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로'(活路), 사전적 의미로 '곤란을 헤치고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을 뜻한다. '모색'(摸索), '일이나 사건 따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활로를 모색했다"는 문장은 흔히 "곤란한 상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의미로 쓴인다.
최근 재계 총수 중 "활로를 모색했다"는 문장이 적확한 인물이 있다.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얘기다.
이 회장의 경영 행보가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됐다. 오랜 기간 경영 행보에 족쇄처럼 작용했던 사법리스크가 상당부분 해소됐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원심과 같은 이번 무죄 선고에는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 모두도 포함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과 시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여부 등 쟁점 사항을 차레로 판단했던 재판부는 검사 측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보고서가 조작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처리도 거짓 회계로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시작된 건 10년여 전이다.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각종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부정 등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2020년 9월 검찰은 이 회장을 기소했다.
이후 1심 재판부는 3년5개월에 이르는 심리 끝에 지난해 2월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으며, 이번 2심에서도 결론은 같았다. 이로써 이 회장은 사실상 사법적 족쇄를 걷어내게 됐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이후 돋보이는 건 즉각적인 이 회장의 '광폭 행보'였다. 기다렸다는 듯 글로벌 경제산업계 '빅샷'(거물)들과의 연쇄회동을 펼친 것이다.
이 회장이 무죄 선고를 받은 다음날 곧바로 만난 건 '샘 올트먼'(Sam Altman). 바로 AI 챗GPT의 오픈AI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였다.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비공개 개발자 워크숍 '빌더 랩'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던 올트먼 CEO는 당초 삼성 서초사옥에서 다른 경영진들과 면담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 회장이 무죄 판결로 전격 합류에 미팅이 이뤄질 수 있었다.
평소에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진 이 회장과 올트먼 CEO는 이날 직접 만나 AI 관련 반도체 및 서비스 등을 주제로 포괄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회동은 '삼성전자와 오픈AI 간 가시적 협력 방안의 촉매제가 될 것'이란 일각의 기대도 나왔다.
실제 올트먼 CEO가 지난해 1월 방한해 삼성전자 평택공장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면서 깊은 관심을 표했던 만큼, 향후 스마트폰을 대신하는 AI 전용 단말기와 독자 개발 반도체 협력이 가능하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전격적인 광폭행보를 보인 이 회장의 또 다른 파트너로 이목을 집중 시킨 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었다.
올트먼 CEO를 만난 같은 날 전격 회동을 가진 이 회장과 손 회장이 협력 방안을 모색한 주제는 역시 AI였다.
이 회장과 회동에 앞서 "삼성과의 잠재적 협력에 대해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던 손 회장은 회동 이후 기자들과 만나 "(스타게이트) 업데이트, 모바일 전략, AI 전략 등에 대해 얘기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손 회장의 회동 내용에 대한 코멘트는 삼성전자의 '스타게이트' 합류 가능성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스타게이트는 미국의 오픈AI와 오라클 그리고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합작사를 만들어 향후 5년간 5000억달러(한화 약 718조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 AI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말한다.
이 계획으로 최근 중국 딥시크 이슈에 글로벌 대응력을 높이는 '한미일 AI 생태계 구축'이 추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 상태다.
사실 삼성전자에게는 반도체 침체 등을 반등할 모멘텀이 필요한 상태다. 직접적인 연관성은 차치하더라도 공교롭게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진행되면서 삼성전자의 관련 시장 장악력은 기존보다 약해진 게 사실이다.
특히 HBM(고성능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SK하이닉스에 역전 당하고 글로벌 AI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와 주요 협력이 늦어진 것은 뼈아픈 부분이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상황은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돼 지난해 매출 '300조원 돌파'라는 성적표에도 같은 해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기대치 못미쳤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이제 국내외 경제산업계의 이목은 '사법리스크'란 족쇄를 풀고 한층 가벼워질 이 회장의 행보에 모이고 있다.
이 회장의 경영 능력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신사업 발굴로 '반전의 삼성전자'를 만들어 낼지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는 형국이다.
한편, 검찰은 7일 늦게 '1·2심 무죄' 판결의 이재용 회장 부당합병 사건에 대한 대법원 상고를 결정했다. 따라서 완벽한 '사법리스크' 해소까지는 다소 시간이 늦춰지는 게 불가피하게 됐지만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힐 확률은 희박하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배충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Copyright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