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값싼 중국산 후판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철강업계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철강업계는 조선업계와 후판 가격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 인하가 되지 않으면 저렴한 중국산 후판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7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중후판(두께 20㎜) 중국산 유통 가격은 평균 1톤당 74만6000원으로 9월 대비 1.4% 상승했다. 같은 기간 국내산 1차 유통 가격도 평균 1톤당 90만원으로 0.7% 올랐으며, 일본산 조선용 후판 대한국 수출 가격은 1톤당 598.75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후판은 두께 6mm 이상의 철판으로, 주로 선박 건조에 사용된다. 국내 조선업계는 기존에 포스코·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로부터 공급받아왔으나, 중국산 후판이 대체재로 부상하며 협상 구도가 달라졌다. 지난해 말 국내 후판 평균 가격은 1톤당 90만원 수준이었지만, 중국산 후판은 약 75만원에 수입되면서 가격 차이가 17%가량 벌어졌다. 중국산 후판 수입량도 2021년 47만톤에서 2023년 138만톤으로 급증했다.
철강업계는 후판 가격 추가 인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모두 후판 사업에서 이미 수익성이 악화한 상태다. 포스코홀딩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1740억원으로, 전년 대비 38.4% 감소했다. 매출 역시 72조6880억원으로 5.8% 줄었다. 철강 부문에서는 포스코의 실적이 매출 37조5560억원, 영업이익 1조4730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3.6%, 29.3% 감소했다. 현대제철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매출은 23조2261억원, 영업이익은 314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0.4%, 60.6% 줄어들었다.
이에 현대제철은 지난해 7월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제기한 바 있다. 현재 정부가 조사를 진행 중이며, 이르면 이달 말 예비 판정이 나올 예정이다. 철강업계는 반덤핑 조치 외에는 가격 하락을 막을 대안이 없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산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이며, 철강업이 흔들리면 조선·자동차 등 연관 산업도 타격을 입는다”며 “멕시코, 인도, 베트남 등 주요국이 중국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신속히 대응하지 않으면, 저가 제품이 국내 시장으로 대거 유입돼 업계 전반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7월 중국산 후판에 이어 12월에는 중국과 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도 신청했다. 열연강판은 자동차·건설·기계 등 다양한 산업에서 원자재로 쓰이는 철강 제품으로, 국내 철강 산업의 핵심 제품군 중 하나다.
한국이 지난해 수입한 열연강판 372만톤 중 일본산이 194만톤(약 52%)을 차지했으며, 수입액은 약 1조7000억원에 달했다. 일본산 열연강판 가격은 한국산보다 약 10% 저렴한데, 엔저영향과 일본 내 산업 부진으로 인한 공급 과잉이 맞물리면서 한국 시장으로 대량 유입되고 있다.
다만 일본 철강업계에서는 반발하고 있어 부담이 따르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철강연맹 회장인 이마이 다다시 일본제철 사장은 최근 일본 철강업계가 한국의 반덤핑 조치로 큰 타격을 입고 있어 필요할 경우 무역조치를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일본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따라 철강재를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가 한국산 철강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치가 시행될 경우 국내 일부 철강업체도 부담을 안을 수 있다. 동국제강, 세아제강, KG스틸 등 고로(용광로) 없이 전기로 방식으로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일본산 열연강판을 원자재로 사용하고 있다. 열연강판 가격이 오르면 원가 비용이 상승해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 철강업계가 일본에 수출하는 규모도 상당하다. 지난해 한국 철강업계가 수출한 철강재 2971만톤 중 일본이 382만톤(12.8%)으로, 단일 국가 기준 최대 수출국이었다. 포스코는 일본 완성차업체에 고부가가치 자동차 강판을 공급해왔는데, 일본이 보복 조치를 시행하면 수출길이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반덤핑 조치가 국내 철강업계를 보호하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동시에 일본과의 무역 관계에 미칠 파장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경우 국내 철강업계는 수출 축소와 원가 상승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치가 단기적으로 국내 철강업계를 보호할 수는 있지만, 한국이 일본에 수출하는 철강재의 규모를 고려할 때 오히려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시장 보호와 무역 보복 가능성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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