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1341년 7월 31일 영국 런던 '방해죄 재판소'에 '이웃이 깨진 창문으로 자신의 정원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조치해달라'는 한 미망인의 고소가 접수됐다. 현장 검증을 마친 재판부는 미망인의 이웃에게 40일 안에 창문을 수리하라고 판결했다. '사생활의 권리'(프라이버시)가 처음 법적으로 인정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데이비드 빈센트가 최근 출간한 저서 '사생활의 역사'(더퀘스트)를 통해 중세부터 현대까지 프라이버시 개념에 대한 약 700년간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추적했다.
영국의 방해죄 재판소는 프라이버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됐다. 14세기 런던 시민들은 이 재판소를 통해 소음, 무단 침입, 사적 공간의 훼손 등으로 사생활이 방해받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저자는 당시 프라이버시는 현대적인 개념처럼 법률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지만, 개인이 타인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설명한다.
프라이버시는 문해력 발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자를 읽고 쓰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공동체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을 형성하려는 개인의 욕구도 강해졌다.
읽고 쓰는 행위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저자는 "편지, 일기, 개인 서재 등이 점점 보편화되면서 개인의 사적 생활이 더욱 강화됐다"고 설명한다.
프라이버시는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한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개인의 정보가 무분별하게 수집·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묘사된 '빅 브라더'에 의한 감시 사회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의해 모든 것이 기록되는 시대에 인간은 스스로 감시당하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그는 "사생활 보호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며 "방해죄 재판소에서 시작된 개인의 사생활 보호 노력은 오늘날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감시 문제로 이어지며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말한다.
다행히 지금의 위기만 넘기면 미래에 프라이버시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단순히 개인 공간을 지키는 것을 넘어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 익명성 보호, 감시 사회에 대한 경계 등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면서 700년 전 방해죄 재판소가 남긴 교훈에 따라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더욱 강력한 법적·사회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방해받지 않는 삶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안진이 옮김.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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