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권선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국가의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한국 철강 산업과 연관 산업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한국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유지해온 연간 263만t의 무관세 쿼터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한국 철강 기업들의 대(對)미 수출에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게 됐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미국 철강 수입 시장에서 9.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 통계 상으로 2024년 기준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29억달러(4조2131억)로, 캐나다(71억4000만달러), 멕시코(35억달러), 브라질(29억9000만달러)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전체 철강 수출액 중 미국 비중은 약 13% 수준이다.
한국은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철강 25% 관세를 피하기 위해 ‘철강 제품 쿼터 부과국’ 지위를 받아들여 ‘절대 쿼터제’를 시행해왔다. 이에 따라 연간 263만t까지 무관세로 미국에 철강을 수출할 수 있었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쿼터제가 폐지되면서 한국 철강 기업들의 대미 수출에 추가적인 부담이 생겼다.
산업연구원은 25% 관세 부과로 인해 대(對)미 철강 수출의 감소폭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최소 10% 이상의 수출 감소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번 관세 부가로 한국 GDP가 약 0.31%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시티그룹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철강 관세 조치로 인한 한국 경제의 부정적 영향은 GDP의 약 0.11%에서 0.22%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철강업계는 비상대책 마련에 나서며 다각도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미국 내 첫 제철소 건설을 적극 검토 중이다. 유력 후보지로 미국 남부 지역, 특히 조지아주가 거론되고 있다. 관세 장벽을 우회하고 현지 생산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제철소가 건설되면 현대자동차의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의 조지아 공장, 연간 30만-5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HMGMA에 철강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미국 투자를 검토 중이지만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포스코그룹도 미국 내 신규 생산 기지 설립을 적극 검토 중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다양한 옵션을 두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포스코는 이미 GM과 함께 북미 지역에 배터리 소재 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2025년까지 북미 지역에서 연간 10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 능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세아그룹은 미국 텍사스주 템플시에 특수합금 제조 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총 1억5530만달러를 투자해 연간 6,000t의 특수합금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세아그룹은 이를 통해 보잉, 록히드마틴, GE 등 미국 내 주요 방위산업과 항공우주 기업들의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는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철강은 자동차 생산의 핵심 원자재로 철강 가격 상승은 자동차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미국 현지 공장에서 사용하는 철강 대부분을 한국 기업으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의 원가에서 철강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25% 관세가 부과되면 원가가 2.5% 정도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북미 시장 비중이 높은 가전업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LG전자는 미국 테네시주에서 운영 중인 가전 공장에서 사용되는 철판을 포스코에서 수입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수입 금액은 1조3191억원에 달한다. 동국제강은 LG전자 미국 공장에 컬러강판을 공급하고 있다. 가전제품의 경우 철강 제품의 원가 비율은 5~10%로, 2% 안팎의 원가 상승이 예상된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직접적인 관세 부과 대상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전자제품 수요 감소로 인해 반도체 수요도 함께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철강을 원자재로 사용하는 전자 산업 역시 생산 비용 증가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철강업계는 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주재로 철강협회와 주요 수출기업과 대응방안을 논의 중이며,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해 그간 준비한 조치계획에 따라 대응해 나가겠다”며 “불가피하게 피해를 입는 기업에 대해서는 필요한 지원 방안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철강 등에 대한 관세 조치 발효일인 3월 12일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우리 이익이 최대한 반영되는 방향으로 대미 협의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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