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시작된지 1년이 지났다.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나면서 응급실 대란이 벌어졌고, 전임의와 의대교수 등이 이들의 공백을 메우느라 번아웃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여야의정 협의체가 구성돼 의정갈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으나 20일 만에 대화가 중단됐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관련 논의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비상계엄 당시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이라는 문구가 포함되면서 의료계의 반발은 더욱 심해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의정갈등 상황에서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3천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통계가 나온 것.
또, 지난 1년간 신규 전문의 양성과 배출이 중단돼 향후 의사 공백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의대증원 확대로 시작.. '전공의 처단' 포고령까지
지난해 2월 6일 정부가 '의대증원 2천명 확대'를 발표하며 의정갈등이 시작됐다.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대생들은 집단 휴학계를 냈다. 의대증원 철회가 요구 조건이었다.
사태 초기만 하더라도 정부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국민 다수가 의대 증원 확대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오래지 않아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복귀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 유지 명령, 업무 개시 명령을 내리고 수련병원에는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전공의들의 사직 움직임을 막았다.
하지만 4월 총선이 다가와도 전공의와 의대생은 요지부동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 지난해 4월 4일 비공개 회동을 가졌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이후 전공의가 빠진 병원을 중심으로 진료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질적인 '응급실 뺑뺑이'는 전공의 공백으로 더욱 심해졌고, 여름철 코로나19 변이가 재확산되면서 응급실 대란이 발생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사직 전공의 복귀를 촉구하며 전공의와 수련병원에 내린 진료 유지 명령, 업무 개시 명령,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등을 철회한다.
하지만 의료계는 더욱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의협은 의료계 전면휴진을 선언하고 여의도에 모여 총궐기대회를 열었고, 서울대병원 등 의대 교수들도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의정 갈등 사태 이후 처음으로 전공의를 향해 사과를 하면서 의대 정원 조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후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가 참여한 여·의·정 협의체가 지난해 11월 출범하며 의정갈등 해소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협의체는 20일 만에 해체된다. '의대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발표된 포고령은 상황을 더욱 악화 시켰다.
포고령에 "전공의들을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문구가 담겼기 때문이다. 전공의는 물론 의료계 전체가 강하게 반발했고, 윤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 접어들며 의정갈등은 더욱 해결이 어려워졌다.
6개월간 3000명 이상 초과 사망.. 암 수술 17% 줄어
정부, 재정 3조 이상 쏟아 부어
의정 갈등 1년간 국민들의 피해는 커져갔다. 당장 의료진 공백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수가 6개월간 3천명을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7월 6개월간 전국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초과 사망자가 3136명으로 추산됐다. 초과 사망자는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사망자 수를 초과해 발생한 사망자를 뜻한다.
의료계는 의료진 부족으로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고령 만성질환 환자와 수술이 지연된 암 환자 등의 초과 사망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11월 상급종합병원 47곳에서 건강보험료를 청구한 6대 암 수술 건수는 4만847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5만8248건보다 16.78% 줄었다.
한 의원은 "상급종합병원의 수술 역량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국민과 환자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지난해 3조 3000억원에 달하는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사태 악화를 막기는 역부족 이었다.
의사 배출 위기.. 전공의 확보율 10% 미만
장기적으로는 전문의 양성과 배출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1년간의 전공의 공백으로 올해 신규 의사는 300명이 채 안될 것으로 보인다. 신규 전문의 배출도 전년의 5분의1 수준에 그쳐 '의사 배출 절벽'에 직면했다.
지난달 31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출근율은 8.7%다. 의정 갈등 이전에 수련병원에 있던 전공의 1만3천531명 중 1천171명만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에 있었던 올해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에선 사직 전공의의 2.2%인 199명만이 복귀를 택했다.
문제는 추가 전공의 모집도 쉽지 않다는데 있다. 전국 221개 수련병원이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상반기 인턴 모집을 실시했으나 지원률은 9.7%에 불과했다.
정부가 사직 전공의의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전공의가 사직 1년 내 동일 과목과 동일 연차로 복귀할 수 없는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입영 대상 전공의의 입영 시기를 수련 종료 후로 연기하기로 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올해 의대교육도 파행이 예상된다.
지난해 의대 증원에 반대해 휴학한 의대생과 신입생이 올해 한꺼번에 수업을 듣게 되면 기존의 두 배가 넘는 7500명 이상이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 이달 중 의대 증원 조정 논의.. 14일 국회 공청회 계기 될까
정부는 이번 달 내에 의료계와 의대증원 문제를 다시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브리핑에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논의 시한으로 "적어도 저희는 2월까지는 반드시 해야 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장관은 최근 김택우 의협 회장과 비공개로 만나 의대 정원과 관련한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2026년도 의대 정원 '감원' 가능성을 열어두며 이번 달까지 의협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년도 의대 정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차는 여전하다.
의료계 다수는 2026학년도 증원을 백지화하고 증원 규모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개최하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가 논의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여야는 현재 의사인력 수급 추계기구 신설의 법적 근거를 담은 법안 5건을 발의한 상태다. 이 자리에는 의협도 참석해 추계위 관련 요구사항 등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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