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광장에서는 여전히 형형색색 응원봉의 물결을 타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왔다.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희망찬 내일로 향해 가겠다는 소녀의 포부와 기백을 담은 이 노래의 가사는 2024년 겨울, 시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민중가요가 돼 국민들에게 절대 지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빛이 돼주고 있다. ‘최애’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겠다는 마음과 걱정 없이 ‘덕질’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수많은 K팝 팬덤을 움직이게 했고, 그들이 손에 쥔 응원봉은 평화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 된 것이다. 특정 팬클럽이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진 이라면 누구든 모여 한목소리로 외치는 이 진귀한(그러나 또다시 반복돼서는 안 되는) 광경이 펼쳐지는 한편, 고척스카이돔에선 SM엔터테인먼트의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 〈SMTOWN LIVE 2025 [THE CULTURE, THE FUTURE] in SEOUL〉이 열렸다. 동방신기부터 슈퍼주니어, 샤이니 민호&키, 소녀시대 효연, NCT 127, NCT DREAM, NCT WISH, 에스파, 라이즈, 그리고 데뷔를 앞둔 연습생들까지, ‘핑크 블러드(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을 지칭하는 말)’의 가슴을 뛰게 하는 화려한 라인업의 공연은 K팝 신에서 SM엔터테인먼트가 가진 대단한 영향력과 그 존재감은 앞으로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임을 또 한 번 증명하는 장이었다. 특히 30주년을 기념해 과거의 SM과 현재의 SM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합동 무대는 K팝 역사의 의미 있는 한 페이지를 목격하고 있다는 감상을 들게 만들었다. 1세대 아이돌 H.O.T.의 강타와 토니는 NCT DREAM과 함께 ‘캔디’를 열창했고, S.E.S.의 바다와 유진이 깜짝 등장해 에스파 카리나, 윈터와 ‘Dreams Come True’ 무대를 꾸몄으며,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환희와 라이즈 소희가 함께한 ‘Sea Of Love’ 무대는 ‘핑크 블러드’에게 색다른, 그러나 ‘느좋’ 케미를 선사하기 충분했다.
사뭇 달라 보이는 서울의 이 장면 속에서 공통점을 찾은 것이 있는지? 그렇다. 지금 K팝을 설명하는 키워드엔 바로 ‘1~3세대 아이돌’이 있다. 단순히 한 시절을 호령했던 언니, 오빠들의 노래가 알고리즘이나 특수한 시대 상황의 영향을 받아 역주행한다는 말이 아니다. 지난 연말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 콘서트와 연말 시상식 무대를 떠올려보라. 단숨에 이 두 이름이 떠오를 것이다. 2NE1 그리고 빅뱅. 2년 전, 코첼라 무대에 별안간 완전체로 등장해 재결합의 싹을 틔운 2NE1은 2024년 10월 데뷔 15주년 콘서트 [WELCOME BACK]으로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언젠간 다시 뭉치지 않을까?’ 하는 희망 고문이 마침내 끝나던 순간이었다. 지난 8년이라는 공백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전석 매진에 시야 제한석까지 오픈한 그들은 가장 폼나고 멋진 리유니언 세리머니를 한 셈이다. 하지만 3일간의 공연만으로 갈증이 풀리기엔 만무한 법. 4월 앙코르 콘서트를 아이돌들의 꿈의 무대 KSPO돔으로 확정하며 예나 지금이나 2NE1은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발표하는 노래마다 “빅뱅 이즈 백!”을 외치던 빅뱅도 진짜 돌아왔다. 2015년 이후 올해 약 10년 만에 MAMA 무대에 복귀한 것인데, 그들의 무대 영상은 무려 4600만 조회 수를 달성했다. 여전한 조회 수를 보며 본인들도 이제 정말 컴백해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얻지 않았을까? 몇몇 빠진 멤버가 있지만, 그 빈자리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지드래곤, 태양, 대성 세 멤버의 에너지는 폭발적이었고, 관객들은 그 힘에 완전히 압도돼버렸으니까.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음악과 무대, 패션까지 그들의 색깔과 독창성을 공고히 한 빅뱅은 세월이 흘러도 오리지낼리티만큼은 그대로인 하나의 장르가 됐고, 그 장르는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먹힌다. 그 무대가 일회성의 스페셜 무대가 아닌 ‘빅뱅 이즈 백’의 신호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VIP(빅뱅의 팬덤명)’들이 즐비한 것을 보면 말이다. 한편 2016년 해체를 선언했던 걸 그룹, 카라는 이보다 일찍 재결합해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2022년, 데뷔 15주년을 기념해 〈MOVE AGAIN〉을 발표한 그들의 컴백이 유독 반가웠던 이유는 원년 멤버 한승연, 박규리와 팀을 떠난 강지영, 니콜, 그리고 마지막에 합류한 허영지까지 오직 ‘카라’라는 팀을 지키기 위한 재회였기 때문이다. 신곡과 함께 그들이 출연한 유튜브 〈딩고 라이브〉엔 카라의 재결합에 감격한 이들의 댓글로 가득했다. 노래를 듣자마자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다는 애틋한 감정부터, 지금 들어도 명곡뿐인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 감탄하는 이들, 새롭게 카라를 알게 된 Z세대의 호기심까지 세대 화합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격의 재결합 이후 일본 팬미팅, 디지털 싱글 〈I Do I Do〉까지 연이어 발표하는 그들의 행보를 바라보고 있으면 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걸까. 데뷔 10주년을 기점으로 재결합해 스페셜 앨범 〈Season of Memories〉를 발표한 여자친구,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계기가 돼 단독 콘서트까지 개최한 러블리즈, 새 미니 앨범 〈WINTER HEPTAGON〉으로 컴백을 예고한 갓세븐, 14년 만에 완전체로 공중파 시상식 무대에 선 베이비복스와 해체 15년 만에 재결합을 선언하며 투어를 발표한 오아시스까지, 이쯤 되니 재결합을 했거나 예고한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무수히 쏟아지는 재결합 아이돌들을 보며 드는 생각. 그렇다면 1~3세대 아이돌의 재결합은 2025년 K팝의 성공 공식이 된 것일까? 이 명제는 생각보다 뜬구름 잡는 추측도, 터무니없는 가설도 아닐 수 있다. 사실 소속사 입장에서 아이돌 그룹의 재결합은 어느 정도의 수익과 결과를 보장받은, 매력적인 선택지이기 때문. 요즘처럼 국내·해외 팬덤 확보와 음원 및 앨범 판매량, 뮤직비디오 조회 수, 심지어 명품 브랜드와의 스킨십까지 이 모든 걸 다 갖춰야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시대에 새로운 그룹을 성공시키기란 무척이나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선 사례들을 다시 떠올려보라. 재결합한다는 발표만으로 팬덤은 물론 대중의 시선까지 집중시키며 화제성을 가져올 수 있는 장본인이 1~3세대 아이돌인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인 그룹의 신곡이 음원 차트에 진입하기까지 드는 시간과 비용 대비 재결합 아이돌들의 효용 가치가 큰 것이 사실이라며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읽힐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것이 업계의 시선이라면, 리스너들의 선택은? 그 시절 음악에 스며들어 있는 향수, 그리고 신선함에 이유가 있다. 1~3세대 아이돌과 같은 시대를 풍미한 세대에게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젠지들에게 1~3세대의 음악과 비주얼은 어딘가 독특하지만 신선한 자극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 마치 1960년대 활동했던 비틀스를 동경하고 그들의 노래를 (뜻도 잘 모른 채) 따라 부르며 자라났던 1980~1990년대생의 모습처럼, 세기말 특유의 낭만을 지닌 1~3세대 아이돌의 모습과 음악을 통해 이 세대는 새로운 멋을 발견하는 것일 테다. 더불어 효율이 최고의 미덕이라 믿는 젠지에게 검증된 1~3세대 아이돌의 명곡은 내 취향에 맞는 곡을 찾기 위해 셔플하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는 가성비 그 자체인 셈이니, 그들에게 재결합 아이돌은 흥미로운 세계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음악엔 절대 소멸하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노래를 듣는 동시에 거짓말처럼 되살아나는 감각, 기억, 내음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리유니언 아이돌을 황금기로 이끌고 있다.
PLAYLIST | 지금 K팝을 논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리유니언 아티스트 4.
GFRIEND
」
’파워풀’과 ‘청순’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를 단순명료하게 조합한 여자친구의 데뷔곡.
여자친구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끄는 계기가
된 곡으로 여자친구의 존재를 각인시킨,
이제는 추억 속 명곡이 됐다.
비주얼, 콘셉트, 서사까지 여자친구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담긴 유일무이한 트랙이다.
우리는 쉽게 깨지지 않을 거야, 여자친구
— 박희아(대중음악 저널리스트)
BABY V.O.X
」
뉴 잭 스윙에 어울리는 진한 가사, 각자의 킬링 파트를 갖는 멤버별 파트 배분이 돋보이는 트랙이다.
베이비복스의 팬클럽 ‘베이비엔젤스’를 위한 곡으로 윤은혜가 가사를 썼다. 멜로디, 가사, 편곡, 사운드 모두 그 시대 그 자체.
2002년 베이비복스에게 가장 큰 성공을 안긴 노래.
Y2K 시대의 공기, 베이비복스
— 유지성(프리랜스 에디터)
2NE1
」
2NE1의 음악성을 단순히 힙합으로 정의하기엔 부족하다. 후렴을 섬세한 목소리로 그려내는 박봄과 씨엘의 퍼포먼스가 특히 아름답다.
피제이 초이스37과 같은, 신을 대표하는 힙합 프로듀서와 빚어낸, 지금 들어도 세련된 댄스 넘버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2NE1을 위해 작곡한 노래다. 애절하고 진한 소울을 느낄 수 있는 알앤비 트랙.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걸 그룹, 2NE1
— 장세훈(음악 유튜브 〈sehooninseoul〉 크리에이터)
KARA
」
말도 안 되는 곡이다. 니가 너무 좋아서 너를 ‘ROCK’해버리겠다는 곡. 들을 때마다 그 발랄한 협박에 정신을 잃는다.
자신을 ‘가능’하게 해달라는 단계적 협박 같은 곡이다. 가사와 멜로디 모두 그러한 감정의 에스컬레이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전 연인에 대한 분노를 ‘숙녀’와 ‘부처’란 개념을 통해 승화한다. 그 점이 인내와 성숙에 대한 고찰처럼 느껴진다.
타인들의 재회를 사랑한다는 것, 카라
— 복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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