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없어도 마음으로 본다…김숨 신작소설 '무지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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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없어도 마음으로 본다…김숨 신작소설 '무지개 눈'

연합뉴스 2025-02-09 08:00: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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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인터뷰한 시각장애인들 이야기 담은 연작 단편집

'무지개 눈' 책 표지 이미지 '무지개 눈' 책 표지 이미지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 다니는 도, 레, 미, 파, 솔 다섯 명의 고등학생 중 네 명은 선천적 전맹(全盲)으로 한 번도 눈으로 사물을 본 적이 없다.

전맹인 학생 레는 종종 "봤다"고 말한다. 파는 반에서 유일하게 전맹이 아닌 저시력인으로 흐릿하게나마 사물을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데, 레가 "봤다"고 말할 때마다 어색한 기분을 느낀다.

졸업 후 대학생이 된 파는 조금씩 시력을 잃어간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한 번도 지평선을 본 일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문득 고교생 시절 친구인 레와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

언젠가 파가 하루 결석하고 이튿날 학교에 갔더니 레는 이렇게 말했다. "파, 우린 도의 새를 봤어. 도가 어제 새장을 학교에 가져왔어."

곧 전맹이 될 파는 레가 새를 봤듯이 지평선도 본 적이 있는지, 전맹인 레가 어떻게 새를 볼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다가 다른 동창이자 학교에 새를 데려왔던 도에게 전화한다.

그런 파에게 도는 "레는 내 새를 보고 싶어 했고, 그래서 그 애에게 내 새가 보였던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레가 그랬어. 미치게 보고 싶어 하면 보인다고."

소설가 김숨의 연작 단편소설집 '무지개 눈'의 표제작은 이렇게 펼쳐진다. 수록된 소설들은 모두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독자에게 '본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예를 들어 '오늘밤 내 아이들은 새장을 찾아 떠날 거예요'에선 전맹인 여성이 마찬가지로 전맹인 화자에게 "점심때 너 밥 먹는 거 보니까 반찬도 숟가락으로 먹더라"고 말하며 젓가락질을 가르쳐준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레 역시 여름방학 때 바다에 다녀왔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엄마가 새로 사 준 노란색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갔어", "바다가 아주 파랬어"라고 말한다.

'무지개 눈'은 독자들에게 '보다'라는 말의 의미를 일깨운다. '보다'는 사전적으로 따지면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알다'로 정의되지만 '대상의 내용이나 상태를 알기 위하여 살피다'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여우는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시각적인 정보를 본질로 착각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점자 읽는 손 점자 읽는 손

[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지개 눈'에 수록된 독립적인 다섯 편의 소설은 모두 김 작가가 시각 장애인인 실존 인물을 인터뷰한 뒤에 창작했다. 책 말미에는 각 소설에 연관된 인터뷰 대상자 다섯 명의 이름이 소설 제목과 나란히 적혔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전맹 여성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작품인 '오늘 밤 내 아이들은 새장을 찾아 떠날 거예요'와 시각장애인 특수학교 영어 교사가 아이들에게 사물의 영어 이름을 가르치며 과거 눈으로 봤던 것들을 떠올리는 '파도를 만지는 남자'가 실렸다.

'빨간 집에 사는 소녀'는 전맹이자 지체장애인 여성이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것을 끝없이 노래하듯 말하는 이야기가 담겼고, '검은 양말을 신은 기타리스트'는 전맹 안마사가 기타를 연주하듯 타인의 몸을 손끝으로 읽는 스토리를 담았다.

작가는 감각적인 문장들로 실제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독자가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바라봐요. 어느 날 듣는 게 보는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듣고 있다는 걸 몰라요.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는 걸, 표정을 주고받는 걸, 몸짓을 주고받는 걸."(소설 '오늘 밤 내 아이들은 새장을 찾아 떠날 거예요' 에서)

"나는 보인다는 게 뭔지 알아요. / 나는 잘 보인다는 게 뭔지 몰라요. / '저것 좀 봐.' 소리가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보는 시늉을 해요. 나는 보았던 적이 있으니까요."('파도를 만지는 남자' 에서)

민음사. 236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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