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및 우리의 가까운 동맹국인 이스라엘을 겨냥한 불법적이고 근거 없는 행위"를 비난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제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시민 또는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ICC 수사를 돕는 개인과 그 가족에게 금융 및 비자 제재를 가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가운데 해당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해 11월 ICC는 가자지구에서의 전쟁 범죄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혐의에 대해 부인한다.
당시 ICC는 하마스 사령관에 대해서도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ICC가 자리한 네덜란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명령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카스파 벨드캄프 네덜란드 외교장관은 X를 통해 "ICC의 업무는 불처벌과의 싸움에서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일 배포된 백악관 보도자료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자리한 ICC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측에 동시에 영장을 발부함으로써 하마스와 이스라엘을 "수치스럽게도 똑같이 취급되게"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행정 명령은 ICC의 최근 행보들이 미국인들을 "괴롭힘, 학대, 체포 가능성"에 노출시켜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한 선례"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악의적인 행위는 결국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미국 정부와 우리의 동맹국, 특히 이스라엘 등의 중요한 국가 안보 및 외교 정책 업무를 약화시킨다"고 밝혔다.
미국은 ICC 비준국이 아니며, 미국 공무원이나 시민에 대해 ICC가 관할권을 지니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한다.
백악관은 ICC가 이란과 반이스라엘 단체의 존재는 무시하면서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집권 1기 당시에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내 전쟁 범죄 자행 여부를 조사하던 ICC 관계자들에게 제재를 가한 바 있다. 해당 제재는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가 들어서며 해제되었다.
지난달 미국 하원은 ICC 제재 법안을 가결했으나, 상원에서 가로막혔다.
ICC는 유고슬라비아 붕괴 및 르완다 대량 학살을 계기로 지난 2002년 잔혹 행위 혐의를 조사하고자 설립되었다.
ICC의 설립을 알린 '로마 규정'은 당시 약 120개국이 비준했으며, 34개국이 추가로 비준했고, 향후 더 많은 국가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또한 2002년 11월 로마규정을 비준하고, 2003년 ICC 정식 가입국이 됐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모두 로마 규정에 비준하지 않았다.
ICC는 최후의 수단 같은 재판소로, 국가 당국이 기소할 수 없거나 기소하지 않으려는 경우에만 개입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은 "두 나라(미국과 이스라엘)는 전쟁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군대를 보유한, 번영하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한다.
바이든 대통령 또한 임기 후반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다면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ICC의 영장 발부는 "터무니없다"고 비난한 바 있다.
한편 이번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인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 중 팔레스타인인들을 재정착시키고 미국이 가자 지구를 "장악"해 이곳을 중동의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아랍 국가 및 UN이 비난하고 나선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자신의 SNS 플랫폼인 '트루스 소셜'에서 이를 다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휴전 상태에 돌입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을 언급하며 "가자 지구는 전투가 끝나면 이스라엘이 미국에 넘겨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또 한 번 팔레스타인인들의 재정착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며, 미군이 동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약 200만 명이 귀향할 수 있을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백악관 관리들은 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캐롤라인 리빗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5일 모든 이주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말했으며,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가자지구 주민들은 재건 기간 "임시"로 떠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가자 지구 재건 계획에 대해 "놀랍다"며 반겼다.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은 지난 6일 자국군에 가자 지구 주민들의 "자발적 떠남"에 대비하라고 명령했다. 육로, 해상, 항공을 통한 이동도 포함되리라는 설명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국회의사당에서 양당 의원들을 만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금 삐삐(무선호출기)를 선물했다.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위장 폭탄이 숨겨진 삐삐로 공격해 큰 타격을 입힌 작전을 기념하는 의미다.
해당 공격으로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으며, 레바논 측은 폭발로 민간인이 피해를 보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 레바논 '삐삐 폭발'에 대해 현재까지 밝혀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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