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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4’는 대통령이 된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 분)와 재회 후, 국제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샘 윌슨(안소니 마키)이 전 세계를 붉게 장악하려는 사악한 음모 뒤에 숨겨진 존재와 이유를 파헤쳐 나가는 액션 블록버스터다.
캡틴 아메리카 실사 영화의 네 번째 시리즈다. 1편부터 3편까지 캡틴 아메리카로 활약했던 스티브 로저스 역 크리스 에반스가 하차한 후, 샘 윌슨 역의 안소니 마키가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다.
안소니 마키는 기존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팔콘’ 역으로 존재감을 알린 만큼 마블 영화 팬들에게 친숙하다. 앞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샘 윌슨이 스티브 로저스에게 캡틴 아메리카의 비브라늄 방패를 물려받는 장면이 있었기에 앞으로 그가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마블 세계관의 새로운 중심에 설 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전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해 ‘어벤져스’ 시리즈를 이끌며 마블의 전성기를 빛낸 주요 캐릭터 대부분은 천상계의 신이나 ‘슈퍼 솔져’의 혈청을 주입해 초인적 능력을 갖춘 슈퍼히어로들이었다. 혹은 슈퍼히어로의 힘에 대적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기술력을 장착한 수트와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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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선대와 가장 다른 점은 혈청을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힘의 능력치만 기준으로 뒀을 땐 가장 평범한 히어로다. ‘캡틴 아메리카4’는 미국 전역을 뒤흔드는 국제적 사건에 직면한 샘 윌슨이 세뇌로 인간을 조종하는 방식의 테러, 로스와의 의견 대립, 위태로운 외교 관계 등 험난한 장애물들을 만나 한계에 부딪히는 과정을 그린다.
사실 샘 윌슨은 선대보다 훨씬 업그레이드한 수트의 기능, 꾸준한 훈련으로 여느 히어로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다. 그러나 스티브 로저스가 앞서 지구에 남겼던 막대한 업적들과 밀리는 덩치, 자신이 갖지 못한 초인적인 힘 앞에서 샘 윌슨은 스스로의 자격과 신뢰가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들에 직면한다. 그렇게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어 샘 본인이 자신의 자격을 의심하고 괴로워하는 상황까지 처한다. 영화는 그럼에도 선의(善意)를 향한 믿음, 뜨거운 인류애로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나가는 샘의 뚝심있는 여정을 조명한다.
이야기는 장군에서 대통령이 된 새디우스 로스와 샘 윌슨의 대립에서 시작해 로스와 ‘어벤져스’와의 악연, 로스가 장군 시절 저지른 과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함께 로스가 통치하는 미국이 처한 상황을 보여준다. 먼저 센테니얼 섬에서 비브라늄보다 막강한 에너지를 갖춘 신무기 기술의 원료가 발견된다.
대통령이 된 로스는 이 원료를 채굴한 후 일본, 프랑스, 인도 등 국제사회가 공평히 분배함으로써 각국이 자국을 지키는 국제 조약의 체결을 앞뒀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비밀리에 보관 중이던 원료가 멕시코로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파트너인 호아킨(팔콘)과 힘을 합해 원료와 인질을 빼돌리지만, 범인인 원료 구매자를 찾아내는 데 실패한다. 이후 캡틴 아메리카가 참석한 백악관 행사장에서 총격 테러 사건이 발생하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행사 참석자 백악관 관계자 일부가 돌연 총을 들고 로스와 각국 정상들을 저격한 것.
혈청 능력을 갖춘 선대 캡틴 아메리카이자, 샘의 트레이닝을 돕던 친구 이사야도 범인 명단에 포함됐다. 이사야는 자신이 테러 당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로스는 장군 시절 슈퍼 히어로들을 배척하는데 앞장 섰으나, 대통령이 된 뒤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캡틴 아메리카와 협력 관계를 유지 중이었다. 샘은 이사야의 억울함을 풀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수사 참여를 요청했다. 하지만 로스는 그 요청을 거절하며 둘의 관계는 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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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과 호아킨은 미국 정부의 견제와 감시 속에서 백악관 테러 사건의 진실을 따로 밝히려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원료 도난 및 테러 사건이 인간의 뇌를 조종하고 세뇌하는 광데이터 기술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또 모든 배후에 로스가 장군 시절 저지른 과오, 과오의 희생양인 과학자 새뮤얼 스턴스(팀 블레이크 넬슨 분)가 얽혀있다는 걸 깨닫는다.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묵직하다. 샘과 호아킨이 로스의 비밀과 백악관 테러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무게감 있는 정치 스릴러나 첩보 장르물을 연상케 한다. 막강한 미국으로 세계를 통치하려는 로스의 야심이 심리적 위협과 긴장감을 유발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등 주요 고전 소설 및 정치 영화들의 분위기를 구현한 연출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희망과 인류애를 버리지 않는 샘 윌슨의 행보가 핵심 메시지다. 인간의 ‘선한 마음’과 선의가 남긴 유산의 영속성을 믿고 나아가는 샘 윌슨의 강인함은 스티브 로저스의 든든한 아우라와는 다른, 희망의 에너지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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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움직임, 액션 시퀀스의 연출도 확연히 바뀌었다. 비브라늄 방패를 활용한 전매특허 부메랑 액션은 그대로지만, 비브라늄 날개를 달고 비행능력을 업그레이드한 수트 액션이 시선을 잡아끈다. 덕분에 기존 캡틴 아메리카에게서 볼 수 없던 고공 액션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샘이 비행 중 수트 날개깃을 바짝 세워 검처럼 활용하는 기술 등은 선대 캡틴 아메리카에게서 볼 수 없던 독창적 재미를 안겨준다. 방어 위주에서 공격 액션으로 변모한 지점도 눈에 띈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는 선대보다 몸집이 작은 대신 공격은 날렵히 피하고, 집요한 근성으로 상대의 급소를 쉴 틈 없이 공격한다.
장점을 희석할 치명적인 단점도 적지 않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애매한 빌런의 존재감과 이야기 전개의 루즈함이다. 의미심장한 미스터리로 무게감있게 쌓아놨던 초중반의 분위기와 서사가 후반으로 갈수록 맥이 빠져 지루함이 느껴진다. 기존 마블 작품들은 주로 강력한 악당과 히어로의 일대일 대결 구도를 취했다.
‘캡틴 아메리카4’는 로스, 새뮤얼 스턴스 2인이 악역 배턴을 주고받으며 시선을 어지럽게 흐린다. 그나마 ‘로스’로 활약한 해리슨 포드의 노련한 열연이 없었다면 더 몰입이 어려웠을 것이다. 미스터리, 정치물, 첩보 스릴러, 어벤져스 액션에 인류애 메시지 등 너무 많은 것을 한 작품에 담으니 전개도 연출도 흐름을 종잡을 수 없다. 흡수해야 할 정보가 많으니 따라가기 버겁다.
이 영화의 사실상 클라이맥스이자 하이라이트로 기대를 모았던 캡틴 아메리카와 레드헐크의 대결 액션이 예상보다 밋밋하고 싱겁게 담긴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쿠키 영상은 1개다.
12일 개봉. 118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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