일부를 점령하겠다고 위협하는 행위는 지금껏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그린란드의 경우에는 이러한 위협을 안보상 정당화할 거리도 없다. 주둔 병력으로만 보면 덴마크 군인보다 미군이 더 많으며, 덴마크는 그린란드의 상호 방어 향상을 위한 방안에 기꺼이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설령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국가 대부분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미 피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저들의 땅을 원한다면 이웃국을 협박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기 때문이다
영국 국가안보보좌관 및 주미 영국 대사 출신인 킴 다로치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에 대한 경제적 제재 위협이나 군사 행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것은 그저 협상 전술일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실제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는 트럼프가 NATO를 경시한다는 또 다른 신호이며, 러시아와 중국은 이를 우크라이나, 대만 등에서 자신들이 자유롭게 손을 뻗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뮌헨에 몰려든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은 그렇지 않다는 확신을 얻어가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국제 무대에서 미국이 맡은 역할을 재편하겠다며 나선 상황으로, 유럽의 불만에는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으리라는 조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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